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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던 호박 어디 갔어? 썩어서 버렸나?"

남편이 그래도 난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남편도 진짜 썩어서 버린 줄 아는지 포기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잠시 후 난 호박죽을 한 그릇을 퍼서 남편 앞에 내놓았다.

남편의 입이 활짝 벌어진다.

"그럼 그렇지 썩을 리가 있나. 이사 올 때도 자동차에 따로 싣고 왔는데…."

남편은 한 그릇 뚝딱 비워내고, 이번엔 자신이 한 그릇을 더 퍼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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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다는 호박죽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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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가을에 안면도에서 얻어온 그 호박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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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초순경 우리 가족은 안면도로 늦은 여름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묶고 집으로 오려고 할 때 그곳 펜션 주인 아주머니께서 고추와 늙은 호박을 줬던 것이다. 빨리 호박죽을 끓여 먹어야지 먹어야지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가끔 그 호박이 썩었나 확인을 해보았지만 다행히도 튼튼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난 7월에 이사 올 때에도 행여 호박이 다칠세라 남편이 자신의 자동차 옆좌석에 따로 싣고 오기도 했었다.

지난 일요일(9일) 문득 그 호박을 쳐다보고 있다가 빨리 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남편이 친구모임에 간 사이에 호박죽을 끓이기로 한 것이다. 오래되어 호박 겉에는 먼지가 제법 있었다.

물로 깨끗이 씻고 반을 갈랐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진짜 썩을 뻔했다. 갈라서 보니 호박씨가 조금씩 검게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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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을 가르고, 팥 삶고, 팥과 간 찹쌀을 넣고 끓여낸다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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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깨끗이 발라내고 호박을 작게 잘라서 큰 냄비에 담았다. 만약 썩었더라면 안면도 그 아주머니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 아닌가. 팥을 삶고 찹쌀을 믹서에 갈아 준비를 했다. 호박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끓이다가 주방기구로 꾹꾹 눌러 덩어리 호박을 없애준다.

그리곤 삶아 놓은 팥을 함께 넣고 끓이다가 믹서에 곱게 간 찹쌀도 넣고 끓여준다. 소금 간을 하고 입맛에 맞게 설탕이나 꿀을 넣어준다. 찹쌀을 넣고 끓일 때는 주걱이나 국자로 휘휘 저어준다. 자칫하면 밑에 눌어붙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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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 된 호박죽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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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가루와 설탕을 넣으니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군침이 돌았다. 평소 아들아이는 호박죽을 잘 먹지 않았다. 하지만 제 아버지가 두 그릇을 비우자 "그게 그렇게 맛있어요? 나도 한번 먹어볼까?" 한다.

한 그릇을 퍼주었다. 다 먹은 아들은 "음 음∼∼" 하더니 한 그릇을 더 먹는다. 그러면서 "나도 이젠 나이가 먹었나? 호박죽이 당기네" 한다.

그리곤 늦은 밤, 간식으로도 또 한 그릇을 먹는다. 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1년 3개월 전에 얻어온 그 호박이 이렇게 우리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으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썩지 않아 또 고마웠다.

"안면도 아주머니 호박 맛있게 잘 먹었어요. 그곳에 갈 일이 있으면 또 들릴게요."


태그:#호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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