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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국은 동지섣달 긴긴밤, 밤참으로 딱 그만이다.
 도토리묵국은 동지섣달 긴긴밤, 밤참으로 딱 그만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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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섣달 긴긴밤. 창을 때리는 바람 소리가 차갑게 느껴진다. 연속극을 다 보았는지 아내가 TV를 끈다. 요즘 사극에 푹 빠졌다. 이제 책을 펼쳐든다.

지나가는 소리로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저녁을 시원찮게 먹었나? 입이 궁금하네!"
"늦은 밤에 뭘 먹으려고 해요? 그러니까 배가 자꾸 나오죠?"

뱃살 이야기에 기가 죽는다. 공연한 말을 꺼낸 듯싶다. 아내는 밤참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늦은 저녁에 먹는 음식은 모두 살로 간다며 달가워하지 않는다.

밤참, 도토리묵국이나 해먹을까

말을 꺼내서 그런가? 더 출출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하는 수 없다. 눈치를 봐서는 아내가 밤참을 해줄 것 같지가 않다. 계란이라도 몇 개 삶아먹을 셈으로 살금살금 부엌으로 나왔다.

냉장고 문을 여는데, 아내가 바로 따라왔다. 고운 눈이 아니다. 배와 감 몇 개를 꺼낸다.

"과일 말고, 뭐 뜨끈한 거 없을까?"
"내참! 그럼 고구마 찔까요?"

늘 먹는 고구마인지라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마뜩찮은 내 표정을 보고, "당신, 맘대로 해!"라며 부엌문을 나선다.

다시 책을 펼쳐든 아내에게 물었다.

집에서 쑨 도토리묵이다. 야채와 함께 무쳐먹기도 하지만 묵국을 해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집에서 쑨 도토리묵이다. 야채와 함께 무쳐먹기도 하지만 묵국을 해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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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저녁 때 도토리묵 쒀 놓았지? 그거 딴딴해지지 않았을까?"
"왜요? 묵 무쳐먹게요?"
"따끈하게 묵국을 해먹으면 어떨까 해서?"
"난 별로인데…. 당신이나!"

오늘은 손발이 맞지 않는다.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먹고 싶은 사람이 일을 서둘 수밖에.

도토리묵국이라? 밤참으로 그만일 것 같다. 도토리묵은 열량이 적고, 수분 함량이 많아 포만감을 주는 식품으로 알려졌다. 또 소화도 잘 된다. 예전에는 구황식품이었던 도토리묵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손색이 없고, 별식으로 인기가 있다. 세상일은 두고 볼일이다.

도토리묵은 영양도 훌륭하다. 특히, 도토리묵 속에 들어있는 타닌 성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소변을 자주 보는 사람, 몸이 자주 붓는 사람은 도토리묵을 먹으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아콘산은 중금속 해독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고, 성인병 예방과 피로회복 및 숙취회복에도 좋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도토리묵을 참 좋아한다. 아삭 아삭 씹히는 오이와 함께 모토리묵을 무쳐 먹으면 입안 가득 향을 느낀다. 또 음식점에서 도토리묵밥을 많이 먹어보았다. 여름철에는 얼음을 동동 띄운 묵국에다 밥을 말아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날이 차가운 겨울에는 뜨끈한 국물로 해서 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도토리묵 쑤는데도 요령이

도토리 녹말가루는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
 도토리 녹말가루는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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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도토리가루가 좀 있다. 잘 아는 분이 올해도 선물로 보내주었다. 부부가 산행을 즐기며 도토리와 상수리를 주워 손수 녹말을 내린 것이다. 부부의 정이 담겨서 일까? 쫀득한 부드러움이 속을 편안하게 한다. 보내준 이의 정성이 느껴진다.

사실, 도토리나 상수리를 줍는 일도 일삼아 해야 하지만, 녹말을 내리는 일은 만만찮다. 껍질을 까서 잘 말린 후 방앗간에서 빻고, 물에 담가 떫은맛을 우려낸다. 앙금과 물이 분리되면 웃물만 따라내는 과정을 수차례 거친 후 가라앉은 앙금을 말린다. 이 앙금이 녹말가루가 되는 것이다.

