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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전화를 받았습니다. 분명 저를 잘 아는 여성분 같은데 저는 이름이 낯설었습니다.

 

“저에요. 저 순화에요.”

 

‘네에.....’ 하고 대답을 길게 끌면서 머릿속을 굴려보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동안 못 갔는데 지금 가도 돼요? 남편이 농사일도 거의 끝나서 같이 가려는데 괜찮아요?”

 

성은 빼 먹고 이름만 부르는 사이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김.순.화. 중국에서 시집오신 분입니다. 엑셀을 배우고 싶다고 장수군 이주여성센터 정보화교실로 찾아왔던 분입니다. 그 분을 위해 별도로 엑셀을 교육과목에 포함시켜 가르쳤는데 가을 농사일이 바빠지면서 수업에 빠지신 분입니다.

 

발음도 외국인 같지 않았던데다 마치 옛 애인이라도 되듯이 ‘순화에요’라고 소개해서 제가 못 알아 챈 것 같습니다.

 

수강생 우리집에 놀러와서 어머님과 함께
수강생우리집에 놀러와서 어머님과 함께 ⓒ 전희식

지난 주에는 정보화교실 출석반장(?)인 플로델리자님이 부엌용 가위랑 감자 깎는 칼 한 세트를 포장까지 해서 가져 왔습니다. 필리핀에서 시집오신 분인데 우체국에 가서 고국으로 택배를 보냈더니 이것을 주더라고 했습니다. 선물을 받는 저보다 플로델리자님이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본에서 시집오신 스미요님은 지난 여름 친정집에 다녀오시면서 제 손수건과 제 어머니 손지갑을 선물로 사오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정보화교실 수강생인 이 분들에게 제가 구독하는 잡지며 제가 가진 디브이디(DVD) 영화 시디며 엠피쓰리 음악파일들을 드렸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더구나 제 제자(!)인 이 분들을 부를 때 어느 때부턴가 성을 빼 먹고 이름만 부르며 최근에는 이름 뒤의 ‘님’자까지도 빼내 버린 채 나름의 친근감을 과시하고 있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한 여름 무더위가 심했던 날. 장수군에서 제일 시원한 덕유산 기슭의 우리집에 놀러와 식사도 하고 맑은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놀았던 기억도 납니다. 어느새 이렇게 친해졌습니다.

 

국적을 배려 한 인적 친화감으로 관계를 맺다

 

지난 4월 장수군 이주여성센터를 통해 강사 신분으로 이분들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참으로 제가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아울러 내가 이 분들을 통해 진정 배워야 할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컴퓨터 다루는 기술을 매개 삼아 저로 인해 이 분들이 한국생활에 튼튼히 뿌리 내리는 것. 컴퓨터 활용능력이 바로 생활에 연결되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 살고 있는 장수군이라는 지역의 인문지리를 함께 익혀 지역사회에 애정과 유대를 갖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교안을 만들었습니다. 수업도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물론 첫 시간에는 수강생들의 국적에 따른 제 해외여행 경험담을 통해 친화감을 표시했습니다. 다행히 필리핀, 중국, 일본은 제가 다 가 봤던 곳이라 간단한 인사말을 할 수 있어 이분들이 반가워했습니다. 중국 청화대학 대학생들과 세미나를 했던 기억, 일본 나고야지방의 체제형 농촌마을들, 민다나오 섬의 신인민군(NPA)과 대 지주의 대립 등을 간단히 얘기 할 수 있었습니다.

 

장수군 결혼이민자여성 정보화교실의 과목은 사실 어떤 정보화교실에서도 똑같을 과목들입니다. 문서작성, 인터넷 검색, 엑셀, 각종 유틸리티, 이미지 가공, 타자연습 등 말입니다. 저는 과목별 순차적 교육법은 수학공부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정보화교실에서는 제 나름의 교육법을 적용했습니다.

 

과제 중심의 통합교육으로 공부의 재미를 맛보다


자판 익히기는 따로 시간을 배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와서 공부하려면 자판은 기본이니 알아서 하라고 겁(?)을 준 것이지요. 처음부터 ‘장수군의 인문/사회/지리 알아보기’ 리포트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교육생들이 컴퓨터 실력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과제 중심의 통합교육이 적절하다고 본 것입니다. 어떤 분은 마우스를 처음 만져보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문서작성 정도는 쉽게 하는 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0년대 중반, 하드디스크도 없는 5.25“ 투 드라이버 엑스티 컴퓨터부터 사용했고 천리안과 케텔의 피시통신은 물론 ‘호롱불’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피시통신망도 운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덕에 이십여 년 동안 온갖 계층을 상대로 컴퓨터 교육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안다는 것과 잘 가르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아이티 회사를 운영하면서 전주시민대학 강사로 일할 때도 그랬고 전북 체신청의 정보화강사단에 자원봉사로 나가 전북도 군내의 각 교육청을 돌며 장학사님들 교육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특정과목 교육이 아닌 담에야 과제중심의 통합교육이 학습동기부여와 교육효과 면에서 최고라는 것이 제 교육론이 되었습니다.

 

진도를 맞추느라 정보화교실의 공부가 지체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개별적인 지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결혼하면서 이민 온 지 7, 8년 되면서도 장수군의 인구는 물론 지도상에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모르는 분이 있었습니다.

