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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방한계선 아래 비무장지대 내에서 불이 관측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북에서 고의적으로 불을 놓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우리 쪽에서도 맞불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먼저 병기관하고 중대장하고 ○번 쪽문에서 만나서 일단 크레모아를 제거해라.”
“그리고 철책근무자들에게 지시해서 전방 감시를 철저히 하고 조그만 움직임이라도 포착되면 즉시 보고하라고 전파해라.”


이 벌판은 이 맘때쯤 되면 풀과 나무가 말라 불을 놓으면 순식간에 타 들어간다. 북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DMZ에 불을 놓아 불 공격(?)을 펼치기도 했다.
▲ GP아래로 보이는 DMZ벌판 이 벌판은 이 맘때쯤 되면 풀과 나무가 말라 불을 놓으면 순식간에 타 들어간다. 북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DMZ에 불을 놓아 불 공격(?)을 펼치기도 했다.
ⓒ 국방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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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7년 12월의 어느 날. 한가했던 최전방 철책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바람소리만이 정막을 깨던 고요했던 최전방 지휘소는 상급부대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로 가득 찼고, 지휘소 또한 GP(Guard Post, 전초)와 긴급연락을 취하며 전방상황에 예의주시하고 있던 숨가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 시기에는 벌판의 식물들이 다 말라있고 허허벌판인 비무장지대여서 바람 또한 다른 곳에 비해 세차게 불어 한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져나갈 최상의 조건(?)을 갖춘 시기여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불이 어디까지 내려왔나?”
“아직까지는 북방한계선 부근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 우리 측 크레모아는 다 제거했나?”
“네, 불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접수하고 곧바로 지시해서 조치했습니다.”

“앞으로 불의 예상진로는?”
“다행히 북방한계선 쪽에 호수가 하나 있는데 바람의 방향으로 볼 때 그쪽 호수 부근에서 소멸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계속해서 주시하겠습니다.”

“만약의 상황이 발생해 호수를 피해서 온다면?”
“맞불작전을 펼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까지는 오지 말아야 할 텐데.”


상급부대 참모와 대대 작전장교의 통화내용이다.

우리의 예상대로 불의 진로가 진행된다면 북측 호수에서 불이 소멸되겠지만 만의 하나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진로가 틀어진다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까지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최초 보고가 들어온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으로 우리가 예상한 진로대로 불이 이동하고 있고, 불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가 지휘소에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긴장을 풀지 마라. 불이라는 건 완전히 소멸되어야 상황이 종료되는 거지 조금의 불씨라도 남아있으면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모르니까 계속해서 주시해라.”

아니나 다를까 ‘말이 씨가 된다’고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쪽 방향에서 불이 되살아났다는 보고가 접수됐다.

‘어쩜 불도 저 놈들하고 똑같을까! 고요했던 최전방의 평화무드를 깨고 있네.’

하지만, 다시 붙어 타오르던 불은 얼마가지 못해 북한한계선에 있던 호수 부근에서 완전히 소멸되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측 지역 안으로 불이 넘어 들어왔다면 우리 측이 맞불작전을 펼치던, 아니면 다른 조치를 취했던 간에 북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불로 인해 비무장지대(DMZ)안에 설치되어 있거나 과거로부터 묻혀 있을 지뢰 등의 폭발물이 터졌다면 또 어떠한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북측에서 비무장지대 안에 불을 놓았던 상황은 아무런 일없이 끝났다. 상황이 마무리 되고 나서 당시 초급장교였던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북에서 비무장지대에 불을 놓으면 최후의 방법이 맞불작전이라고? 맞불작전을 놓으면 양쪽 다 피해를 본다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맞불작전을 놓으면 양쪽의 불이 중간에서 만나서 자동 소멸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인데 결국은 이 작전을 펼치려면 GP요원들이 DMZ로 나가서 불을 놓아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하면 교전도 벌어질 수도 있고….’

아무튼 고의건 실수건 간에 비무장지대에 불이 난다면 양측 모두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남북정상이 만나고 군의 최고책임자들이 만나서 평화, 화해무드를 조성해 나가고 있는 시기에 이런 일은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귀순자도 탈북해서 내려오던 시기여서 이런 에피소드가 155마일 휴전선상에서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그것도 나무들이 바짝 말라서 불붙기 좋은 시기에는 말이다.


태그:#병영일기,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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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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