녹말가루로 묵을 쑤는 데는 아내가 선수이다. 오늘 저녁도 묵 쑤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도토리묵은 센 불, 약한 불 조절을 잘 하여 오래 저어가며 쑤어야 쫀득쫀득하다.
 도토리묵은 센 불, 약한 불 조절을 잘 하여 오래 저어가며 쑤어야 쫀득쫀득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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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을 쑬 때는 물과 녹말가루 비율을 7대 1로 한다. 2컵 정도의 찬물에 녹말 1컵을 덩어리가 없도록 푼 후 나머지 분량의 물을 붓는다. 처음 센 불에 올려 밑이 눌지 않도록 나무주걱으로 저어준다. 계속 젓다보면 뭉글뭉글 덩어리가 지면서 굳어진다. 쫀득한 맛을 내도록 한쪽 방향으로만 저어준다.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낮추고, 약간의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아내는 약한 불에서도 한참을 저어가며 끓인다. 쫀득쫀득한 묵이 만들어지는 비결은 오래 끓이는 것이라고 한다. 다 쑤어지면 불을 끄고 뚜껑을 닫아 잠시 뜸을 들이면 제대로 된 도토리묵을 맛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릇에 담아 묵 모양을 만드는 것인데, 주의사항은 스테인리스강 그릇에 묵을 담으면 까맣게 변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사기그릇이나 유리그릇에 담아 식혀야 한다.

큼지막한 사기그릇에 묵을 쑤어놓았다. 집에서 쑨 것이라 모양은 없지만, 소담하게 담긴 묵이 먹음직스러웠다. 냄비 밑바닥에 눌어붙은 것을 긁어 먹는 맛도 즐거움이다.

도토리묵국, 슬슬 솜씨를 발휘해볼까?

오늘은 내가 솜씨를 발휘해 봐? 음식점에서 먹어본 맛이 나올지 모르지만, 시작하고 볼일이다.

"여보, 다시마랑 굵은 멸치 어디 있지?"
"아유! 뭐 좀 하려면 내 손이 가야한다니까!"

아내가 '앓는 이 죽는다'며 주방으로 나온다. 진즉 그럴 것이지! 나더러 묵이나 썰어보라면서 팔을 걷어붙인다.

도토리묵국은 간단하다. 길쭉길쭉 썬 묵에다 다시마, 멸치를 넣어 끓인 육수에 양념간장으로 걸쭉하게 비며먹으면 된다.

묵국은 다시마와 멸치를 넣어 육수를 만들면 개운한 맛이 난다.
 묵국은 다시마와 멸치를 넣어 육수를 만들면 개운한 맛이 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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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국은 다진 파, 마늘과 깨소금, 참기름으로 양념을 만들고, 묵은지를 함께 넣어 먹으면 그맛이 아주 좋다.
 도토리묵국은 다진 파, 마늘과 깨소금, 참기름으로 양념을 만들고, 묵은지를 함께 넣어 먹으면 그맛이 아주 좋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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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이 끓는 동안 아내가 고소한 양념간장을 만들었다. 대충 준비가 다 끝난 것 같다. 내가 한 가지 주문을 더 했다.

"음식점에서는 묵은 김치랑 김가루를 넣던데!"
"그러지 않아도 넣을 참이었어요."

김치를 송송 썰고, 김을 잘게 잘랐다. 고명을 올려놓으니 그럴 듯 하다. 도토리묵국이 완성되었다. 늦은 밤, 처음에는 관심도 없던 아내도 한 그릇 뚝딱 비운다.

"당신, 맛이 어때?"
"무슨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래요?"
"도토리묵은 다이어트식품이니 밤참으로 괜찮은 거야!"
"알아요."

속이 든든하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맛있게 잘 먹은 듯 한 마디 툭 던진다.

"이제, 다음번에는 내 손 빌리지 않고, 당신이 맛나게 한번 해보시지!"

토모리묵에 육수를 붓고 묵은지, 양념장, 김가루를 넣어 완성한 묵국이다.
 토모리묵에 육수를 붓고 묵은지, 양념장, 김가루를 넣어 완성한 묵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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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토리묵국, #밤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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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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