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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자루칼. 후기의 것으로 장식이 기존에 비해 세세하게 되어 있으며 손잡이와 자루 끝 부분이 따로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고리자루칼. 후기의 것으로 장식이 기존에 비해 세세하게 되어 있으며 손잡이와 자루 끝 부분이 따로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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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칼은 선사시대를 지나 역사시대로 가면서 변하게 된다. 청동검에서 철검 혹은 철제 칼로 바뀌는데, 그렇게 됨으로 인해 형태도 변화한다.

동병철검은 그 과도기에 있으며 그 이후부터는 짧은 철검이 다수 출토된다. 그리고 이들은 점차 그 크기가 크고 길어지며 검 외에 칼이 등장한다. 또 칼자루의 끝에 고리가 생긴 것들도 보인다. 이런 방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 칼을 정점으로 하여 한국의 칼은 발달하게 되고 일본에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환두대도? 고리자루칼?

이를 가지고 고고학에서는 환두대도(環頭大刀)라고 부른다. 그리고 최근 들어선 고고학 용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글표기를 많이 쓰는데 환두대도는 '고리자루칼', '둥근고리큰칼' 등으로 부른다. 이는 한문을 그대로 풀어 쓴 것이며 이중에서도 고리자루칼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 환두대도라는 용어가 과연 문제 없는 용어일까? 이름 그대로 풀이해보자. '환두(環頭)'는 '고리 머리'라는 뜻이다. 이는 칼자루의 끝을 머리라 보고 거기에 고리가 붙어 있다는 데에서 붙은 이름이다. 그리고 '대도(大刀)'라는 말은 말 그대로 큰 칼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과연 그 당시의 칼들이 클까? 당시의 칼들은 그 크기가 1m를 좌우한 것으로서 사실상 1m를 넘는 것은 많지 않다. 그리고 1m를 넘는 칼은 자루에 고리가 없는, 그런 것들이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고창 장곡리에서 출토된 것과 함평 신덕고분의 것이 그것이다.

칼 중에서는 그 크기가 180㎝를 넘는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순신장군이 쓰던 장검의 경우 197㎝나 되며, 중국의 쌍수장검, 일본의 야태도도 180㎝가 넘는 것들이었다. 이는 서양의 투핸드소드나 츠바이한더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도검에 비해서는 결코 당시의 칼들이 크다고 하기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언월도나 미첨도 같은 무기를 대도라고 부른다. 이는 앞서 말한 고리자루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며 그 사용방식도 다르다. 이들은 곡도(曲刀), 즉 휘어진 날을 가진 칼의 자루를 길게 만든 것으로써, 내려쳐서 베는 식의 공격을 한다.

이삼장군 언월도. 이러한 언월도를 대도라고도 부른다.
 이삼장군 언월도. 이러한 언월도를 대도라고도 부른다.
ⓒ 논산시군사문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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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대도'란 명칭이 붙게 된 것일까? 스에나가 마사오(末永雅雄)가 쓴 <本上代の武器>라는 책에 이런 부분이 있다.

"태도(太刀)라고 쓰는 것은 일본의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이후에 많이 나타나며 그 이전에는 대도(大刀)라고 쓰는 것이 타당하다."

즉 여기에서 말하는 태도나 대도는 우리가 소위 일본도라고 부르는 일본의 카타나를 구분하기 위해서 쓰는 명칭일 뿐이다. 일본에서도 고리자루칼을 그대로 환두대도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외의 칼 중 모양이 다른 것들은 원두대도, 규두대도, 두추대도, 흑작대도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대도라는 용어는 중국의 대도와 똑같지만 전혀 다른 무기이며, 중국의 언월도 같은 무기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존재하였다. 게다가 본디 대도라는 표현이 일본에서 일본도의 구분을 위해 쓴 것이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의 고고학에서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박물관에서 주로 '고리자루칼'로 많이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정작 고리가 없거나 고리 외에 다른 장식이 붙은 칼들을 포괄하여 쓰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해서 '자루칼'이라고 하기엔, 애초에 자루가 없는 칼이 없기에 그 개념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 환두대도란 용어는 문제가 많으며, 그렇기 때문이라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적당한 말이 없기에 본고에서는 기존의 환두대도에만 국한하여 고리자루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삼국시대엔 어떤 칼을 썼을까?

