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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과는 정(情)이 든다. 생명이 있는 생물이건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건, 값이 나가는 비싼 것이든 가치가 없는 싼 것이든지에 상관없이 오래 함께 하다 보면 ‘미운 정’이라는 말이 있음에서 알 수 있듯 알게 모르게 정이라는 게 든다.

 

12년 가까이 타던 차와 이별을 하다

 

10여 년이 넘게 발이 되었던 자동차와 이별을 하였다. 1996년 6월에 출고된 차니 거반 12년이 가까운 차령이다. 자가용과 주인으로 연이 이어진 후, 먼 거리든 가까운 거리든 함께 달려온 거리가 삼천리금수강산을 266바퀴쯤 돌고도 남을 80만 리, 32만1975Km의 거리를 함께 다녔으니 동고동락의 순간들도 참말 많았다.

 

몇 년 전부터 주변사람들로부터 차 좀 바꾸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꿋꿋하게 몰고 다녔다. 점점 커지는 엔진소리, 가속을 하려면 시커멓게 내뿜는 매연, 광택을 잃어 희뿌연 해지는 차체가 차 좀 바꾸라는 말들을 하게 하였지만 바꿀 생각도 없었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거창한 변명이 될 것 같아 쉽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차에 예속됨 없이 내 맘대로 부리는, 주인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 새것이었을 때는 차 때문에 마음 상하고, 차 때문에 불편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접촉사고로 약간의 흠집만 생겨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조금 험한 곳을 가려 해도 차에 흠집이 생길까 봐 주저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일이 있었으니 차를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모시고 다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새 차는 주인을 편안하게 하는 게 아니라 불편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차에 얽매여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차가 헌것이 되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누군가가 부주의로 접촉사고를 내도, 운전미숙으로 슬쩍 긁고는 어쩔 줄 몰라 미안해할 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헌차가 되면서 여유가 생기는 것은 물론 새 차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울퉁불퉁한 산길도 망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전천후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헌차, 차를 부릴 수 있는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어서 좋았다

 

길이 나있어 경운기 정도가 갈 수 있는 길이라면 산길이건 들길이건 거침없이 들어갈 수 있으니 4륜의 진가는 물론 차를 부리는 쾌감이 있었다. 차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니 효도를 할 기회도 갖게 되었다. 마음엔 있어도 나이를 먹어 불편해진 다리 탓에 가보지 못하는 아버지 산소에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교통편이 될 수 있었으니 헌차였지만 유일하게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효도의 차가 되어 몸도 마음도 편하게 하는 좋은 차였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적지 않은 주행거리를 쌓아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비포장 산길을 내려오다 두 바퀴가 펑크 난 채 낭떠러지에서 매달려 있기도 하고, 인사사고를 내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험한 길을 오르다 양쪽 바퀴가 다 빠지면서 차체가 들려 오도 가도 못해 트랙터나 굴착기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니 정말 마음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차였으니 차 좀 바꾸라는 건성의 말쯤은 무시할 수 있었다.

 

흐르는 세월은 차도 어쩌지 못하는지 차령이 10년을 넘으면서 겨울에 시동을 걸 때면 감기라도 걸린 듯 쿨룩쿨룩 기침소리를 내고, 동네가 뿌옇게 되도록 매연을 내뿜는다. 남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털털거리는 차였지만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연장해 보려 정비를 해가며 계속 탔지만 쏟아지는 매연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정기 검사를 맡으며 매연이 문제가 되어 이미 정비를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정비에 따른 부담이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될 만큼 늘어만 간다. 에어컨 콘덴서는 물론 냉각수를 식혀주는 방열판, 배터리, 타이어 등이 릴레이를 하듯 계속 문제를 일으켜 한 달여 전 어쩔 수 없이 차를 처분하니 10년 벗과의 이별이다.

 

매연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새 차에서 느낄 수 있는 외양적 체면보다 헌차에서 얻을 수 있는 편한 마음과 경운기가 가는 곳이면 다 갈 수 있다는 여유로움을 기꺼이 선택하고 싶지만 아침마다 벌어지는 매연전쟁에 포기를 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사망확인서에 해당하는 ‘자동차말소등록사실증명서’를 건네받는 순간 그 차와 함께 하였던 시시 때 때, 방방곡곡이 눈앞에 아롱거린다.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먼 거리를 함께한 동반자,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설악산, 지리산은 물론 바다 건너 울릉까지 동행을 하였던 자동차기에 그리울 만큼의 정도 들었지만 새로 구입한 차에서 다시금 불편함이 느껴지니 그 차에서 누리던 여유가 자꾸만 그리워진다.

 

나만의 좀스러움 때문인지 모르지만 긁히기라도 할까 봐 알게 모르게 새 차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얼마쯤의 시간은 지나야 찾을 수 있을 그 자유, 차를 모시는 게 아니고 부릴 수 있는 여유와 자유가 언제쯤 다시 찾아올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태그:#자동차, #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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