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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종보다 못한 군부대신

나는 국어교사로 33년 교단생활 줄곧 국어를 가르쳐왔지만, 한때 학교 사정으로 이태 동안 한문을 가르쳤다. 지금도 잊히지 않은 단원은 ‘이름 없는 비녀(婢女)’라는 단원으로, <매천야록>에 실려 전해 내려오는 한말 이근택 군부대신 집안 계집종 이야기다.

이근택(군부대신) 아들은 한규설(참정대신) 사위다. 한규설 딸이 출가할 때 한 계집종을 데리고 갔다.

을사늑약이 결정된 날, 이근택이 대궐에서 돌아와서 집안사람들에게 늑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나는 다행히 죽음을 면하였다” 하니, 계집종이 부엌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 식칼을 가지고 나와 꾸짖기를,

“이근택아, 너는 대신이 되어 나라의 은혜를 얼마나 입었는데, 나라가 위태로워도 죽지 않고 도리어 내가 다행히 죽음을 면하였다고 하느냐? 너는 참으로 개만도 못한 놈이다.

내가 비록 천한 사람이지만, 어찌 개의 종이 될 수 있겠느냐? 내 칼이 약하여 너를 만 동강이로 베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나는 다시 옛 주인에게 돌아가겠다”고 한 뒤, 한규설의 집으로 도주하였다. 그 계집종 이름은 알 수가 없다.
- <매천야록> 제4권 광무 9년 을사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은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과 함께 1905년 일제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에 찬성한 대한제국의 대신으로 이른바, ‘을사오적(乙巳五賊)’ 중 한 사람이다.

군부대신이라면 지금의 국방부 장관으로, 나라를 지키는 가장 중한 직책을 맡은 신하가 아닌가. 군부대신은 나라의 위기 때면 최일선에서 싸우다가 전사하든지, 아니면 타이타닉 호 선장처럼 대한제국과 함께 장엄하게 순절하는 게 마땅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라를 일제에게 팔아먹은 뒤 제 목숨 살아났다고 자랑하다가 제 집 계집종에게까지 조롱받는, ‘개만도 못한 놈’이 되었다.

이근택, 그는 어떤 인물인가

 군부대신 이근택의 자랑스러운(?) 훈장들
군부대신 이근택의 자랑스러운(?) 훈장들 ⓒ 도서출판 개마고원
이근택, 그가 어떤 인물인지 참고도서를 찾는데 아주 쉽게 바로 내 책장에서 나왔다. 정운현씨가 지은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의 첫 인물이 바로 그였다.

반가운 마음에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있는 정운현씨에게 곧장 전화를 하자 "이근택을 응징한 인물이 기산도 의사냐"며 당신도 이제야 알았다며 매우 반가워 하면서 본문은 물론 사진자료까지 마음대로 쓰라고 하였다.

이근택(李根澤. 1865∼1919년)은 원래 충북 충주 사람으로 집안은 대대로 무인가문이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근택이 출세 줄을 잡은 계기는 좀 특이하다. 그가 아직 서울로 올라오기 전인 1882년 임오군란이 터지자 민비(명성왕후)는 고향인 충주로 피난을 갔다.

마침 이근택은 민비의 친정 이웃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매일 민비에게 생선을 잡아다 바쳤다. 당시 피난생활을 하고 있던 민비는 이 일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환궁 후 민비는 이듬해 그를 파격적으로 발탁, 남행선전관에 임명하였다. 그는 1884년 무과에 합격한 이후 10년간 지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중앙무대 진출을 모색하였다.

이근택이 대한제국기에 중앙무대에서 요직을 역임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고종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우연히 일본 상점에 들렀다가 비단으로 만든 띠(帶) 하나를 발견하였다. 화려한 수를 놓아 만든 것이 첫눈에 보아도 기품이 있어 보였는데 군데군데 검붉은 흔적은 핏자국이 완연했다.

순간 그는 이 허리띠가 민비의 것이라고 판단하고는 거금 6만 냥을 주고 사서 고종에게 바쳤다. 고종과 태자는 비명에 간 민비를 다시 만나기라도 한 듯이 반가워했다. 이 일로 그는 고종의 총애와 신임을 독차지하였고, 날로 벼슬은 높아졌다. 대한제국기에 그는 경무사· 경위원 총관· 헌병사령관·원수부 검사국장 등을 지내면서 경찰· 군사부분에서 최고 실력자로 행세했다.