초기의 고리자루칼. 칼날과 손잡이가 일체형인 것이 특징이다.
 초기의 고리자루칼. 칼날과 손잡이가 일체형인 것이 특징이다.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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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초기의 고리자루칼들은 그 모습이 밋밋하며 실용적이다. 그리고 칼이 일체형, 즉 큰 철 하나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칼날과 자루부분의 너비가 거의 비슷한 것이 특징이다.

용무늬고리자루칼.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으로서 백제의 고리자루칼 중에서도 명품으로 꼽힌다.
 용무늬고리자루칼.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으로서 백제의 고리자루칼 중에서도 명품으로 꼽힌다.
ⓒ 국립대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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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후기의 고리자루칼은 이와 다르게 칼날과 고리가 분리되어 제작되고 자루는 나무로 제작하여 부착한다. 그리고 칼날 아래에 자루와 부착 할 수 있게 한 부분, 이른바 슴베가 기존과는 다르게 얇고 길어지는데, 여기에 나무 손잡이를 씌움으로서 적을 내리칠 때 손끝으로 오는 충격이 약해지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 왜 검에서 칼로 바뀌게 되는 것일까? 검과 칼 중에서 만들기 까다로운 것이 검이다. 칼은 대량으로 생산하기가 좀 더 용이하며, 베는 공격을 위주로한다. 칼은 그 형태상 찌르는 공격이 주가 되는데, 찌르는 공격은 적의 급소를 바로 찌를 때 치명상을 높인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베는 공격은 적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대규모로 싸우게 되면 적을 죽이는 것보다 적을 다치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전투 불능의 부상병을 만들어 생존자들이 부상병들을 부축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적의 전투력을 낮추는 효과를 낸다. 이는 화기 등장 이전까지 지속된 양상이다.

삼국시대 후기가 되면 칼에 장식이 더해지게 된다. 그 장식은 여러 가지로 대표적인 것이 삼엽문, 즉 세 이파리로 된 장식이나 용봉문, 즉 용이나 봉황 무늬다. 이들은 한반도 남부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그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특히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고리자루칼은 그 예술성이 대단하다. 용 한 마리가 고리 안에 조각되어 있고 그 주위를 두르고 있는 고리도 금으로 장식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의 자루 양쪽 끝에는 새가 은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금실과 은실이 자루를 감고 있다. 이는 당시 무령왕의 대단한 권세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고리자루 칼 외에도 여러 진귀한 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견된 계림로장식보검이 있다. 보물 635호로 지정된 매우 귀한 몸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계림로 14호분은 작은 무덤이었지만, 그 속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거의 왕릉급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한 유물들이 많다.

계림로장식보검. 중앙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며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되었다(보물 635호).
 계림로장식보검. 중앙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며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되었다(보물 635호).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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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일본에서 건너 온 것으로 보이는 규두대도나 원두대도 또한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삭도라고 하는 작은 칼도 쓰였는데, 이는 실생활에서, 혹은 목간의 지우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목간은 당시 종이 대신에 썼던 작은 나무판으로 그곳에 글씨를 쓰고 나서 그것이 잘못 되었을 경우 재빨리 살짝 깎아내어 다시 글씨를 쓰기도 하였다.

한국의 칼은 생각보다도 그 모습이 매우 다양하고 그 모습도 화려한 것들이 많다. 삼국시대의 칼들은 주로 발굴을 통해서 그 모습이 밝혀졌으며 그 자료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한국의 고리자루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용봉문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일본 용봉문은 그 아름다움이 백제에 비해 떨어진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위세품의 성격이 강해지고 지방 세력들에게 위세품으로 하사되곤 하여 그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수요가 늘어나 간단하게 만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참고로 칼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윗사람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칠지도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국립대구박물관에 갔다와서 쓴 글이며 예전의 '한국의 칼' 특별전에 진열되었던 유물들을 위주로 썼습니다.



태그:#국립대구박물관, #한국의 칼, #고리자루칼, #환두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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