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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은 풀린 것인가.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은 "이제 한 점 의혹도 없게 됐다"며 "무책임하게 의혹을 제기한 쪽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통합민주신당과 이회창 후보 쪽은 "미래권력에 줄을 선 정치검찰이 이명박 후보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며 거리투쟁까지 하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은 잠시 미뤄두자.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공방은 불가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경우는 다르다. 적어도 언론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준거해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한다면, 언론의 모습은 달라야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 역시 정치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뭉뚱그려 모든 언론이 그렇다고 싸잡아 말할 일은 물론 아니다. 검찰 수사 결과를 놓고, "더 이상 의혹은 없다"며 더 이상 합리적인 의심까지도 포기한 일부 언론의 태도가 그렇다.

 

"더 이상의 의혹은 없다"는 일부 언론

 

<동아일보>는 시민 반응을 전하는 형식을 취해 1면 머릿기사로 "사기꾼의 입에 온 나라가 6개월 넘게 놀아났다"고 한탄했다. 미국의 사례를 들어 "네거티브 공세가 거짓으로 판명되면 이를 제기한 후보 진영이나 보도한 언론 등에 대해서도 법적인 책임을 물어 유사한 사안의 재발을 방지한다"고도 했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일부 언론'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검찰이 김대업 사건 때처럼 수사를 질질 끌었다면 "누군가가 조작된 의혹을 제기하면 일부 언론이 그 의혹을 확대시키고, 검찰이 이를 방관할 경우 백과 흑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라고 했다. "무서운 일"이라고도 했다.

 

BBK 의혹을 제기한 정치권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왔던 '일부 언론'까지도 정면으로 겨냥했다. '무서운 언론'이라는 질타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일은 무엇일까. 합리적인 의심, 상식적인 의문까지도 매도하는 이런 단순 무식한 흑백논리야말로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까. 그것도 검찰이 아닌, 언론이 그런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까.

 

검찰 수사 결과를 보자. 이명박 후보는 김경준씨의 주가조작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주된 근거는 김경준씨의 증언이다.

 

본인 스스로도 주가조작 혐의를 부인하고, 이명박 후보와의 공모도 없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주가조작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마당에 이 후보와의 공모를 부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것을 갖고 공모 혐의가 없다는 반증으로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은 또 이 후보가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 자금을 제공하거나, 그로 인한 이익을 받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력한 반증일 수 있다.

 

이명박 후보는 김경준씨의 본격적인 '주가조작' 이전에 이미 결별 수순을 밟고 있었다. 횡령 사건이 난 것은 그 이후이다. 주가조작의 이익 배분을 놓고 다툴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와 관계된 투자자들이 다스를 제외하고 투자금을 거의 모두 돌려받은 것은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이다.

 

이 후보의 BBK 실소유 여부에 대해 검찰은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된 이른바 한글 이면계약서가 뒤늦게 허위로 작성된 것이라고 결론냈다. 김경준씨 스스로 그동안의 주장을 번복하고, 이를 시인했다는 결론이다.

 

이 또한 뒤집어 보면 오히려 검찰 수사 결과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되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당장 김경준씨가 작성한 '메모'와 이회창 후보 법률지원단장 김정술 변호사와의 면담에서 드러난 것처럼 '검찰의 회유'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김경준씨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면 검찰에서의 그의 진술 또한 그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의 검찰 진술의 진실성은 더 검증될 필요가 있다.

 

김경준 진술의 진실성은 더 검증되어야

 

이밖에도 의문스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검찰은 BBK나 다스 실소유 문제에 대해 계좌추적 결과를 이명박 후보의 무혐의를 입증하는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검찰의 설명대로 방대한 계좌추적이 이뤄졌다면, 그 수고와 결과를 폄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계좌추적 결과라는 것 또한 혐의 입증의 증거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혐의 없음의 확고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주가조작 연루의혹이나 BBK·다스 실소유주 논란에 대해 이 후보의 '혐의 없음' 증거로 계좌추적 결과를 들었다. 이 후보에게 돈이 흘러들어가거나 이 후보로부터 돈이 나온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첨단 금융 기법에는 돈의 흐름을 감출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 특히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폭로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수많은 실명 차명계좌들이 동원될 수도 있고, 페이퍼 컴퍼니나 위장 소유 기업을 통한 은밀한 돈거래의 방식도 많다.

