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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문국현 후보단일화가 결국 무산되었다. 양측은 벼랑끝 협상을 벌였지만,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피해 토론회를 개최할 방법을 찾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후보단일화 논의는 없었던 일이 되고 각자가 예정된 패배의 길로 가는 모습이다.

 

후보단일화 토론회 생중계를 금지한 선관위의 결정은 이번 후보단일화 협상에 커다란 암초가 되었다. 특히 문 후보가 6회에 걸친 토론회 개최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며 큰 의미를 부여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토론회없는 후보단일화가 성사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토론회가 후보단일화보다 중요한가?

 

표면적으로는 선관위의 결정이 정동영-문국현 후보단일화를 좌초시켰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차원에서 보면 선관위의 결정이 유감스러운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선관위의 입장에서는,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간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관위의 결정을 무턱대고 부정하기도 어려운 현실도 분명 있다.

 

그렇게 보면 후보단일화가 무산된 탓을 선관위에만 돌릴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후보단일화에 대한 당사자들의 의지 문제다.

 

이런 협상이 깨졌을 때 흔히 공동 책임을 묻게 된다. 실제로 정동영-문국현 양측의 공동책임의 흔적들이 여러 대목에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맥락 속에서 보았을 때, 문국현 후보가 보여왔던 소극적인 자세가 문제를 어렵게 만들어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 후보는 그동안 범여권 후보단일화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다가 범여권 지지층 내부의 압박에 따라 최근에 들어서야 후보단일화 협상에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했다.

 

그러나 협상에서도 토론회 개최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 후보가 주장하는 바는 이런 것으로 요약된다.

 

후보단일화가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후보 간의 토론을 통한 국민검증을 거쳐 가치중심의 단일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 후보 자신은 국민에게 알려질 기회가 너무 없었다, 여러 차례의 토론을 통해 국민들이 두 사람을 비교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일차 책임은 문 후보 자신

 

그동안 문 후보는 자신이 알려질 기회가 너무 없었다고 반복적으로 아쉬움과 불만을 토로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언론 탓을 했다.

 

그러나 '문국현'이 알려지지 않은 일차적인 책임은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문 후보는 간과하고 있다.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서야 출마선언을 한 것은 문 후보 자신의 선택이었다. 출마하려면 진작 나서야 한다는 주변의 의견들을 무시하고 뒤늦게 뛰어들었다. 

 

후보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알릴 시간이 없었고, 국민의 입장에서는 검증의 시간이 없었다. 누구도 원치 않는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은 문 후보 자신이었다.

 

그리고 문 후보는 지지율에 따른 단일화를 정치공학적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토론회를 통해 서로의 가치 차이가 검증된 이후에 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가 가능하면 그것이 좋다. 그런데 불가능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가 없으면 단일화가 성립할 수 없을 정도로, 문국현-정동영 두 사람 사이의 가치에  그렇게까지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큰 틀에서 보면 두 사람의 정책에 그렇게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진보'의 내용들이 혼재되어 있음은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이다.

 

내년 총선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명박 대세론'이 다시 탄력을 받으면서 두 사람의 후보단일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후보단일화를 해도 어차피 이명박 후보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차피 패배할 대선이니까,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인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두가지 있다.

 

첫째, 현재의 상황에서 범여권의 후보단일화는 지지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아무리 이명박 후보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해도, 명색이 '범여권'세력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고 대선을 포기하는 것은 기본적인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나라의 앞길을 좌우할 선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세력을 어떻게 앞으로 신뢰할 수 있겠는가. 대선의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 대연합을 이루어 대선을 치르느냐, 분열 속에서 대선을 치르느냐 하는 것은 대선 이후까지 이어지게 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둘째, 범여권세력이 대선에서 이기지 못한다해도 2위 경쟁도 중요하다. 범여권세력이 후보단일화를 이루면 이회창 후보를 젖히고 2위를 차지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분열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를 경우에는 '1위 이명박, 2위 이회창'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이러한 결과는 대선 후 우리 정당구도가 보수양당체제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이회창-심대평연대'는 보수신당을 창당할 것이고,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신당이 원내 1· 2 당이 되어 범여권세력은 궤멸상태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창조한국당이 후보단일화를 이루어 선거를 치르지 못하면 내년 총선도 각개 약진의 분열 속에서 치르게 될 것이다. 당권을 쥐고 있는 소수의 실력자들이야 비례대표를 통해 금배지를 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열된 상태에서는 지역구 선거에서의 참패가 예상된다.

 

후보단일화의 실패는 보수 독식의 정당구도를 받아들이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후보단일화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것은 우리 정당정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다.

 

단일화 토론회 개최가 불가능해졌으면 토론회 없이라도 후보단일화를 해야 한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결단하면 단일화는 성사된다. 왜 정동영이 아니라 문국현이 양보해야 하느냐고? 두 사람 사이에 지지율의 간격이 계속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는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지지율이 떨어지는 사람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상식이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가 존재한들, 한나라당과의 차이만 하겠는가.

 

종교사회단체와 재야원로들이 주도하는 '비상시국회의'는 "대연합에 합류하지 않고 별도로 나가면 거짓된 민주화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문 후보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들의 목소리가 모두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정치를 바꾸겠다고 나선 문 후보가 왜 이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범여권을 분열시켰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대선에 뛰어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까지 국민이 알아주지 않았다면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것이 정치이다. 이제는 자신의 좋은 뜻을 우리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문국현 후보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직 마지막 결단의 시간은 남아있다.


태그:#후보단일화, #문국현,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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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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