 

“아! 여기가 논개 생가구나. 나 작년에 여기 갔었는데”라며 인터넷 검색창에 나타난 논개영정과 주변 약도를 갈무리하면서 환하게 웃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가족들이랑 어딘지 모르고 나들이 갔던 곳의 지명을 이제야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장수군의 인문/사회/지리 알아보기’ 수업을 통해서 인터넷 검색은 물론 그림 갈무리 방법과 문자 갈무리 방법을 익히고 문서 편집의 다양한 기능을 익혔습니다.

 

출석부 만들기와 가계부 만들기

 

이 리포트가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일정 기간마다 중간과제물을 인쇄하여 제출하게 하였습니다. 나중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공부가 빠른 수강생은 문서작성의 높은 기능인 스타일과 개요 기능을 가르쳤습니다.

 

원본그림의 크기조절과 워트마킹 기법들을 익히면서 자기들이 디카로 찍은 가족사진들을 보정해 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만 본격적인 편집기능은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익혔습니다.

 

하나는 ‘야채 효소 만들기’라는 자료를 가지고 다단편집과 사진넣기 등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보화교실 수강생 명부와 출석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표를 만들어 수강생 각각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표 속의 해당 셀에 배경사진으로 집어넣는 기능은 쉽지 않은 기능이지만 잘 따라했습니다.

 

수강생들이 모두 농촌에 살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각종 푸성귀 야채로 여름 음료를 만들어 먹으라고 ‘야채효소 만들기’ 자료를 사용한 것입니다.

 

엑셀은 업소에서 쓰는 영수증을 한 장씩 갖다가 그대로 만들어 보게 하고는 자기 집 가계부를 만들게 했습니다. 함수식을 설정하는 문제는 매우 정교한 설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좀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채택한 교육법은 꼼꼼하게 차례차례 시연을 보인 다음 자꾸 반복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기능 한가지에 매달려 통달하느라 시간을 버리지 말고 설렁설렁 되풀이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서너 달이 지나면서 컴퓨터에 친근해지고 공부가 탄력을 받으면서 드디어 주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보화 세계에 눈을 뜨자 보이는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아진 것입니다.

 

메모리 카드 사용법에서 디카 사진 빼는 법, 사진을 가지고 에니메이션 만드는 법, 바이러스 치료법, 1394 카드 구입과 설치법, 고장 난 자기 집 컴퓨터 가져와서 함께 고치기 등등.

 

시디 굽기와 영상물 제작

 

그래서 8월부터는 전격적으로 맞춤형 계획수업으로 진행했습니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백가쟁명식으로 다 말하게 하고 그것을 가지고 다음달 공부계획표를 만들었습니다. 급기야는 동영상 제작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장수군 민들레 결혼이민자여성센터’의 동영상 홍보물을 정식과목으로 정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계기가 된 것은 지난달 26일부터 사흘간 동 센터에서 장수군의 다문화가정(결혼이민자여성가정)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극교실을 운영하고 이를 캠코더로 찍었는데 4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 영화작품을 출품 한 적이 있는 제가 편집과 출판을 맡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정보화교실의 수강생 자녀들도 참가한 연극교실 영상물을 제가 만들면서 이를 공동수업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디카로 찍은 사진들이 수북한 수강생들이 웹 앨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시디로 구워 보관할 수 있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포토샵 프로그램을 배우게 된 것도 사진 합성이 필요해서입니다. 또한 ‘곰녹음기’와 소니사의 ‘사운드포지’로 음성 녹음과 편집을 해서 전자앨범에 넣고 있습니다.

 

저는 캠타시아(Camtasia Studio) 프로그램을 써서 진행한 강의를 영상으로 만들어 이메일로 보내서 수강생들이 복습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하양민들레’ - 결혼이민자여성들의 커뮤니티를 꿈꾸다

 

우리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이민자여성 대상으로 한국어 말하기대회나 글쓰기대회만 하지 말고 영상작품대회도 하지”라고요.

 

그만큼 자신감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센터의 동영상 홍보물 제작이 끝나면 별도로 동호회를 만들어 가칭 ‘이주여성들의 삶과 희망’같은 다큐를 하나 찍자고 했습니다.

 

최근에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정보화교실 강의실을 온라인까지 확장한 것입니다. 주소는 http://cafe.naver.com/dandelion123 입니다. 카페를 만들어서 게시판 하나하나 설정하고 레이아웃을 잡는 것까지 모두 수강생들이 했습니다.

 

자기 나라 대중가요를 찾아서 올리고 뮤직비디오를 갈무리해서 올리거나 링크하는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은 빈약하지만 장수군 모든 결혼이민자여성과 그 가족, 나아가 모든 군민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발돋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부터는 수강생 중 한 분이 정보화교실이 개설되어 있는 장수군 이주여성센터에 정식 실무자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센터 소장님의 특별한 배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컴퓨터 실력이 뛰어나서’라고 했습니다. 정보화교육 7개월을 거쳐 제 제자(!)가 생각지도 않았던 ‘취업’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농사일과 수업시간의 중복 등으로 열 두 명이던 수강생이 지금은 너댓 명으로 준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이분들이 더 이상 ‘외국여성’이 아니라 소중한 이웃이자 ‘같은 장수군민’으로 다가온 게 반갑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모모시기-자식 키우기 반만이라도(http://cafe.naver.com/moboo) 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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