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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11월21일. 이날을 두고 여러 말들이 있다. '국치일'부터 '단군이래 최대의 국난'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시작된 외환위기는 국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그리고 10년후, 외환위기 의 단초를 제공한 한보철강 부도의 현장, 당진을 찾았다. 두차례에 걸쳐 당진10년을 통해 한국경제 10년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말]
 외환위기 주범 한보철강이 지난 2004년 현대제철로 새로운 주인을 맞으면서 활력을 되찾고 있다. 사진은 전기로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외환위기 주범 한보철강이 지난 2004년 현대제철로 새로운 주인을 맞으면서 활력을 되찾고 있다. 사진은 전기로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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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릭… 쏴~아'

흰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지난 21일 오후 충남 당진 현대제철 B지구 열연공장. 벌겋게 달구진 철강판이 수시로 롤러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공장 한 켠에는 마치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둥글게 말려있는 강판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주로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것들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공장은 짓다가 도중에 그만둔 철골 구조물 상태 그대로였다. 을씨년스러운 모습에 철제 강판들은 공장 구석구석에서 나뒹굴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났고, 공장은 방치됐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현대차'로 옷을 갈아 입은 공장은 '쇳물'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들도 다시 모였다. 또 주변에선 세계적인 규모의 친환경적인 제철소도 지어지고 있다. 침체의 늪을 걸어왔던 당진은 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바뀌고 있다. 10년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로비의 귀재 정태수, 외환위기의 씨앗을 뿌리다

97년 1월23일 밤 신광식 당시 제일은행장(현 SC제일은행)은 기자들 앞에 어두운 표정으로 섰다. 그는 곧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채권은행단의 경영권 포기 요구를 거부함에 따라 한보철강을 부도처리했다"고 발표했다.

한보가 이날 하루에 막아야할 돈은 94억원이었다. 정 회장은 뒤늦게 경영권을 넘길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은행장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97년 1월 한보철강의 부도는 그해 외환위기를 불러오는 씨앗이 됐다. '마르지 않는 돈줄'로 불리던 정태수 회장의 '한보'는 그렇게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은 당진에 한창 짓기 시작한 2기 제철소 모습. 공사가 멈추면서 각종 자재들이 널부러져 있다.
 97년 1월 한보철강의 부도는 그해 외환위기를 불러오는 씨앗이 됐다. '마르지 않는 돈줄'로 불리던 정태수 회장의 '한보'는 그렇게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은 당진에 한창 짓기 시작한 2기 제철소 모습. 공사가 멈추면서 각종 자재들이 널부러져 있다.
ⓒ 현대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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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는 93년 4개 계열사에서 시작, 4년만에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로 성장했다.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경유착, 방만한 차입경영과 계열사간 부당거래를 통한 성장… 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그해 외환위기를 불러오는 씨앗이 됐다. '로비의 귀재', '마르지 않는 돈줄'로 불리던 정태수 회장의 '한보'는 그렇게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당진에 한창 짓기 시작한 2기 제철소는 그때 멈춰섰다.

10년째 방치된 아파트와 잃어버린 '웃음'

21일 오후 기자를 태운 차량은 당진군 송악면 중흥리쪽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능선을 타고 약간 오르막 길이었다. 옆자리 있던 김경식 현대제철 부장이 "저기를 보세요"라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언뜻 보더라도 아파트 모양의 시멘트 골조물이었다. 10층 정도는 돼 보였다. 김 부장은 "외환위기 때 짓기 시작했던 아파트였다"면서 "한보철강 부도와 함께 공사도 중단됐고, 저대로 이제까지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옆으론 최근 몇 년 새 새롭게 지어진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10년 새 달라진 '당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이승희 대리는 "한보철강의 부도는 당진에겐 악몽이었다"면서 "공장 주변의 협력과 하청업체 40여곳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냈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사람들이 떠나니까, 건물을 짓거나 식당을 열었던 사람들도 줄줄이 망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면서 "그땐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전했다.

다시 흐르는 쇳물, 그리고 당진의 '희망가'

 공장 한 켠에는 마치 두루마기 화장지처럼 둥글게 말려있는 강판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주로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것들이다.
 공장 한 켠에는 마치 두루마기 화장지처럼 둥글게 말려있는 강판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주로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것들이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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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웃음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97년 부도 후 3000명에 달하던 직원들은 700명선까지 줄었다. 일부 직원들은 주변 제철 공장으로, 외국의 경쟁 철강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한보철강의 매각 작업도 쉽지 않았다. 포스코에 의해 위탁 경영되던 당진제철소는 2000년 3월 외국계 네이버스 컨소시엄으로 매각이 결정됐다. 하지만 7개월이 넘도록 돈이 제때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그해 10월 매각은 무산됐다.

신승주 팀장은 "부도이후 남아있는 사람들의 임금은 동결됐고, 업무 과중과 함께 스트레스도 높았다"면서 "매각작업이 표류하면서, 공장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2003년 2월 AK 캐피탈과의 계약도 마찬가지. 그해 11월 이들 역시 제때 돈을 마련하지 못해 당진제철소의 매각은 또 다시 무산됐다. 2004년 3월 세번째 공개 매각 공고가 나갔다. 그해 5월 현대자동차그룹의 INI 스틸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후 당진 제철소는 변하기 시작했다. 직원들도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18일치 <동아일보>는 '애물단지서 산업버팀목으로, 당진의 희망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외환위기 주범 한보철강이 새로운 주인을 맞으면서 활력을 되찾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제철은 오는 2011년까지 5조2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10위권 체철소를 만들 계획이다.
 현재제철은 오는 2011년까지 5조2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10위권 체철소를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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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당진'이 살아난 이유

당진 읍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성희(46)씨는 "예전에 (한보철강이) 부도나서 사람들 떠나고, 그땐 정말 힘들었다"면서 "지금은 사람들도 늘고, 건물도 올라가고, 생기가 있긴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장이 다시 돌고, 서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외지에서도 많이 오고 있다"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보다 나아진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 새 당진은 분명 달라지고 있었다. 인구도 크게 늘어, 10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 공장과 상가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새 아파트 건설도 늘었다. 공장이 들어서고, 일자리가 늘면서 당진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를 두고, "공장과 일자리가 '죽은 당진'을 되살렸다"고 분석했다.

민종기 당진군수는 "현대제철 뿐 아니라 동부제강 등 당진에는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이 대거 몰려있다"면서 "2009년에 대전까지 고속도로도 만들어지고, 해안가는 수십 만톤 배들이 드나들 수 있는 항구로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진의 지난 10년은 IMF후 한국의 10년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모델"이라며 "앞으로 4~5년이 지나면 당진은 국제적인 철강도시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현대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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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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