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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집권할 때 어떤 언론 상황이 벌어지게 될까? 우린 그걸 지금 그대로 목격하고 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방송은 입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회적 의지를 차단하는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수법이자, 국민 대중들의 권리가 그 존재 기반인 공영방송에 대한 법률적 폭력이다. 


방송위 선거방송심의위, 한나라당 시녀 되는가?


방송위원회 산하 선거방송심의위는 12월 5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주의 경고를 내렸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사건 관련 방송이 그 대상이며, 방송 심의규정 11조에 따라 재판중인 사건과 관련한 문제를 야기했다는 논리다. 

 

방송 중에 진행자가, 에리카 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내보는 것이 아니라 반론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누누히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위의 결정은 이 프로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감을 그대로 관철시켰다. 


한나라당에 반론 기회를 주겠다고 하기 이전에, 이미 진행자 손석희 교수는 에리카 김의 해명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방송 현장에서 즉각 반론을 폈고 의문이 가는 대목은 조목조목 비판적으로 따지고 나섰다.  시사방송의 진행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인터뷰 대상의 말에 대한 검증 절차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그러한 진행자의 철저한 현장 검증능력이 공인된 프로로 사회적 신뢰를 쌓아왔다. 방송위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의 주의 경고 결정은 이러한 <시선집중>의 사회적 신뢰를 손상시키고 다른 시사프로를 위협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시선집중> 본보기로 다른 시사프로 위협하는가


이번 사건은 한 유력 후보의 정치적 운명과 직결되고 국민적 관심도 높은 한편, 의문투성이의 사안이 넘쳐 방송언론이 깊게 짚어나가야 할 책무를 가진 대상이다.  만일 <시선집중>이 검찰의 발표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하는 프로였다면, 그건 도리어 방송언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랬다면 <시선집중>은 '시선집중'이 아니라 권력이 원하는 방식대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는 '시선교란'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검찰은 방송위가 이런 결정을 내린 같은 날인 5일 오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관련 증거가 없다고 무혐의 처리했지만 증거를 찾으려는 검찰의 독자적인 노력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명박 후보의 경우도 이 사건의 정황으로 볼 때 충분히 피의자의 처지에 있을 만한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구속된 김경준씨와의 대질심문을 해서 진위를 따지고, 의혹이 있는 대목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진술을 이명박 후보에게서 받아내는 절차를 거쳐야 했음에도 약식 서류조사 외에 제대로 된 수사를 한 적이 없다. 검찰의 수사는 일방적이었고,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에만 골몰한 결과라는 지탄이 높은 까닭은 그래서 달리 있지 않다.


'이상하게 게으른' 검찰의 발표는 최종결론이 아니다


검찰의 김경준씨 혐의 사실 발표는 검찰의 발표이지 아직 재판에서 진실이 규명된 것도 아니며, 3심의 절차를 가지고 있는 재판에서 김경준씨의 진술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의 발표가 곧 모든 것의 최종결론이자 상황종료 선언이 아니다.


즉, 더 많은 증거의 발견과 제시, 그리고 새로운 진술과 증인의 등장, 상황전개에 따라 에리카 김의 주장이 모두 법률적 정당성을 갖는 진실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건 이명박 후보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까닭에 방송위 산하 선거방송 심의위가 검찰의 발표 직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이 위원회가 검찰의 발표 하나를 근거로 사법부의 판결을 예단하는 것과 같은 결정을 미리 내린 월권행위이자, 공정해야 할 공적 기관이 어느 한편의 이해를 대변하는 부당행위를 저지른 것과 같다. 

 

그래서 이 위원회는 그와 같은 부당행위에 대한 고소를, 이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은 제작자들과 일반 국민을 포함한 피해자로부터 받아야할지도 모른다.


진실규명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범죄


노무현 정권은 삼성비리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후보도 주가조작에 연루된 BBK와 관련하여 검찰의 면죄부를 받았는지는 모르나 언론의 의혹제기에서 모두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권력과 자본이 한 몸이 되어 벌이는 일들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으며 깨끗하게 해명될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질문을 힘과 법으로 가로막으려는 세력과 기관과 행위와 결정은 모두 진실규명의 길을 봉쇄하는 사회적 범죄다. 위증도 그래서 처벌대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삼성에게 <시사저널>을 빼앗긴 독립 언론 <시사IN>이 삼성문제를 파헤치고 에리카 김과 인터뷰하고 김경준씨의 메모를 공개하는 일련의 특종으로 우리는 관련 사건의 이면과 다른 각도와 실체에 대한 규명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진실을 통해 이 사회를 맑게 하고 바르게 세우는 일에 요구되는 것들이다. 


신생 독립 언론조차 이런 성취를 이루어내고 있는데, 규모와 역량이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방송언론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물어야 할 것을 묻고, 알릴 것을 알리고 비판과 반론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실종된다. 

 

방송위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의 이번 결정은 그런 점에서, 그간 어렵게 지켜온 민주주의에 대한 기회주의적 공격이다. 결정을 철회하고 즉각 사과하라. 역사는 이 일을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태그:#손석희, #시선집중,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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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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