대한제국 초창기 이근택은 친러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우선 출세 은인인 민비를 일본 사람들이 시해했기 때문에 일본과는 감정이 좋지 않았다. 또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본 까닭도 있었다. 조선 내에 친일세력 부식에 혈안이 돼 있던 일본측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내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 내 친러파 대신들을 매수· 회유키로 방침을 세웠다. 여기에 가장 먼저 걸려든 사람이 ‘한일의정서’ 체결 당시 외무대신 서리였던 이지용(李址鎔)이었다. 그는 단돈 1만 원에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에게 매수돼 궁중 비밀을 낱낱이 하야시에게 보고하는 첩자노릇을 하였다. 일제는 회유와 협박이 통하지 않는 이용익(李容翊)은 일본으로 납치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근택 묘지 공주 시내 아무 곳에 있는 이근택의 묘지로, 4대가 한 곳에 누워있다고 한다.
이근택 묘지공주 시내 아무 곳에 있는 이근택의 묘지로, 4대가 한 곳에 누워있다고 한다. ⓒ 정운현

변신의 귀재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산이 보이자 한국 내에서 그들의 기세는 갈수록 당당해졌다. 정부대신들 가운데서도 일본 쪽으로 기우는 자가 한둘씩 늘어갔다. 이근택 역시 친러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일본세력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세가 기울고 있다는 것을 감 잡자 이를 틈타 또 다른 출세를 계획하였다.

당초 친러파였던 그는 친일파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하였다. 그는 일본공사관으로부터 기밀비로 30만 원을 받고는 그 대가로 궁중의 기밀사항을 정탐하여 이를 일본측에 제공하였다.

1905년 9월 ‘을사조약’ 체결을 앞두고 그는 군부대신직에 올랐다. 이 무렵 그는 완전한 친일파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그 공로로 이듬해 일본정부로부터 훈1등(勳一等)과 태극장을 받았다.

조약체결 이듬해 2월, 그는 취침 중 자객들의 습격을 받고 13군데나 자상(刺傷; 칼에 찔린 상처)을 입었으나 겨우 목숨은 건졌다. 거의 회를 쳐놓다시피 한 그를 한성병원에서 한 달 만에 살려낸 것이다. 그를 치료한 주치의는 나중에 2등 태극장을 받았다.

한번 친일로 들어선 그의 친일행각은 1910년 ‘한일병합’ 때까지 지속됐다. ‘병합’ 후 일본정부는 공로자들에게 공적에 따라 작위와 ‘합방은사금’을 공채(公債)로 주었다. 이근택은 같은 을사오적인 권중현· 박제순 등과 같이 훈1등 자작(子爵, 4등급)과 매국공채 5만원을 받았다.

‘병합’ 후 그 해 10월 중추원 고문으로 취임한 그는 1919년 12월 17일 사망하였다. 그의 작위는 장남 이창훈(李昌薰)이 이듬해 2월 20일 습작(襲爵), 해방 때까지 유지하였다. 이창훈 역시 일제하 몇몇 친일단체에서 활동하였는데 말하자면 대를 이어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된 셈이다. 

- 정운현 지음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귀족(貴族)이요, 귀족(鬼族)’ 편 48~51쪽

기산도 의사 언론에 최초로 공개되는 기산도 의사의 영정이다.
기산도 의사언론에 최초로 공개되는 기산도 의사의 영정이다. ⓒ 기노식
나는 지금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인 이근택을 거의 회 쳐놓다시피 응징한 정의의 투사, 한 자객(刺客)을 찾아가고 있다.

대한제국 당시 이근택은 친일 ‘귀족(貴族)이요, 귀족(鬼族)’(정운현씨 표현)이며, 그 무렵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와 결의형제를 맺고, 일제 추밀원장으로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양아들 행세를 하며 장안의 최대 권력가로 군림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근택 침실 주위에는 군인 6명, 순검 4명이 경호했으며 일제 헌병대와 순사분파소(오늘날 파출소)와도 비상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철통같은 이근택 집 담을 신출귀몰하게 뛰어 넘어, 한 계집종의 원한을, 아니 당시 이천만 백성의 체증을 ‘뻥’ 뚫어준 의로운 자객이 있었다.

그 이름은 기산도(奇山度)로, 나는 그 후손과 유적지를 찾고자 고영준 선생의 안내로 고흥반도 15번 국도를 달려가고 있다. 내 마음이 후련하고 통쾌하다. 사실 이런 시원한 마음이 없다면 어찌 일백년 전 의병의 발자취를 더듬겠는가.


#기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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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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