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냥터는 중랑천. 충전기에 꽂혀있는 명함크기만한 디카와 핸드폰을 챙겨서 점퍼주머니 이 쪽 저 쪽에 나눠 넣고 발편한 등산화를 꺼내 신고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전거 전용도로의 좁다란 왕복선엔 자전거와 롤러브레이드가 사람들 사이사이를 비켜가며 씽~씽~ 잘도 달린다.
길 옆 자연학습장엔 이름 모를 농작물이 두 차례 내린 눈에도 끄떡없이 마냥 버틸 것처럼 푸르름을 뽐내고, 물 위엔 몸집이 작고 병아리처럼 동글동글 목이 짧은 흰뺨검둥오리 떼가 무리 지어 물 속 깊숙이 머리를 묻고 물고기를 낚는 모양이다.
새들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습성이 있는지 저만치 떨어진 곳에는 고방오리들이 제철을 만난 듯 물살을 가르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난 사냥감을 발견한 포수처럼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한 쌍의 고방오리에게 시선이 멈춘다. 살금살금 숨을 죽이고 조준 그리고 발사~ 찰칵~! 금슬 좋은 중년부부의 모습을 닮은 고방오리의 다정한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또 무엇이 있나 두리번거리며 발길을 옮겨본다. 저만치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아가씨의 모습도 놓칠세라 줌으로 당겨 찰칵~! 흐르는 물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포클레인 두 대가 사이좋게 하천 제방공사를 하고 있는 광경도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수락산 중턱에 세워진 송전탑이 평소엔 산의 경관을 해치는 이물처럼 느껴지더니 오늘은 어느 예술가가 설치해 놓은 조형물처럼 꽤 멋스러워 보인다.
문득 원효스님의 ‘一切唯心造’란 말이 떠올랐다. 그가 당나라에 유학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숲 속 무덤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잠결에 몹시 갈증이 나 바가지에 담긴 물을 달게 마시고는 다시 잠에 빠진다.
그런데 이튿날 깨어보니 그 물은 바로 해골바가지 속에 고여 있는 물이었다. 순간 갑자기 구역질이 나면서 쓴물까지 다 토해내며 깨닫게 된다. 간밤에 달게 마신 물이나 지금의 물이 하나도 다를 게 없는데 더럽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 마음의 작용임을. 지금 이 느낌도 바로 그 거였다.
나만큼이나 추위를 타시는지 완전무장을 하고 나오신 노부부의 느릿하면서도 당당한 뒷모습에서 풍성한 자식농사와 겨울채비를 다 끝낸 듯한 여유로움이 배어나온다.
온 길을 돌아보니 꽤 먼 거리를 와 버렸다. 손도 시리고 하천바람의 차가움이 뺨에 닿는다. 춥기도 하거니와 다시 되돌아 갈 엄두가 나질 않아 대로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여학생의 움츠린 어깨가 더 춥게 느껴진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아 디카에 담긴 사진을 보면서 이것을 글감으로 기사를 쓸 생각을 하니 흡족한 마음에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요리사가 여러 가지 식재료를 손질해 갖은양념으로 맛을 내고 예쁜 그릇에 담아 손님 앞에 내놓고 음식에 대한 평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쓸 만한 사진을 선별하여 크기를 조절하고 그에 맞는 스토리를 전개, 수차례의 퇴고를 거처 송고를 한 다음 편집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사로 태어났을 때의 신선한 기쁨은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이 되어 또 다른 글감을 찾아 나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