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15분 “우진아 우협아 일어나, 어서!” 딸아이가 손자들을 깨우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려온다. 하지만 손자들은 깊은 잠 속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난 그런 손자들이 안쓰러워서 “얘 5분만 더 있다 깨워라” 한다. 딸아이의 아이들 깨우는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지난주 금요일, 사위가 출장을 가서 난 딸아이 집에 가서 잤다. 마침 그날은 남편도 이른 새벽에 나가기에 딸의 출근과 6살, 3살 두 손자들의 놀이방 갈 준비를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전날 밤 손자들은 9시부터 잠자리에 들어 큰손자는 9시30분쯤, 작은 손자는 10시가 다 되어서 잠이 들었다. 작은 손자는 놀이방에서 낮잠을 자기 때문에 대부분 제 형보다 늦게 잠이 들곤 한다. 그 후로 난 딸과 맥주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새벽 1시나 되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날 아침 7시 20분 쯤 되자 작은 손자가 먼저 일어나 “컹, 컹(형 소리를 아직 잘못해서) 일어나” 하며 제 형을 흔들어 깨운다. 작은 손자는 지 옷을 끌고 거실로 나왔다. 동생이 깨우자 큰손자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거실로 뒤따라 나온다. 난 그 사이에 계란프라이 2개, 김, 국, 김치, 밥을 차린 상을 들고 거실로 갔다. 물수건으로 손자들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었다. 그런 후 아이들 밥을 먹이자 딸은 마음 놓고 출근준비를 시작한다. 아침 TV에서 나오는 만화를 보면서 손자들에게 밥을 먹였다. 그리고 옷을 갈아 입히고 놀이방 갈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런 과정도 만만치않은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만약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딸아이는 자기 출근 준비도 해야지, 아이들 밥 먹여야지, 옷 입혀야지, 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졌다. 그날은 큰 무리없이 준비를 마치고, 아침 8시에 집을 나선 딸과 손자들이 여유있게 자동차에 몸을 싣고 출발하는 것을 보고 나도 우리 집에 돌아왔다. 딸아이는 오후 2시 30분~40분 사이가 되면 집에 돌아온다. 2시에 조기퇴근을 한 후부터 딸아이는 5시~ 5시 30분사이에 손자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침에 정신없이 늘어놓고 나간 집을 정리한다. 빨래, 설거지, 집 청소, 경비실에 맡긴 택배도 찾아 오고, 집안에 대소사 일을 정리한다. 하지만 머리에 파마를 한다거나 시장이나 마트, 혹은 다른 볼 일을 봐야 할 경우, 그 시간도 허둥대면서 맞출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는 내가 대신 손자들을 데리고 오기도 한다.
그런데 10일 전쯤 큰 손자가 피아노학원과 가정방문 학습교사와 하는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년이면 7살이 되니 학교 갈 준비를 지금부터 서서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에 비해서 늦은 편이라고 한다. 다행히 손자는 재미있다고 한다. 하여 4시쯤 놀이방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피아노학원을 보낸다. 큰 손자가 피아노학원에 가 있는 1시간~1시간 30분 동안 작은 손자는 제 엄마와 논다. 평소 보다 손자들을 2시간 정도 일찍 데리러 가자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아직 시간 개념이 없는 작은 손자도 펄쩍 펄쩍 뛰면서 만면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딸아이는 "엄마 우협이도 일찍 데리러 가는 것을 아나 봐" 할 정도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들도 아침 8시~6시(5시)까지 놀이방에서 7~8시간씩 논다는 것이 무척 지루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딸아이가 피아노학원에서 5시반쯤 큰 손자를 데리고 집에 오면 6시 안팎. 피아노학원에서 오자마자 그날 내준 숙제를 해야 한다. 피아노숙제를 끝내고 저녁시간에 시간이 잡힌 학습지교사를 기다리는 동안 손자들은 TV만화를 두 편 정도 볼 수 있다. 그 시간이 손자들이 유일하게 즐겁게 쉬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두 번, 가정학습교사의 도움이 끝나고 나면 7시 30분~8시가 된다. 물론 학습지 숙제도 해야 한다. 그 숙제라는 것도 엄마가 도와주어야 하니 그 시간 역시 딸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학습지 교사가 일찍 왔다 가면 그 사이에 저녁을 먹으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한다. 저녁을 먹은 후, 조금 놀다가 샤워를 하고 9시쯤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든 두 손자를 위해서 딸아이는 4~5권을 책을 읽어주어야 아이들이 잠이 든다. 어쩌다 바빠서 책을 읽어주지 못할 경우 책을 옆구리에 끼고 제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기가 일쑤이다. 거의 매일 읽어주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무언가 허전한가보다. 그럼 제 엄마는 “내일 한 권씩 더 읽어줄게” 하며 달래준다. 물론 제 아빠가 일찍 들어온다면 그것은 제 아빠 담당이긴 하다. 그렇지만 지방 출장에, 거래처 손님 접대 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그 일은 거의 딸아이의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아침에도 사위가 먼저 출근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 역시 딸과 두 손자가 해결해야 할 몫인 것이다. 손자들이 잠들고 나면 대충 밤 10시경. 그로부터 밤 11시~11시 30분까지가 딸아이의 자유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피곤한 다음날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될 수 있으면 빨리 자려고 한다. 딸아이는 큰손자가 학교 갈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하는 말이 “엄마 2시에 퇴근해도 이렇게 정신없이 바쁘니 만약 지금도 6시에 퇴근한다면 나는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을 거야” 한다. 난 “그러게 말이다. 지금 그런 직장 어디에도 없으니깐 힘들어도 계속 다녀라. 너도 가끔 너무 힘들어서 집에서 전업주부 역할만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길어야 두 달, 그렇지 않으면 한 달 정도야.” “엄마 나도 알아. 엄마 은아 언니 알지? 그 언니도 나처럼 조기퇴근을 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해. 그 언니는 두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교에 다니잖아” 한다. “그 회사는 조기퇴근제가 안 된다니?” “없지. 그 언니는 조기퇴근제가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데. 그런데 엄마, 말로만 조기퇴근제가 있지. 조기퇴근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는 월급을 조금 덜 받는 것도 싫어하고, 회사 측에서도 그런 제도는 아예 꿈도 안 꿔. 엄마, 요즘 여자들이 결혼하면 아이를 안 낳거나 한 명만 낳고 안 낳는 이유를 이젠 진짜 알겠어. 만약 한명만 있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 내 시간도 아예 없잖아.” “그래서 후회되니? 조금 크면 그래도 둘 낳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야.” “글쎄 후회라기보다는 직장 다니면서 두 아이들을 돌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한다. 평소 눈 코 뜰새없이 바쁜 딸아이와 큰 손자. 그런 둘은 금요일까지는 열심히 살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재미있게 놀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요즘 딸아이의 바쁜 일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맛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짜 눈 코 뜰새없이 바쁜 일상은 큰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딸아이는 조기퇴근제를 잘 활용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까이에서 본 두 아이를 둔 맞벌이 딸아이. 딸을 통해서 많은 맞벌이 주부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보고 있는 듯했다. 말로만 들었던 힘들다고 했던 맞벌이주부들의 걱정과 고민들. 하지만 탄력근무제가 정착화가 된다면, 또 맞벌이 주부들도 그 제도를 잘 활용한다면 하루종일 힘들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슈퍼우먼이 되야하는 맞벌이 주부들의 걱정은 조금이나마 해소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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