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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은 웬만한 직장인들이라면 퇴근이라도 했을 법한 시각인 저녁 7시지만 여기는 불이 대낮처럼 환하다. 어쩌면 지금 시간이 함께 모여서 같이 일하는 작업의 절정 시간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특별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평소 오전 7시 쯤 출근해서 저녁 7시~8시쯤 퇴근하는 게 일상생활이다. 일이 많으면 9시도 좋다.

 

더군다나 지금은 연말연시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까지 겹쳤다. 성수기에 겹친 특별한 호황(?)인 셈이다. 연중 제일 바쁜 성수기가 지금인데 설상가상이라고 해야 할지 금상첨화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하여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연말연시에 집배원이 바쁜 것은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우편물 내용이 다르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발달하기 전에는 연하장과 각종 크리스마스카드 등 사람들이 직접 쓴 내용물을 배달하느라 바빴지만 요즘은 연말 정산용 서류, 각종 연말 정리 고지서를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 매월 15일에서 25일도 성수기다. 그 날이 바로 각종 공과금, 카드 사용료, 통신료 등의 고지서가 몰려서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월중엔 15일에서 25일이 제일 바쁘고, 연중에는 12월이 제일 바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대통령 선거가 12월 19일이니 딱 걸렸다. 월중 제일 바쁜 15일~25일의 중간, 연중 제일 바쁜 12월의 중간인 것이다. 집배원들에겐 일복이 제대로 터진 셈이다.

 

이런 상황을 잘 말해주듯 이번 집배원과의 인터뷰 섭외가 만만찮았다. 며칠 전부터 섭외 해오면서 간신히 대화 시간을 맞춘 것이다. 그것도 짧게 하겠다는 약속을 달고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요즘 전국의 집배원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벨을 두 번 울릴 여유가 없다.

 

아파트가 많아 벨을 울릴 일도 없고 일반 주택이라도 벨을 울릴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등기와 택배 등을 배달할 땐 벨을 울리거나 오토바이 경음기를 울릴 수밖에 없다. 이럴 때도 종전처럼 여유 있게 기다리기가 힘들다. 한 집을 위해 여러 집에 피해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집배원들의 사는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유봉열 집배원은 벌써 23년째 이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자전거로 우편을 배달하던 시절부터 시작했으니 참으로 추억의 시절에 시작한 셈이다.

 

 

오토바이로 시작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이 악천후 속에서 배달하는 것이었다고. 장마 속에서 비포장도로로 갈 때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푹푹 빠져서 도저히 갈 수 없다. 폭설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길이 얼었을 때도 위험은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다. 오토바이는 타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게 아니던가.

 

“그래도 인터넷과 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사랑이 담긴 편지들을 썼으니까요. 특히 시골에 있는 어르신들은 편지 오기만을 학수고대 했지요. 어떤 때는 제가 직접 편지를 읽어주기도 했고요. 그런 지경이니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점심식사 때면 점심도 함께 먹고, 각종 채소 등도 얻어 오기도 했지요. 그땐 우리나 일반 주민들이 같은 공동체라는 의식이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어요. 편지 내용이 다들 사무적인 내용이라서 그런지 주민들도 우리에게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 같아요. ‘가면 가는 가보다, 오면 오는 가보다’라는 식 말이죠.”

 

요즘 그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바로 택배 때문이다. 일반 택배 회사처럼 미리 전화하고 가야하는 것부터 시작해 조금 늦으면 왜 늦게 오느냐는 등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택배물만 전달하고 있을 수도 없는 집배원들로선 적지 않은 부담이긴 하지만, 어차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감당하고 있다.

 

 

“제가 시작하고 한참 동안에도 사람들이 집배원 직업을  기피했지요. 왜냐하면 몸으로 뛰어야 하는 고달픈 직종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어요. 이런 일자리라도 서로 들어오려고 젊은이들조차 줄을 섰지만,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오니까요. 실제로 우리 안성우체국 집배원 중에 20~30대도 많고요, 여성분들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유 집배원은 후배들이 이 일을 하겠다면 얼마든지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일에 긍지와 보람을 가지고 있다.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인터뷰를 하는 시간에도 안성 우체국 우편물 관리실에는 우편물 챙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체부들의 쉴 새 없는 손놀림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그래도 아름답게 돌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유 집배원이 건네 준 명함에는 그런 그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365일 행복 메신저 안성우체국 우편물류과 유봉열'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2일 안성우체국 우편물 관리실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안성우체국, #유봉열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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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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