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벽 6시 30분. 강원도 춘천시 애막골 번개시장. 새벽부터 기자들이 운집해 있고, 상인들은 어리둥절하다. 날씨는 매서운데, 번개시장 손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기자와 후보 진영뿐.


오늘은 대통령 유세 첫 번째 주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강원도를 방문하는 날이다.

어리둥절하던 상인들은 권 후보가 온다는 말에 "그놈이 이놈이고 이놈이 그놈이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나 막상 권 후보가 나타나자, 그동안 '스팀 열린 얘기'를 줄줄이 쏟아 놓는다.

 

번개시장은 두세 달 전부터 갓길 주차를 단속하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상인들은 대통령 후보가 나타나자 주정차 단속에 대해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길이 막히는 도로도 아니고! 주정차 단속을 하려면 주차장을 만들어주고 단속을 해야지. 어떻게 먹고 살라고 그러냐"는 상인의 말 속에 억울함이 서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 후보가 온다고 평소에 주정차 단속하러 오던 경찰차도 오지 않았다. 당연히 원망이 더할 수밖에.

 

정치인들 다 쓸모없다며 말하던 이들이 막상 대통령 후보 악수를 받고 나자, 누구네 집은 늦게 와서 손도 못 잡아 봤다며 생색을 낸다. 가라앉았던 시장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지만, 후보가 사라지자 귀신같이 잠잠해졌다.

 

 

권 후보는 기사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곧바로 석사동 하이마트 사거리로 이동해 40분 남짓 유세를 하고 홍천 중앙시장으로 이동했다.

 

 

오전 9시 40분 홍천 중앙시장. 가는 눈발이 흩날렸다. 유세차량이 먼저 자리를 잡고 대형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시장 입구로 사람들이 얼굴을 빼든다.

 

 

권 후보가 지나가자 한 할머니가 나지막이 말한다.


"저 사람이 뭐이더라?"
"기호 3번, 기호 3번."

옆에 있던 할머니는 누가 들을세라 귓속말처럼 대답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신기해서 유세단 행렬을 쳐다본다. 시골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으니 그럴 만하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젊은 사람들은 그러나 또 한마디 한다.

 

"평소에 잘할 것이지, 이럴 때만 와!"

 

 

기자가 홍천시장 상인들 열 명에게 물어보니, 모두 찍을 후보도 없고 지지정당도 없다고 한다. 투표는 꼭 할 텐데, (누구를 찍을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권 후보는 홍천 유세에서 "지금 만난 나이 여든 할머니도 손주 등록금 걱정을 한다"며 이명박의 자립형 사립고 등록금과 비교해 자신의 공약을 피력했다. 보육, 교육, 의료, 노후, 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과 함께 권 후보는 월급 받는 농민 100만 명 양성과 한미FTA 반대 유일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홍천 유세를 한 시간 만에 끝내고 유세단은 바로 횡성 3일장으로 이동, 원주까지 유세를 진행했다.

 

홍천과 횡성 유세장에서는 대통합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선거운동원들도 눈에 띄었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주황색 옷을 입고 있어 쉽게 구별이 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춘천 선거운동원들은 "열심히 유세를 해도 언뜻 보면, 대통합 민주신당인 줄 안다"며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 유세로는 처음으로 강원도를 찾은 권영길 후보. 권영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정치 불신이 팽배하다. 권 후보의 전방 5m를 제외하고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막상 손을 잡으면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투표는 하겠다고 한다. 요즘 매일같이 언론에 나오는 정치 불신이, 어쩌면 서민들의 애증에서 나온 겉보기 현상은 아닐까? 정말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는 나라.

 

기자가 보기에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대통령 후보들에게 ‘왕삐침’으로 토라져 있지만, 먼저 다가가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사는 속내를 드러낸다. 누구 하나 마땅한 후보가 없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시대, 유권자들의 표는 후보가 한 명 한 명 스칠 때마다 갈대같이 흔들리고 있다.


태그:#강원도유세, #권영길, #민주노동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