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 그것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일까? 사실 나만 해도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크게는 없지만 소소한 세대간의 차이를 느끼기는 한다. 그러고 보면 살아온 세월이 다른데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기에 풀리지 않은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풀리지 않는 숙제가 TV 드라마 속에서는 아주 유용한 소재인 듯싶다. 70~80년대, 아니 TV드라마가 시작되면서 고부간의 갈등을 그린 드라마들은 매년 몇 개씩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아씨>만 해도 적나라하게 고부간의 갈등을 다뤄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21세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급변화한 지금도 여전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여전한가? 아마도 여전하겠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상당히 줄었다고 할 수 있다. 옛날처럼 모든 걸 인내하고 그야말로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으로 지내는 며느리도 없을 뿐더러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며느리를 구박하고 학대하는 시어머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 여사, 정신병원에 가보세요!하지만 유일하게 여전히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치도 변하지 않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드라마 속에서는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그 강도가 더해져 자칫 사이코 수준의 정신질환자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도 한다. 즉, 여전히 드라마 속에서는 ‘여자의 적은 여자’의 공식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겨울새>를 들 수 있다. 김수현 작가 소설이 1992년대 드라마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치고 20세기 넘어 다시 한 번 리메이크된 <겨울새>는 여전히 1990년대식 고부간의 갈등을 담고 있다.
그래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상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데, 요즘 세대의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의 악랄함을 참고 견디는 친구들이 몇이나 될까? 내 스스로 되물어도 나 또한 “미쳤어?”라는 외비명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주인공 영은(박선영)은 시어머니 강여사(박원숙)의 사이코드라마에서 있을 법한 행동들을 참아내려 부단히 애를 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리 참는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도망쳐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강 여사의 행동을 참고 견딘다면 바보일지도 모르겠다. 강 여사의 시어머니 포스는 상당하다. 두세 가지의 표정쯤은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하며, 윽박지르기, 달래주기, 욕하기 등 언변 또한 능수능란하다.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존칭을 사용해 표면적으로 대외적으로는 너그럽고, 교양 있는 어머니이자 시어머니이다. 하지만 화가 났다 하면 악다구니는 말할 수도 없고, 세를 못낸 사람들에게 “목을 빼서라도 내!”라고 말하는 그녀이다.
그도 모자라 사돈댁에 가서 “30억을 무담보로 빌려주세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아들이 며느리 편만 들자 혈압이 오른 척 그야말로 생쇼를 펼치는 열연을 거듭하며, 완벽한 연기로 기함하게 만든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시어머니가 현실에서 존재할까? 너무나 극단적인 것이 아닐까? 물론 한편으로는 아들을 홀로 어렵게 키우면서 돈을 벌다 보니 집착이 남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강 여사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정신병원에 있어야 할 수준이다.
그러니, 어디 심약한 영은이 견뎌낼 수 있겠는가. 헌데, 문제는 강 여사의 행동은 단지 시청률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는 점이다. 물론 친구들끼리 가끔 만나서 시어머니 욕을 하기도 한다. 때론 시어머니들도 며느리 욕을 하며 “아들을 빼앗긴 기분이 든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아니한가. 아들을 평생 헌신하며 키워왔는데 이제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얼마간 빼앗긴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강 여사가 보여준 행동은 아니다. 당장 말하고 싶다.
“얼른 정신병원에 가보세요. 진단이 필요하십시다~”
<며느리전성시대>는 시어머니전성시대인가?
여기 또 한 명의 무서운 시어머니가 있다. <며느리 전성시대>의 명희(김혜옥)이다. 의사 집안에 시집을 가는 바람에 외로운 중년 생활을 해 조금 마음이 뒤틀려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녀가 며느리에게 보여주는 행동은 섬뜩하다.
이미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들어 아들과 이혼시키고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렸을 만큼 애초부터 이 여자의 포스는 강 여사와 대적할 만했다. 그런데 다시금 들인 며느리 수현(송선미)가 또 마음에 안 든단다.
거기에 아들이 첫 번째 부인을 잊지 못한 사실을 알고 외도를 한 수현에게 그 사실을 알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혼을 감행하면 둘 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협박하는 수준이라면 과연 그녀가 정상적인 사람일까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그도 모자라 저녁식사를 하며 아들에게 “얼른 애를 가져야지”라고 말하며 은근슬쩍 며느리는 압박한다. 그리고 며느리 수현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협박에 기가 막혀 할 뿐이다. 아들이 정신적인 외도를 했음에도 그러한 사실에 용서를 구하지는 못할망정 협박까지 한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과연 제목은 왜 <며느리전성시대>로 지은 것일까? 사실 <며느리전성시대>는 이 가족 말고도 다른 가족에서도 고부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데 그 수준은 철지난 이야기처럼 과거에 겪었던 세대 차이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며느리는 너무나 버릇이 없고, 시어머니는 트집을 잡는 데 혈안이 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아마도 며느리전성시대이기보다는 시어머니전성시대를 택한 듯싶다. 설사 결말 부분에 이르러 이 모든 것이 봉합되고 용서와 화해를 구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고부간의 갈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갈등과 이해를 동시에 보여달라!
그런데 과연 이렇게 여자의 적은 여자로 그릴 수밖에 없을까. 물론 여고동창생들을 보면 서로 헐뜯고 비난하기도 한다. 나보다 잘났단 이유로, 나보다 더 잘 산단 이유로 등등. 그걸 보면 공공의 적이라는 말이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여자의 적이 여자인데, 조금씩 서로의 편임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 반문하고 싶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생활을 하는데도 너무 다른 상황에 살다보니 부대끼고 그러다 보면 싸우기도 하면서 조금씩 맞춰 살아가기 마련이다.
헌데 같은 여자들끼리는 맞춰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처럼 도통 합의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갈등을 하는 고부간의 모습. 설사 그것이 봉합된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간 뒤 뒤늦은 깨달음을 보여준다.
물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강 여사와 명희가 날로 극단적인 악행을 펼쳐야만 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시청자들과 호흡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면 적어도 갈등과 이해, 화해 순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그 예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영신(공효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의 손녀를 키우는 걸 모른 척 하던 강국자(강부자)는 끝내 영신을 이해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 과정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사이사이 강국자의 마음에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공감을 얻었다.
이 사례가 고부간의 갈등은 아니지만 그러한 갈등을 마무리는 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시청률이 더 높게 나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한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극단적인 모습에는 공감이 가질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의 모습, 요즘 사회에 고부간의 갈등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고 공론화함으로써 시청자들과 호흡하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