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제 날개로 날 수 있는 이상의 높이로는 절대 날지 않는다. 'W. 블레이크'
영화 <위대한 비행>은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회귀하는 철새들의 이동경로를 힘겹게 촬영한 기록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철새들이 출발했던 지점을 정확히 찾아 귀환하는 새들의 위대한 비행에 정말 탄복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나침판도 디지탈 장비도 없이 그 멀고 먼 항로를 조금도 이탈하지 않고 정확히 찾아 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북극에서 유럽까지, 혹은 그리란드에서 아프리카까지 날아가는 새들의 비행 이정표는 하늘의 별과 달과 태양입니다. 그들은 한 마리도 탈락 없이 무사 귀환을 위해 질서를 지키면서 목숨을 함께 걸고 오직 생존과 종족 번식만을 위해 지구 반바퀴나 되는 거리를 비행합니다.
이렇게 신비한 동물의 세계를 접하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신이 있다는 것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착한 사람은 죽으면 새가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대부분 사람들은 괴로운 일이 있거나 고통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훨훨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어 합니다. 집없는 서민들의 신세를 '집 없는 철새'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정말 사람이든 새이든 집이 없는 신세만큼 처량한 신세가 있을까요?
싸늘한 겨울 바람에 낙엽들은 까만 새처럼 날아갑니다. 앙상한 가로수의 나뭇가지를 쳐다보면 왠지 거둘 것이 없는 삭막한 도심의 삶이 까닭없이 쓸쓸합니다. 아파트 이웃은 옆집 아랫집 윗집 다닥다닥 붙어 살지만, 그 이웃의 거리는 지구 반 바퀴의 거리만큼 멉니다. 이런 도심의 자신의 삶도 살기 바쁜 도시인들이 집새들이 추운 겨울이면 어디에다 집을 짓고 살까, 걱정하는 이는 별로 없을 듯합니다. 추운 겨울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은, 역 대합실이나 지하철 역에서 쫓겨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도 아니 집새들의 둥지들을 지어 주자는 이야기는 말이 안 될 듯합니다.
하지만 집 없는 철새 신세인 서민들의 집을 지어주기는 매우 어렵겠지만, 집새들의 새 둥지는 도로 곳곳의 높은 도로 안내판과 이정표의 보기 흉한 이면을 이용하면 멋진 새집을 만들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도시의 미화에도 좋겠습니다. 집새들은 사람들이 좋아서 도심을 떠나지 않는 새들입니다. 새들마저 없는 도심은 얼마나 삭막할까요. 한그루 가로수를 가꾸는 일이나, 새들을 보호하는 일이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도시 환경 미화가 시민들의 메마른 정서를 위한 취지라면 말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춥고 배 고픈 집새들은, 하늘 높이 치솟은 고층 아파트의 베란다 없는 창들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듯하네요. 푸른 산 속의 푸른 산울림에 묻혀사는 나는 한 마리 새. <산종소리>-'박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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