 

금융사기 사건을 소재로 한, 검찰이 김경준씨가 돈세탁에 참고했다는 '보일러룸'이란 영화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마피아 등 검은 조직의 돈거래가 나오는 외국 영화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것들이 바로 이런 금융 기법들이다.

 

김경준씨의 '주가조작'에 동원된 자금은 BBK 등에 투자된 자금이 페이퍼 컴퍼니 등 복잡한 돈세탁 과정을 거쳐 투입된 자금들이다. 그 돈의 주요한 출처로서 다스의 투자금 등이 논란이 됐다. 그 다스의 투자금을 누가 투자하도록 했느냐가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그 전모를 밝혀내자면 그 총체적인 자금 흐름의 배후 실세가 누구냐를 밝혀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다스의 실소유자 문제가 쟁점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그런 점에서는 미진하다.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자 문제에 대해서 '확인할 수 없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놓았다. 일부 수상쩍은 돈 흐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명박 후보가 다스를 사실상 지배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진한 검찰 수사... 수상쩍은 돈 흐름 있었지만 증거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다스의 BBK 투자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어 있다. 의혹의 핵심은 이익잉여금이 80여억 원인 회사가 누구를 믿고, 어떻게 190억 원을 '머니 게임'에 그렇게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검찰은 투자 당시 다스가 200억 원의 여유자금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유자금이 있다 해서 그것을 모두 투기성 투자 재원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기업 회계와 경영의 상식이다. 검찰 수사가 미진한 대표적인 대목이다.

 

이 후보와 관련해 BBK 주가조작 사건에서 주목됐던 것은 과연 이 후보가 주가조작 사건에 직접 연관이 있었던가 하는 점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더 궁금했던 것은 이 후보와 김경준씨의 동업관계가 과연 어느 정도였느냐 하는 점이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후보의 해명과 김경준씨의 주장에 큰 차이가 있었다. 검찰의 수사 결과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는 한참 미달이다. 김경준씨가 왜 이 후보의 '공동 책임'을 끝까지 주장했는지, 그가 왜 '한국행'을 선택했는지도 여전히 의문부호가 찍혀 있다. 검찰 수사의 한계일 수도 있고,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이처럼 물음표는 지금도 수없이 찍혀 있다. 하지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믿기로 작정한 듯하다. <조선일보>는 그나마 '이명박 후보의 남는 의혹들'을 간략하게 짚기는 했다.

 

편집책임자와 기자의 판단이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언론들이 '상식적인 의문'과 '나름의 근거'를 갖고 제기한 의혹 제기까지 불온시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검찰 수사 결과의 문제점이나 미진한 대목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를 봉쇄하려는 태도 또한 언론이 취할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언론의 주요 역할인 '상식적인 의문' '합리적인 의심'까지 봉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으로서의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둠의 언론이 지배하는 한국사회

 

굳이 이런 교과서적인 원칙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들 신문이 이른바 '권력형 비리사건'이라고 이름 붙인 숱한 사건의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이들 신문은 과거 어떤 반응을 보였었던가.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언론단체 '언론광장' 후원의 밤 행사에 연사로 참여했던 문정우 <시사IN> 편집장은 "시사저널 사태 때 내로라하는 중앙 일간지 기자는 단 한명도 취재를 하러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정우 편집장은 "과거에는 그래도 취재는 하고, 기사는 넘기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제는 "<시사저널> 사태 같은 것은 아예 취재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 기자 사회의 내부 검열 실상을 접한 것 같아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는 "빛과 같은 언론도 있지만, 어둠의 언론이 오늘 한국 언론을 압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공부도 하고, 대안도 모색해야겠지만, 오늘의 국면은 민주주의와 민주언론을 위해 실천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어둠의 세력, 어둠의 언론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려 한다는 비상한 경고일 것이다.


태그:#BBK, #김경준,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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