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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지도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칭찬과 지적을 뒤섞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칭찬을 하라고 하면 “하고 있는데요?”라고 반문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물론 맞는 말이다. 글쓰기 선생님들이 칭찬을 하고 있는 것은 맞다. 문제는 아이들이 칭찬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모들도 아이들 글을 보고 칭찬을 하기는 한다. “잘 썼네”, “표현이 좋은 걸”, “참신한 생각이다”와 같은 말은 흔히 한다. 그런데 역시 아이들은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칭찬이 진짜 칭찬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맞춤법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초등학생인 규현이가 쓴 글이다. 주제는 '우리 가족에게 있는 미덕은 무엇인가'다. 이 글을 칭찬해 보자.

원고지 쓰기 02-01
 원고지 쓰기 02-01
ⓒ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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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이 글을 지도하면 다음과 같이 하게 된다.

가족들이 규현이에게 주는 배려를 잘 적었다. 그런데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많이 틀렸다. 특히 ‘을’과 ‘를’을 제대로 구분하자. '을'은 앞 글자에 받침이 없을 때, '를'은 앞 글자에 받침이 있을 때 사용한다.

* 나을날래준다 → 나를 달래준다.
* 배려을생각했다.  → 배려를 생각했다.
* 배려을비푸러쌀과 돈을  →  배려를 베풀어 쌀과 돈을
* 저분주에스님이  →  저번 주에 스님이
* 구걸했을때  → 구걸했을 때
‘왜냐하면’ 다음에는 항상 ‘때문이다’가 와야 한다. :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 나를 달래주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선생님이 지도를 한다고 했을 때 규현이는 ‘규현이에게 주는 배려를 잘 적었다’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일까? 안 받아들일까? 안타깝게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칭찬은 칭찬이 아니다. 아이는 이러한 칭찬은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단 칭찬하는 분량보다 지적하는 분량이 너무 많다.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이처럼 많은 지적을 하게 되면 칭찬은 곁다리처럼 끼게 된다. 지적을 하기 위해 의례 것 하는 칭찬으로 여겨 버린다.

또한 ‘잘 적었다’는 말 정도로는 진짜 칭찬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잘 적었다’라고 평가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칭찬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 지도가 틀린 건 아니다. 칭찬한 내용도 맞았고, 지적할 내용도 맞았다. 내용은 분명 정확했다. 문제는 칭찬하는 형식이고, 문제를 지적하는 방법이다.

일단 칭찬하는 양이 문제를 지적하는 양보다 월등히 많아야 한다. 시간으로나 분량으로나 칭찬이 넘쳐나야 한다. 그렇다면 “가족들이 규현이에게 주는 배려를 잘 적었다”라는 칭찬을 어떻게 하면 넘쳐나는 칭찬으로 바꿔야 한다.

규현이네 가족에게는 배려가 넘쳐나는구나. 가족들이 규현이에게 주는 사랑과 배려가 느껴져 선생님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엄마가 스님에게 쌀을 주는 모습에서 배려를 배운 규현이가 정말 멋지다.

이제 지도를 해야 한다. 규현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문제가 많다. 이 부분을 그대로 두고 넘어가기는 어렵다. 특히 ‘을’과 ‘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은 반드시 짚어주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적해야 할까? 내가 실제 수업에서 한 내용을 여기 소개한다.

(1) 마침표를 참 잘 찍었다. 특히 첫 문장에서 ‘배려이다.’다음에 마침표를 잘 찍었다.
     전에 가르쳐 준 것을 잊지 않았구나.
(2) ‘을’과 ‘를’을 정확히 사용하자. 아래 예를 보고 직접 구분해 보자.
   ‘을’ : 나를, 배려를, 엄마를
   ‘를’ : 스님을, 가족을, 사랑을


먼저 마침표를 잘 찍었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고서 ‘을과 를’을 구분하지 못한 점을 지도했다. 같은 맞춤법 영역 중 한 부분은 잘했다는 점을 분명히 부각시킨 후, 부족한 점을 깨닫게 했다. 규현이가 모든 맞춤법을 다 잘 못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부분도 있고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을'과 '를'을 구분하는 원리도 스스로 찾아 내도록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과연 마침표를 잘 찍었다고 칭찬해준다고 해서 그걸 아이가 칭찬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마침표를 참 잘 찍었구나.”

분명히 이 말은 칭찬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말은 분명 아주 훌륭한 칭찬이다. 왜 그런가?

아래는 규현이가 쓴 원고지다.

원고지 쓰기 02-02
 원고지 쓰기 02-02
ⓒ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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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일반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마침표 찍는 원리를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다.

원고지 쓰기 02-02
 원고지 쓰기 02-02
ⓒ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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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는 문장이 끝나는 부분에 찍는다. 즉 마무리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마무리한다는 의미의 마침표를 원고지 ‘시작’에 찍는다는 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위와 같은 경우 ‘배려이다’의 ’다‘와 같은 칸 안에 마침표를 찍거나, 옆으로 한 칸을 만들어 찍는다. 일반적으로 작은 기호(마침표, 쉼표)는 규현이가 쓴 것처럼 적고, 큰 기호(느낌표, 물음표)는 옆에 한 칸을 만들어서 적는다.

조금 신경 쓰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운데 규현이는 앞 시간에 배운 마침표를 찍는 원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칭찬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규현이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듬뿍 칭찬을 해주었다.

“마침표를 잘 찍었구나”라는 말 한마디는 결코 칭찬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그것이 훌륭한 점인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면 아이는 진실로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칭찬은 해주는 사람이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칭찬은 칭찬을 받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잘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의례 것 하는 칭찬, 겉치레로 하는 칭찬, 판단만 있고 설명이 없는 칭찬은 칭찬이 아니다.

그런데 ‘을과 를’을 제외한 잘못된 띄어쓰기, '왜냐하면~때문이다'에서 '때문이다'를 쓰지 않은 실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그냥 두고 넘어가도 된다. 굳이 여기서 지적을 할 필요가 없다.

이 글을 통해 드러난 규현이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을과 를’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 하나만 분명하게 인식하고 넘어가도 충분하다. 나머지 문제점을 자꾸 지적하게 되면 칭찬하는 양 못지않게 지적하는 양이 늘어나서 칭찬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지적은 칭찬이 지닌 효력을 갉아먹지 않는 가운데, 칭찬의 힘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태그:#글쓰기, #칭찬, #첨삭, #논술,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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