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작가의 뒷심이 발휘되고 MBC 드라마 <아현동 마님>이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시청률 20% 대에 안착했다. 아직은 오락가락하지만 적어도 <아현동 마님>이 방송되고 있음을 시청자들이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는 반면,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가 이처럼 공감을 얻지 못하는 드라마도 아마 없을 것이다.
주인공들, 너무 완벽해서 정 떨어져!40세의 나이에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백시향(왕희지)이 연하 후배 검사 부길라(김민성)와의 사랑을 뒤로 한 채 성종(이동준) 사장과 결혼을 결심한 배경은 식구들의 강력한 권유와 압박 때문이다.
20대도 아니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자가 동생들의 등살에 못 이겨 결혼을 결심한다는 설정이 아무래도 시청자들에게 역효과를 얻고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 너무나 완벽한 여자와 완벽한 남자의 조합이 한몫을 하고 있다.
40세의 여자가 30대 초중반의 미모를 겸비하고 있으며, 학창시절 공부도 잘해 검사라는 직업을 가졌다. 그리고 착한 맏딸로 가장 노릇을 하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심성까지 곱다. 여기에 연하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호텔 사장 성종으로부터 열렬한 구애를 받으니, 시청자들의 마음이 적잖이 불편하기도 할 듯싶다.
어떻게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캐릭터이다 보니 너무나 평면적으로 그려질 뿐더러 시기와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뿐 시향에게는 여백의 미를 찾아볼 수 없다. 남자 주인공 부길라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완벽한 이 남자가 연상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보여주는 순애보에도 동정심마저 들지 않는다.
더욱이 이들이 보여주는 지지부진한 사랑법은 혀를 찰 정도로 진부하고 80년대식의 사랑 스토리 라인을 따르고 있어 시청자들은 답답하고 분노만 표출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으레 남녀주인공의 애잔한 사랑에 초점이 맞춰지고 시청자들도 그들의 사랑과 이별에 울고 웃어야 하지만 무엇 하나 빠지지 않은 이들이 사랑에 목을 매는 모습에 “어우! 어우!” 소리를 내뱉으며 복장만 뜯을 뿐이다.
뚱녀 자매들에게 왜 정이 가는 걸까?
하지만 시향의 두 동생 금녀(박준면)와 미녀(박재롬)는 정반대의 캐릭터이다. 이들처럼 게으르고 무식하며, 안면몰수를 잘 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완벽한 언니를 둔 구제불능 두 동생일 뿐이다.
이름부터 느낌이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기에 이들의 태생이 찬밥덩어리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 챌 수 있다. 여기에 거대한 뚱녀로 그려지면서 밥만 축내는 신세로 전락, 아버지로부터 온갖 구박을 다 당한다.
둘째 딸 금녀는 꽃집 하겠다고 박박 우겨 개업을 했으나 말아 먹고, 그 뒤로는 집에서 백수 생활을 하면서 밥만 축내는 신세가 되었고, 미녀는 여러 가지 방황 끝에 탭댄스 강사를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다.
그래서 두 뚱녀 자매는 집에서 늘 구제불능을 취급을 받고 언니 시향과 사사건건 비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들은 일도, 사랑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없는 의지박약한 인물로 그렸다.
이러한 캐릭터 덕분에 시향과 비교되며 그녀를 더욱더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더불어 시청자들도 이들의 구제불능에 진저리 치기 시작했다. 더욱이 금녀는 언니 시향을 성종과 결혼시키고자 대놓고 이야기했다.
“잘난 언니 덕 보고 싶은 게 그리 큰 욕심이야!”뻔뻔하고도 뻔뻔한 모습을 선보이며 적극적으로 언니 덕에 그야말로 팔자 한 번 고치자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악을 쓰며 대들고, 사랑하지도 않음을 뻔히 알면서도 “정신차려!”라고 언니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한 마디로 두 동생은 언니 시향을 볼모로 자신들의 안위와 결혼을 어떻게 해볼 요량이었다. 이런 그녀들의 태도에 시청자들의 분노 지수도 나날이 높아졌다. 그렇다. 우리의 뚱녀 자매는 너무나도 속물적이었다.
그런데 왠지 이들에게 오히려 주인공 시향보다 정이 가고 공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녀들의 뻔뻔스러움에 분노가 급상승하기도 하지만 <아현동 마님>의 인기 요인으로 급상승중이다. 아니 적어도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뚱녀 자매 때문이라면 이상한 것일까?
금녀의 사랑에 축복만 있기를 빌어!
그렇다면 그녀들을 조금이나마 대변해보겠다. 우선 주인공 시향보다 뚱녀 자매는 현실적인 부분이 많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시향은 너무나 완벽해 현실에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 아무리 처녀라지만 마흔 살쯤 되었으면 애써 털털한 척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리 될 터인데, 온실 속의 화초 같은 그녀.
반면 나이가 한두 살 적지만 오히려 언니보다 더 아줌마 같은 금녀와 미녀를 보면서 완벽한 시향과 대조적이어서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않지만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을 법한 인물이다. 왜 집안에 한 사람씩은 무슨 일을 해도 꼬이고, 무얼 해도 실망을 주는 인물들이 있지 아니한가.
또한 시향이보다 더 솔직하다는 점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밑바탕에는 잘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은 언니가 있다면 기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것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금녀와 미녀의 심정이 무조건 밉지 만은 않다. 동생들의 뜻에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결혼을 감행하는 시향이 오히려 더 얼토당토않다.
그 다음으로 최근 들어 불이 붙어가는 금녀의 사랑법이다. 언니 시향이 부길라와 지지부한 사랑을 펼치는 것에 반해 일단 금녀의 사랑법은 직설적이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답게 그녀는 하얀 피부와 곱상한 외모에, 7급 공무원이라는 말에 그를 보자마자 휴대폰을 바꿔치기 하고, 거짓말도 살짝 하면서 그로부터 후한 점수를 딴다.
물론 그녀의 사랑법이 거짓말로 점수를 얻었기에 누구도 쉽게 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뚱뚱한 몸매와 외모는 역시나 걸림돌로 작용될 것이다. 상대는 전혀 자신의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러한 가운데 그래도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드라마 속에서 뚱뚱하다는 것 하나로 모든 인생이 꼬이고 의지박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에 반해 일취월장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결혼만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과 해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자신의 사랑을 쟁취해 나가는 금녀의 모습 때문이다.
그녀의 용기가 대견하다. 아버지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냉면 그릇에 밥을 먹던 그녀가, 자신의 팔자를 언니 덕에 고쳐보겠다던 그녀가, 스스로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사실 그마저도 남자에 기대보겠다는 심산이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럼에도 수동적인 사랑방식을 보여주는 시향보다 더욱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답답하던 <아현동 마님>의 사랑이 좀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보다도 더욱 공감이 가는 우리 뚱녀 자매 금녀와 미녀를 응원해보자. 또 누가 알까, 그들이 인기가 남달리 올라가 작가가 제 정신을 차리고 진짜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려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