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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울리는 요란한 스피커 소리

12월 5일 전남 여수 화태도 섬마을 스피커가 요란하다.

"오늘 여수에서 치과 진료 봉사단이 우리 마을을 방문합니다. 지난 10월에 진료가 완료되지 못하신 분이나 미처 진료 받지 못한 분들은 점심 식사 후 화태초등학교로 오시면 진료 받을 수 있습니다."

10시가 지나면서 진료가 시작되었다. 휴대용 치과 진료기계가 설치되었다. 치과병원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무서운 기계보다는 다소 조잡하지만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것부터 '쏙쏙' 소리를 내며 고인 침을 뽑아내는 것, 머리 위에서 내리 비치는 조명까지 그대로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여수 예치과 원장, 신정일)과 4명의 간호사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여느 치과병원과 다름 없다.

치과병원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있다.
 치과병원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있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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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학생이 울상을 지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 3학년은 다섯명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2학년 차례가 왔다. 2학년인 은영이는 얼굴에 눈물이 가득하다. 아직 한 번도 치과에 가보지 않았다. 열심히 양치를 하지만 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건강한지는 알 수 없다.

주변 친구들로부터 주워들은 치과에 다녀온 이야기만으로도 무섭기 짝이 없다. 초등학생들이 공부하는 1층 복도를 지나 건물 동편의 다목적실에 가는 길이다. 다목적실에 다가가자 치과 치료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비명소리는 없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진료 받기전 지료카드를 작성한다. 아이들은 벌써 무서움에 떤다.
 진료 받기전 지료카드를 작성한다. 아이들은 벌써 무서움에 떤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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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순번 친구가 아무런 이상 없이 진료를 마치고 나서면 자기 일인듯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몇몇 친구는 벌린 입에 윙윙 거리는 기계가 서너번 왕복하고 주사를 맞기도 한다. 아프다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다리만 비비꼬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녀석들의 표정은 가관이다.

자기가 아픈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살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도망하다 선생님에게 잡혀 돌아온다. 아이들은 큰 이상이 없다. 충치 몇 개 치료하고 치석을 제거하는 정도다. 눈물 흘리며 진료를 마친 녀석들은 개선장군처럼 당당하다.

이 순간만은 의사선생님이 괴물이다.
 이 순간만은 의사선생님이 괴물이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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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진료 때 40여 분의 마을 주민이 치료받았다. 치과의료봉사단에서 준비한 치과  재료가 부족해 마무리를 못한 마을 어른들이 학교에 왔다. 의치를 고쳐야 하고 충치로 크게 손상된 치아를 치료해야 한다. 차례를 기다리는 어른들의 표정도 밝지 않다. 아이들이 내놓고 울상을 짓는 것이 부러운 눈치다.

분주한 간호사 사이로 불안한 모습의 마을 어른들이 보인다.
 분주한 간호사 사이로 불안한 모습의 마을 어른들이 보인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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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무서워라.' 기다리는 마을 할머니들
 '아이고 무서워라.' 기다리는 마을 할머니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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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안 받게 무슨 좋은 핑계거리 없을까?

마을 어른들 진료기록 일부
 마을 어른들 진료기록 일부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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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사람들에게 치과는 멀고 험한 길이다. 다른 곳이 아프면 생활을 할 수 없으니 열일 제치고 달려나가지만, 이가 아프면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기 십상이다. 여객선 타고, 군내버스를 또 타야하는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하고, 고구마 빼깽이 거두는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더 핑계가 좋다. 아이들이 쉬는 날은 치과도 쉰다. 혹 평일에 치과를 가려면 학교를 빠져야 한다. 가고 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나면 여객선이 끊기기 때문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치과 진료는 무섭기 한가지다. 무섭기도 하지만 만만찮은 비용에다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자식은 오복이 아니라도 이는 오복에 든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가 좋은 것이 큰 복임을 왜 모르겠는가? 힘겨운 생활에 작은 고통쯤은 그냥 견디고 사는 것이 섬사람들의 생활이다.

이번 의료봉사에 나선 사람들은 전남 여수시 예치과병원(전남 여수, 원장 신정일) 소속 의사와 간호사들이다. 2007년 초 섬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치과의료봉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예치과의료봉사단을 꾸렸다.

의료봉사용 선박과 휴대용 치과 진료 장비를 갖추어 지난 9월 경도 주민을 대상으로 처음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2명의 의사와 14명의 간호사로 구성된 병원 가족을 두팀으로 구성하여 의료봉사활동 기간 동안의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의료봉사를 하게된 이유를 물었다.

"병원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오면 좋아요."

환하게 웃는다. 더 물을 수가 없다.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한다.

"아이고 보철을 다시 해야겠네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눈으로 답하는 할아버지. 이리 저리 바삐 움직이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의 모습이 곱다.

"어른신, 보철을 다시 해야 하겠네요."  "…응…"
 "어른신, 보철을 다시 해야 하겠네요." "…응…"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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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남중화태분교장, #예치과의료봉사단,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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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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