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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복어 상처를 입었는지 어린 가시복어 한 마리가 겁먹은 듯 모래 바닥 위에 엎드려있다. 제주 서귀포 가린여 수심 30m.
▲ 가시복어 상처를 입었는지 어린 가시복어 한 마리가 겁먹은 듯 모래 바닥 위에 엎드려있다. 제주 서귀포 가린여 수심 30m.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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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다이빙이 있던 날 아침, 다이빙을 하기 위해 숍으로 가니 선객 몇 명이 숍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이빙은 자주 하셨나요?"

숍의 사장 겸 알아주는 수중사진가이자 가이드이며 허드레 일꾼인 K가 선객들에게 물었다. 다이빙을 앞두고 몹시 들떠서 즐겁게 재잘거리던 선객들이 숍으로 들어선 나를 힐끔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예, 조끔, 다이빙을 한 지는 좀 됐고요."

우리는 단번에 이 사람들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물론 이는 그들의 다이빙경력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선객들은 다이빙을 시작한 지는 몇 년이 되었지만 막상 물 속에 들어가 본 횟수는 가물에 콩나듯 했다는 말이었다.

나도 선객들처럼 손님과 숍의 사장으로 K를 처음 만났었다. 그리고 1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물 속의 동지가 되었다. K가 내게 다가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형님 이 분들하고 같이 들어가야 되겠수다."

물 속 나이는 내가 아래지만 속세 나이는 내가 위다보니 형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K가 조심스럽게 말한 이유는, 오늘 나의 다이빙 목적이 이 사람들로 인해서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종종 맞딱드리는 일이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선객들은 부부와 그의 처남, 친구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들 5명의 손님과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낮 다이빙을 했다. 그러던 중 이들이 휴식시간에 우리의 나이트다이빙 계획을 듣고는 이왕 나선 김에, 정말 하는 것처럼 한 번하고 싶다면서 나이트 다이빙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내겐 난감한 문제였다. 자신들은 모르고 있지만 결국 내가 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은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초보자와 다이빙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그 때 나는 전시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탕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K에겐 돈이 걸린 문제였다. K에게는 생활의 근본문제였다. 물 속 상황에 따라서지만 이들은 아직 초보라 K 혼자서는 5명을 다 감당할 수 없다.

"조졌다."

물론 이는 내가 속으로 한 말이었다. 이미 온전한 한탕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내가 앞장 설 테니 형님이 후미를 맡아 줘요."

K가 말했다. 물론 나는 낮 다이빙에서 충실히 이 임무를 수행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 개개인의 다이빙능력도 파악해 뒀다. 나는 그중에 가장 약해 보이는 한 사람 주위를 돌며 그를 집중관찰, 감시, 보호했다. B도 이런 나의 마음을 느꼈는지 내 옆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가시복어 가시복어는 우리의 재촉에 못이겨 잠시 포즈를 취했으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 가시복어 가시복어는 우리의 재촉에 못이겨 잠시 포즈를 취했으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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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제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으며, 자신의 나머지 일행 4명을 제주도로 초청한 사람이었다. 그는 왠지 잠수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주 얌전하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 그는 잠수를 무서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일행을 초청한 사람답게 명랑하고 대범하게 행동해서 자신의 일행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힘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일행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던 셈이었다.

한탕의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왔을 때 B는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은 한껏 흥분해 방금 지나온 나이트다이빙의 비경을 복기하고 있었다.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 꿈속 같아요, 호박돔 봤어요? 그 물고긴(쏠베감펭) 이름이 뭐예요? 우와 정말 아름다웠어! 김 선생님은 어땠어요?"

이들은 수도권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30대 초반의 선생님들이었다.

"저는요, 무조건 사장님 오리발만 보고 죽어라고 따라갔어요. 오리발 놓치면 죽는다 싶어서요, 호호호, 나는 사장님 오리발 본 것밖에 생각 안 나요, 뭐가 뭔지…. 그래도 하여간 좋았어요, 당신도 좋았지?"

일행 중 여 선생님 한 분이 한 말이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30분간 휴식을 한 우리는 서둘러 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썰물이 많이 진행되어 수위는 파식대에서 1m 정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바다에는 검은 액체의 덩어리가 일렁거리는 것 같았고, 바람 속에는 태초의 냄새가 묻어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장비를 점검하고 물로 뛰어 들게 한 후 마지막으로 K와 내가 뛰어들었다. 진행방향은 첫 번째 탕과는 반대방향이었다. 시야는 5m 정도, 부유물들이 딱딱한 안개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가시복어 가시복어가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고 몸을 공처럼 부풀리고 가시를 세웠다. 제주 문섬 수심 15m.
▲ 가시복어 가시복어가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고 몸을 공처럼 부풀리고 가시를 세웠다. 제주 문섬 수심 15m.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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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에게 입수 사인을 보냈으나, B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볼 뿐이었다. B는 입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몇 번을 시도하다 힘만 뺀다는 걸 알고는 포기한 상태였다. 스쿠버를 한다는 사람이 입수를 포기하고 남의 도움을 기다린다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었으나, 그 시절을 겪은 나로서는 못 본 척 할 수도 없었다.

B는 두 번째 탕을 피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혼자 밖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일행 때문에 억지춘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흥분하여 호흡이 거칠어지면 입수는 안 된다. 사람들이 하나 둘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도리 없이 나는 B의 다리를 잡고 물 속으로 끌어내렸다. 이는 순전히 오리발 힘으로만 해야 했다. 물 속이지만 진땀이 나는 일이었다. 등허리를 타고 땀이 흘렀다.

