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8일 충북 숲해설가협회 회원들과 청주의 옛길인 상봉재를 답사하기 위해 명암지 주차장으로 갔다. 1921년에 농업용수를 저장할 목적으로 만든 명암지는 바로 밑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지금은 호수공원이 되었다. 그 당시 의도했던 일은 아니겠지만 개발을 앞세우는 사회에서 이만큼이나마 녹지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물가에 우뚝 서 있는 명암타워 뒤로 상봉재의 초입인 풍주사와 명암지에서 산성을 연결하는 터널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명암타워에 예식장이 있어 제방도로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 위에 떠있는 오리들은 이리저리 먹이를 찾아다니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송태호 청주삼백리 대표가 답사에 나설 상봉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했다. 청주 주변의 옛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고개가 상봉재다. 상당산성과 낭성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이곳은 십여 리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형이다.

 

명암타워 뒤 동부우회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풍주사 입구로 갔다. 시멘트 길을 따라 풍주사로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상봉재 가는 산길이 나타난다. 상봉재 가는 길의 초입은 가파르다.

 

1년 전 이 길을 답사하며 숲 속에 들어있는 묘지를 걱정했는데 그사이 깔끔하게 정리해 보기가 좋다. 명암지가 내려다 보이는 묘지 위에서 숨을 고르며 송태호 대표에게 상봉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풍주사에서는 고령산으로 주장하고, 만남에 의미를 둬 상봉(相逢)하는 고개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단다. 바로 앞 터널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에 중봉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봐 가장 높은 봉우리를 뜻하는 상봉(上峯)으로 해석해야 맞는 것 같다.

 

사오 년 전만 해도 우거진 수풀이 발길을 붙들던 상봉재에 사람들이 많다. 우리와 같이 지역의 문화를 알아보려는 사람도 있고, 건강을 다지기 위해 산행에 나선 사람도 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러 명 만난다. 목적은 다르지만 표정으로 봐 산이 모두를 즐겁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상봉재, 풍주사, 우암어린이회관을 알리는 이정표가 예쁘다. 최근에 세워진 이정표가 갈림길에서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괜히 기분이 좋다. 옛길을 한참 걷다 보면 것대산 정상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그 아래가 터널공사 현장이다.

 

조금 더 가면 상당산성이 눈앞에 보이는 낭떠러지 위에 선다. 바로 아래에서 산허리를 깎아내며 터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사라진 옛길 위로 공사차량만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다.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는 개발과 보존도 방법을 달리하면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기에 안타깝다.

 

이 길을 걷던 선인들을 생각하면 사라지고 있는 옛길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발걸음을 옮기면 비신도 없이 자연 암벽에 만든 조선시대의 송덕비를 길옆에서 만난다. 병사 민지열 마애선정비, 병마우후 이의장 마애선정비, 병사 이삼△ 마애선정비가 차례로 서 있다.

 

석벽에 글자나 그림을 새긴 것을 마애(磨崖), 백성을 어질게 다스린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비석을 선정비(善政碑)라고 하니 길가의 마애선정비가 이곳이 오랫동안 청주의 옛길이었음을 증명한다.

 

선정비의 글자는 형태만 알아볼 수 있다. 비문에서 사내아이를 상징하는 글자를 파내 갈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그 당시의 신앙과 정적들의 시기심으로 많이 훼손된 상태다.

 

선정비에서 가까운 곳에 도둑골로 가는 갈림길이 있고 바로 위가 상봉재 옹달샘이다. 상봉재 정상 부근의 해발 380m에 위치한 상봉재 옹달샘은 무심천 발원지 중 한곳이다. 제법 양도 많고 맛도 좋은 이 물이 상봉재 남서방향 산기슭을 타고 내려가 이정골 저수지와 영운천을 거쳐 무심천으로 합류한다.

 

상봉재 옹달샘은 청주읍성, 상당산성, 낭성지역을 오가던 옛사람들이 잠깐이나마 목을 축이며 쉬는 공간이었다. 훼손이 심해 오랜 세월 방치되던 것을 청주삼백리 회원들이 주변을 정리하고, ‘무심천의 발원지’ 표석을 세우고, 바로 위에 있는 성황당까지 복원했다.

 

습지식물과 생물이 공존하도록 아랫부분에 습지를 조성하고, 자갈과 숯을 넣어 정화된 물이 흐르게 하는 등 상봉재를 오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아늑한 휴식처를 만들었다. 봄이 되면 돌미나리가 자라고 올챙이가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황당을 지나면 상당산성과 것대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상봉 정상은 상당산성으로 가는 왼쪽 능선에 있다.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 것대산으로 가다보면 상상산성의 성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것대산은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한양으로 알리는 길목이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이곳에서 봉수를 연결하던 청원군 문의면 소이산과 강내면 은적산, 음성군 삼성면의 망이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사 교육장이자 청주시민들의 쉼터인 상당산성과 패러글라이딩이나 사진촬영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것대산의 활공장도 바로 앞에 보인다.

 

활공장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 조금 가면 이정골 저수지로 내려가는 능선길이 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험하지도 않고 낙엽이 많이 쌓여있어 제법 운치가 있다. 능선을 내려와 만나는 길의 오른쪽 골짜기가 도둑골이다. 터널공사로 몇 채 남아있던 집은 사라졌지만 산적들이 상봉재를 넘나들던 길손들을 괴롭히던 장면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아래에 낚시터로 많이 알려진 이정골 저수지가 있다. 6·25 때 이곳에서 피난 생활을 했던 당시의 도지사가 농업환경이 열악한 것을 보고 건설했다는 저수지다. 수면 위로 드리운 저녁노을과 제방 너머의 아파트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저수지 아래에 있는 마을을 벗어나면 작은 개울 옆에 찾아온 사람들이 빙그레 웃고 가는 청주의 미소 순치명석불입상이 서 있다. 선돌골 마을입구의 논가에 서있는 순치명석불입상(도지정유형문화재 제150호)은 네모난 돌기둥을 깎아 얼굴과 상체를 조각해 석장승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 316㎝, 머리높이 70㎝의 석불 입상은 표현도 거의 선각에 가깝고, 불상이면서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으로 본다. 백호가 도드라진 이마, 길고 큼직한 눈썹, 내려뜬 눈, 도드라진 눈두덩이, 작고 짤막한 코, 반달모양의 입이 인상적인데 슬며시 웃는 모습이 재미있다.
 
불상 아래에 '순치9년11월16일입(順治十一月十六日立)' 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조선 효종 3년(165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근처 마을이 장승배기였고, 원래 2개였는데 홍수에 멀리 떠내려간 것을 찾아와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는 것은 주민들의 얘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상봉재#명암지#명암타워#것대산#상당산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일상은 물론 전국의 문화재와 관광지에 관한 사진과 여행기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