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등반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새누야학 교실
▲ 수업현장 고등반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새누야학 교실
ⓒ 박창우

관련사진보기


알고 싶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그들에겐 어떤 의미인지.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나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 7·80년대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었던 우리네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 사회, 교육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그들의 선택은 '야학'이었다.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 모두에게 특별한 교육현장. 존재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는 야학. 최근에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감소 추세에 있다. 대신 장애우들을 위한 야학은 늘어나고 있다. 장애우들의 교육욕구를 해소할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전주에서만 2~3년 사이에 3곳의 장애우 야학이 생겼다.

줄어드는 야학 사이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다니고 있는 샛별야학과 장애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누야학을 찾았다. 오후 6시가 넘어서야 1교시가 시작되는 밤 수업의 현장, 그곳엔 늦게나마 학구열을 불태우며 밤을 밝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장애우 야학, 몸이 불편해도 학구열은 ‘활활'

2005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장애우 중 중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45.2%다. 이렇게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장애우들의 교육욕구를 해소해주는 곳이 바로 야학이다. 새누야학은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야학이다. 조립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맞은편의 고층 아파트와 대조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새누야학은 2005년 9월에 문을 열었다.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순 우리말 '새로운 누리'를 줄여 '새누'라는 이름을 지었다. 새누야학의 강현석 교장은 센터의 소장도 함께 맡고 있다.

"지역 내 장애인 분들을 만나다 보면, 이분들이 한글을 몰라서 약속장소를 잘 못 찾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교육적인 차별로 인해 소득이 없으신 분들도 계셨고요. 그래서 이분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하구나 싶어 새누야학을 열게 됐습니다."

야학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문제다.

"도와 도교육청에서 일부 지원금이 나오긴 하지만 지역 내 3곳의 장애인야학에서 나눠 가져야 하며, 인건비는 지원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죠. 그래서 새누야학에서 선생님을 맡고 계신 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집니다."

직장인·가정주부·목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교사로 참여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수업은 초등반·중등반·고등반(대학입시반)·일본어 회화반·베트남어 회화반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현재 학생 수는 15명 정도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고등반 영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일 먼저 급훈이 눈에 들어왔다.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황호장씨
ⓒ 박창우

관련사진보기

급훈처럼 학생들에게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반에서 가장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황호장(37)씨는 이곳에서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을 검정고시로 따냈다고 한다.

"여기 센터 소장님을 알게 돼서 야학에 나오게 됐어요. 학교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했는데, 여기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검정고시로 중등과정까지 마쳤어요. 단어하고 문장을 잘 몰라서 영어가 제일 어려워요. 대학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태어날 적부터 뇌성마비를 안고 살아온 정해선(30)씨도 반에서 소문난 우등생. 비록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누워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누구보다 열심이다.

"지난 8월 검정고시에서 수학과 사회, 가정을 붙었어요. 수학을 가장 어려워했는데 붙어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내년 4월 검정고시에서 나머지 과목도 통과해 꼭 대학에 가고 싶어요. 원래는 컴퓨터와 애니메이션 쪽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어요. 만약 대학에 가게 된다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싶습니다."

해선씨도 영어가 어렵기는 마찬가지.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쓰기 위해 뒤돌아선 순간, 지루함에 하품을 하다가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선생님의 발음을 따라한다. 몸이 불편해 필기는 할 수 없지만 글씨 하나라도 놓칠까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배움을 향한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I was entering the room, he~"
“I was entering the room, he~"

조립식 건물 안의 좁은 교실은 배움을 향한 열기로 가득했다.

휠체어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정해선씨
▲ 정해선씨 휠체어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정해선씨
ⓒ 박창우

관련사진보기


야학 교사, "가르치기보다 배우고 간다"

배우는 학생이 있으면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기 마련. 금암동에 위치한 샛별야학을 찾아 낮에는 대학생, 밤에는 야학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야학 교사들을 만났다.

"제가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배우는 게 더 많아요. 전 단지 책에서 읽고 배운 내용만 가르치지만 어르신들을 통해 인생 경험을 배우거든요. 야학 교사를 하면서 동아리를 다 그만두게 됐지만 오히려 동아리 활동보다 여기서 얻는 게 더 많아 만족하고 있어요."

영어와 과학을 담당하는 최주홍(21)씨는 부모님과 친구들도 야학교사 하는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해줘 더욱더 힘을 낸단다.

"처음엔 부모님도 괜히 시간만 빼앗기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셨는데, 지금은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격려를 해주세요. 한 번은 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제가) 가르치는 10대 아이가 저를 보고 '선생님~'하고 부르는 거예요. 친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네가 무슨 선생님이냐~!'고 얘기했지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1981년에 개교한 샛별야학은 40대와 50대 전후의 중장년층이 주를 이룬다. 학생 수는 30~40명 정도. 8명의 대학생이 선생님이 되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개교 당시 경원동에서 출발한 샛별야학은 88년 금암동 새마을 금고 건물(현재 건물) 3층으로 이전했고, 95년부터는 지하에서 운영되고 있다. 검정고시가 있는 4월과 8월을 기준으로 1년에 3학기가 진행되며, 샛별반(기초반), 작은별반(중학과정), 큰별반(고등과정)으로 나눠 수업한다.

야학 교사들은 가르치기보다는 '배우는 게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가장 크게 배우는 것은 책임감. 우연찮게 화장실에서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는 김정복(22)씨는 호기심이 책임감이 되고, 책임감이 삶의 일부가 됐다고 한다.

"학교가 끝나면 술 마시고, 게임방 가고, 놀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시간에 뭔가 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주위에서 앞가림도 못하면서 누굴 가르치느냐며 부정적으로 바라봤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제 스스로도 나쁜 습관을 버리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담임을 맡고 있는 손미서(21)씨는 책임감과 더불어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고 있단다.

"학기 초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위해 지원을 했어요. 어르신들을 상대로 담임을 맡고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책임감을 느끼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맡은 반에 계시는 어떤 어머니가 힘든 일이 있었는데, 제가 상담을 하게 되었어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냥 손잡아 드리고 대화를 나눴는데, 뭔가 도움을 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이들은 절대 다른 대학생들에게 야학교사가 돼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야학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자신이 배움을 얻어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야학교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다.

배움의 시작은 늦었을지언정, 그 열정만큼은 뒤지지 않는 곳. 야학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빛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 뉴스(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야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