힘들게 입수를 끝내고  K가 등에 진 탱크 위에 묶어놓은 파이로트 플래시의 번쩍이는 불빛을 보며 사람들이 일렬 종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선두에 K가 서고 그 뒤로 일행들이 따랐고 내가 후미에서 따라갔다. 가시거리 5m, 앞서가는 K의 몸이 보이지 않고 오리발만 보인다. 우리가 따라가는 속도를 조금만 늦춰도 순식간에 오리발도 회색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이다. 마치 4차원의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미약한 조류가 우리가 진행하는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이도 오리발질에 힘을 빼는 역할을 했다.

수심 10m를 유지하며 우리는 첫 번째 모퉁이를 돌았다. 한개창을 빠져나와 문섬의 바깥쪽을 돌고 있는 것이다. 외해로 나선 것이다. 절벽의 정상이 차츰 낮아진다. 아무래도 앞서가는 K의 속도가 빠르다. K의 다리는 오랜 물질로 근육이 붙었고 속도도 붙어서 자신이 보통으로 하는 오리발 질이 남은 온힘을 다해 따라간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는 듯했다. 여선생이 죽어라고 따라갔다는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수심은 20m를 넘고 있었다.

나이트 다이빙 수심 20m, 다이버가 연산호를 촬영하기 위해 코를 박고있다.
▲ 나이트 다이빙 수심 20m, 다이버가 연산호를 촬영하기 위해 코를 박고있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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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가던 2명 중 1명의 이상한 동작이 눈에 띈 것은 그때였다. 플래시 불빛 속에 B는 몸을 곧추세우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손으로 허공을 움켜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B에게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사이 B와 함께 가던 동료는 나와 앞서가던 K를 번갈아 보며 망설이더니 뒤를 나에게 맡기고는 K를 따라갔다.

나도 잠깐 갈등을 느꼈다. 앞서가는 K에게 이 상황을 알리면 좋겠지만 B를 두고 그를 따라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를 따라 가서 알리려 해도 죽을힘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물 속에선 육지에서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나는 K에게 알리는 것을 포기했다. 잠깐 사이 K일행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둘이 남은 것이다.

나는 돌아서 정지 신호를 보내며 B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B의 게이지를 들여다 보았다. 남은 공기는 100 bar, 수심은 23m, 이상은 없었다. 공기잔량이 조금 적었지만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B의 얼굴에다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숨은 매우 가쁘게 쉬고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럼 이유는 하나다. 그는 겁을 먹은 것이었다. 공포에 빠진 것이다.

패닉현상이었다. B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한 노릇이었다. 플래시를 비춰 그를 봤다. 그는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낮이라면 서로를 바라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어둠이 지배하는 밤이다. 이미 그가 놓아버린 플래시는 몸에 아무렇게나 달려 불빛만이 심연을 향해 흔들거리고 있었다.

B가 가슴을 쥐어뜯다가 마우스피스를 떼어내려고 했다. '저걸 떼어내면 끝이다.' 나는 결사적으로 달라붙었다. 한손으로 B의 손을 제지하며 목덜미를 움켜잡고 강하게 압박하며 플래시를 B의 눈에다 비췄다가 다시 부릅뜬 내 눈을 비추며 온 몸으로 부르짖었다. '조용히 나를 따르고, 여기는 수심 20m 아래고, 당신은 죽을 수도 있다'고.

연산호 수심 35m. 초대형 특급태풍에도 살아남은 놈이다.
▲ 연산호 수심 35m. 초대형 특급태풍에도 살아남은 놈이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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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안고 바로 상승할 수도 없었다. 이는 더욱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바로 수면으로 올라 갈 경우 우리의 현 위치는 의지할 데 없는 외해의 복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경우 B는 전적으로 내게 의지할 것이고, 조류라도 만난다면 나 혼자서 그를 안고 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밤을 떠돌아야 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온몸을 흔들며 사인을 보내자 돌아갔던 B의 눈동자가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즉시 돌아서서 서서히 수심을 낮추며 왔던 길을 되짚어 섬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의 손목을 부러져라 잡고서 수시로 흔들면서였다.

물에서 건져내 놓은 B는 파식대의 한 쪽 구석에서 한참 동안을 켁켁거렸다. 수경 속으로 들어간 물은 그의 눈을 빨갛게 만들었고 코로 들어간 물은 그의 폐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나도 한동안 늘어져 있다가 일어났다. 묵묵히 내 장비를 챙기고 B의 장비를 풀었다. 한참이 지나 그가 한숨을 돌리는 것 같아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왜, 그랬어요?"

확인이 필요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 머리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포는 무섭다. 한참 후에 올라 온 B의 일행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물론 B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는 그것을 불명예로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K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K를 조용한 곳으로 끌었다.

"형님 우째 됐시우?"

나는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포인트에 도착해서 뒤따라오던 일행이 없어서 K도 많은 갈등을 했을 것이다. 돌아가야 하나? 그대로 진행해야 하나? 갖은 나쁜 상념에 시달렸을 것이다. 물밥을 먹는 물쟁이들이 안고 있는 숙명이다.

다음날 날이 밝자 우리는 B의 일행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문섬을 다시 찾았다. 다이빙이 시작되고 B는 내 옆에 바짝 붙었다. B와 나는 연인처럼 잠수 시간 내내 손을 잡고 다녔다. B의 일행들이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가던 날 숍에서 새로 온 초보다이버들에게 뻥을 치고 있던 나를 B가 불러냈다.

"고마웠어요. 참말로 고마웠습니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앞으로도 할 거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다시 바다에서  만나게 되었다.


#가시복어#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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