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판으로 막아놓은 오두막 출입구를 열자 서툰 시공 때문에 돌쩌귀가 맞지 않는 문틀이 드러난다. 조심스레 문짝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하자 향긋한 편백나무 향이 코끝으로 지나간다. 그동안 많은 고생이 편백나무 향으로 승화하지 않았나 싶다. 편백나무 향은 깊은 내면을 자극한다.
주말을 이용하여 집을 짓겠다는 계획에 많은 무리가 따른다. 장모님 생신파티, 친척 자녀 결혼식, 부부동반 부산여행 등 삶을 사는데 필요한 각종 모임들이 주말에 있다. 오두막 짓는 일이 지연된다. 주말에 비라도 오는 경우에는 우리에게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온 것이 된다.
오두막 터에는 밤나무단지에 설치된 방충등을 켜기 위한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 지금까지 전봇대에 설치된 한 개의 콘센트를 사용하여 모든 공구 및 오두막 내부 전기까지 사용하였다. 그러나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전기기사 강형의 자문을 듣고 보니 규격에 맞는 전기설비가 필요하며 아무리 간단한 배선이라고 하더라도 준공 검사 시 자격증 있는 전기기사의 시공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강형은 재료를 주문해 줄테니 가지고 가서 자기가 일러준 대로 분전함, 콘센트, 스위치, 전등 등을 시공하라고 한다. 나와 집사람이 토요일에 시공해놓으면 그 결과를 일요일 오후 지리산 비박등산 하산 길에 오두막에 들러 전기설비 시공 상태를 점검해 주겠단다.
강형의 조언은 당연하나 최종 마감인 편백나무 루바 설치 공정까지 끝낸 나에게는 암담한 얘기이다. 시공 단계를 두 단계나 되돌리는 벽체 단열단계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루바는 물론 석고보드까지 뜯어내야하며 석고보드는 뜯어내면 다 부스러져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강형에게서 전기설비의 필요성을 들은 이상 안 할 수도 없다. 금요일 오후 강형은 분전함을 비롯하여 전선피복줄 1롤, 전선 3롤, 콘센트, 스위치 등 전기설비에 필요한 재료를 가져왔다. 집에 돌아가니 외부 벽채 마감 후 칠할 오일스테인 3통이 배달되어 덱 위에 놓여있다.
이번 주말 일정은 전기설비부터 다시 해야 한다. 대전을 출발하여 현장에 도착하니 8시이다. 작업장 주변을 정리하고 오두막 내부로 들어섰다. 보고 싶지 않은 실체를 봐야만 하는 고통이 결코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고통에 비겨 결코 작지 않다.
공들여 붙인 루바가 떨어져나간다. 석고보드를 뜯어내자 나와 집사람이 서로 치겨세우며 재미있게 작업했던 스티로폼이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전기설비를 위한 부분을 칼과 드릴로 도려내고 파낸다.
배전판을 묻고, 전원단자를 설치하고, 실내외 등을 배선하고, 스위치를 두 곳에 설치하고 나니 날이 저문다. 전기설비를 완료하고 시험을 위한 테스터를 찾았지만 공구들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찾을 수 없다. 내일 오후 강형이 하산하여 우리 오두막에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11월 10일, 일요일 아침에는 어제 뜯어놓은 스티로폼과 석고보드 그리고 그 위에 편백나무 루바를 다시 설치해야하는 공정이니 일이 재미있을 리 없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스티로폼을 파낸 자리에 폼(foam,거품)을 넣어 공백을 메우는 작업과 석고보드를 다시 잘라 덧대는 작업을 시작한다. 폼이나 실리콘은 숙달된 사람들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힘든 작업이다. 스티로폼을 파낸 주변의 공간을 메우기 위해 폼을 충진하면 끈적거리는 폼이 계속 부풀어 올라 우리가 원하는 형태가 되질 않는다. 장갑으로 닦아내고 손으로 만지다보면 손과 옷에 달라붙어 매우 곤혹스런 상태가 된다.
실리콘은 적은 공간을 메우기 위해 사용한다. 우리가 시공한 실리콘 자국은 얼음 위에 얼음이 얼어붙은 빙벽 같은 모양이 된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전문기사들의 흉내를 내보나, 손에 남아있는 실리콘의 느낌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간신히 수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석고보드 작업을 끝냈다.
다음 공정은 편백나무루바를 원위치에 다시 부착하는 일이다. 루바를 석고보드와 샛기둥에 고정하기 위한 작업을 하여야한다. 바늘못을 박기 위해 실타카를 쏘려고 하니 실타카가 작동하질 않는다. 실타카에 사용하는 못은 머리가 없다. 실타카는 못을 박고 난 자리의 표시가 아주 적어 루바와 같이 못자국을 감춰야 하는 시공에 많이 사용하는 연장이다.
바늘 같은 못을 수천 개를 망치로 박을 수는 없다. 일요일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남원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실타카를 구할 수 없다. 궁여지책으로 구례 공구상점으로 가서 실타카를 수리할 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구례 공구상점에 들러 실타카를 보이니 공구상점 아저씨가 실타카 뭉치를 육각렌치로 분리하여 약실에 들어있으나 발사가 안 되는 바늘못 한 개를 꺼낸다.
수리된 실타카를 돌려주면 좋으련만 주인아저씨는 이리저리 만져보고 들여다본다. 결국 실타카 공이가 아저씨의 손가락 끝을 관통해버린 사고가 났다.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를 아저씨는 입으로 빨면서 신음과 함께 피를 내뱉고 있다. 급히 서둘러 구례에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을 물어 아저씨를 싣고 갔다.
응급처치를 끝내고 X레이촬영, 항생제, 파상풍 주사까지 맞고 다시 공구상점으로 돌아오니 강형이 하산하여 우리 오두막 부근까지 와 있다는 연락이 왔다. 오두막에 들어서서 이곳저곳을 점검한 강형은 “정박사님, 잘못된 부분을 뜯어내도 됩니까?” 하고 묻는다.
나는 “물론” 하면서 기꺼이 승낙하였다. 어! 어! 이런! 강형이 내가 시공한 모든 부분을 다 뜯어내고 있질 않는가? 나는 너무 놀라 강형을 제지하였다. 뜯어내기를 중단한 강형은 이런 상태로 정 박사님께 사용하시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강형은 피복하지 않은 채 연결된 전등선은 모두 회수하고 피복선에 넣어 시공한 콘센트부분은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겨우 동의하였다. 강형은 전기설비는 200% 안전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시공 때 작업 과정이 힘들어 자신과 적당히 타협했던 부분들이 전문가 앞에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강형의 최대한 양보 끝에 나와 집사람 이틀 품의 1/3을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