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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집 뒤편이 산자락인 학교라 해도 딱따구리가 학교 건물에 구멍까지 낼 줄이야!
▲ 딱따구리 집 뒤편이 산자락인 학교라 해도 딱따구리가 학교 건물에 구멍까지 낼 줄이야!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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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희한하더라구~ 어디선가 딱딱딱딱 소리가 나던디 바로 저거였구먼!”
“이야~!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벽까지 뚫을 생각을 했을까?”

지난 11월 말, 교무실 창가에 삼삼오오 교사들이 모였다. 옆 건물인 중학교 측면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딱따구리였다. 잠수부가 자맥질이라도 하듯 구멍에서 고개를 뺐다 넣었다 분주했다.

“어이! 박 선생! 지금 뭐하고 있능겨! 얼렁 가서 사진 좀 찍어 놔야지!”

급히 카메라를 챙겼다. ‘아이구, 이 놈의 똑딱이 카메라!’ 아무래도 망원 렌즈가 필요하다 싶어 평소 작품을 찍는 사진 전문가 샘을 불렀다. 흔쾌히 동행했다.

무슨 구멍일까? 지난 11월 말, 한 중학교 건물 외벽에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었다.
▲ 무슨 구멍일까? 지난 11월 말, 한 중학교 건물 외벽에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었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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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산을 타야 한다. 오전 8시. 산길 가파른 언덕에 서리가 내려 미끄러웠다. 덩치가 큰 정 선생이 카메라를 껴안고 두 번이나 미끄러진다. ‘아이구, 괜스레 저 때문에 미안합니다.’ 그렇게 딱따구리 집을 카메라에 담았다.

약 30미터 거리에서 망원렌즈로 잡은 딱따구리 집이다. 학교 건물 외벽에 딱따구리가 집을 지었다. 자세히 보면 시멘트 외벽에 덧붙인 방수 처리용 자재를 뚫었다. 어? 그런데 딱따구리는 어디로 간 걸까?

바로 이 녀석! 구멍만 파놓고 둥지를 틀지 못하고 있는 딱따구리.
▲ 바로 이 녀석! 구멍만 파놓고 둥지를 틀지 못하고 있는 딱따구리.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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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도 사진을 찍으러 간 직후부터 딱따구리가 보이지 않는다. 10분, 30분이 지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언덕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딱따구리는 다른 나무 위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오늘 현재 1주일이 지나도록 딱따구리는 자신이 파 놓은 집에 출입이 없다. 우리가 안 보는 사이 밤에만 들락거리는 것일까?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출근하여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는 순간부터 지켜봤다는 환경부장의 예상이다.

바로 이렇게! 딱따구리는 시멘트 외벽에 덧댄 방수 자재를 뚫었던 것!
▲ 바로 이렇게! 딱따구리는 시멘트 외벽에 덧댄 방수 자재를 뚫었던 것!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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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 보자구. 외벽에 덧댄 자재를 열심히 뚫긴 뚫었지만 그 안에 시멘트 외벽이 있을 테고, 그 시멘트 외벽까지 뚫자니 불가능한 일일 테고, 어디 제대로 집을 지을 공간이 있겠어? 그러니까 뚫어만 놓고 집을 짓지 못하는 거지. 안 그려?” 끄덕끄덕. 나는 수긍한다. 그런데 이건 또 웬 일?

비록 특종은 아니더라도 딱따구리가 학교 건물 외벽을 뚫고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을 세간에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 싶어 딱따구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12월 5일 점심 시간.

맛나게 밥을 먹고 동료 교사들과 딱따구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학교 건물에 딱따구리가 파 놓은 구멍이 세 개나 된다는 사실을 접했다. 확인해보니 사실이요, 진실이다.

정치가나 딱따구리나 다를 게 뭐 있어!

딱따구리 입장에서는 일단 파놓고 보자는 식이다. 괘씸한 녀석들! 구체적 계획도 없이 일단 뚫고 보자는 식의 딱따구리나 철새처럼 나타나 국민을 들먹이며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가들이나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건물 외벽에 난 구멍이나 우리 국민들 가슴에 공허하게 뚫린 구멍이나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하긴 여기저기 구멍 파놓고 절대로 안 팠다고 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


#딱따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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