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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할머니의 손수레 길에서 희망을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
할머니의 손수레길에서 희망을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 ⓒ 조찬현

"할머니!"
“나 바쁜디, 병 팔러 가야 돼.”

 

할머니(69·차순덕씨)가 빈병과 종이상자가 가득 담긴 손수레를 밀고 간다.

 

“몇 시에 나오셨어요?”
“손자 둘하고 영감 밥해주고 아침 10시에 나왔어. 손자들 둘 키우요. 영감은 치매가 와서 드러누웠고…. 밤 10시까지 일해.”

 

할머니는 손수레를 끌고 여수수협연쇄점으로 향한다. 종이박스는 고물상에 넘기고 빈병은 연쇄점에 판매한다. 빈병 1개의 값은 40원이다.

 

“돈벌이 좀 되나요?”
“하루 많이 벌어야 만원 벌고, 어쩔 때는 5천원도 안 돼. 텔레비전 보면 높은 사람들은 이것저것 받아먹고 잘도 살드마, 억울해서 죽겠어 그런 것 보면. 우리는 이렇게 산디.”

 

빈병 한 개에 40원씩 셈해서 100개를 4천원에 넘겼다. 최근 3~4일간 주워 모은 것이다.

 

“아이고~! 사는 것이 이래, 못 죽어서 살지.”

 

할머니 할머니(69.차순덕)가 빈병과 종이상자가 가득 담긴 손수레를 밀고 간다.
할머니할머니(69.차순덕)가 빈병과 종이상자가 가득 담긴 손수레를 밀고 간다. ⓒ 조찬현

며느리 가출로 손자 둘 11년째 키우며 어미 노릇

 

할머니는 손자 둘(중1, 초등 5년)의 뒤치다꺼리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병수발까지 할라치면 몸이 둘이라도 모자란다고 한다. 아이들의 어미가 집을 나가버려 손자 둘을 11년째 키우며 할머니가 아이들 어미 노릇까지 하고 있다.

 

"초등학교는 돈이 안 든디, 중학교 다니니까 힘이 드요. 며칠 전에는 손자 녀석들이 불우이웃 돕는다고 돈을 달라고 그럽디다. 우리가 불우이웃 인디…. 그래도 돌라고 그란께 천원씩 줬지."

 

할머니는 수협연쇄점에 들러 조금 전에 넘긴 빈병 값으로 4천원을 받아 쥐고 나온다.

 

“각시는 나가 불고 아들은 돈 벌러 다닌다고 다닌디, 돈도 안 주고 내가 성가시오. 아이들 학원도 못 보내고, 자식들이 있은께 영세민 혜택도 못 받아. 손도 저리고 이제는 오만 데가 아퍼, 드러누우면 나도 환자여. 막막해요. 손자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

 

오후 4시 50분.

 

“점심은 드셨나요?”
“아직껏 점심도 못 먹었어. 맨날 이라고 다녀, 배고파도 참고 다녀.”


“허기져서 어떻게 해요. 할머니!”
“일하느라고 바빠서 밥도 못 먹고 그래. 수협연쇄점 청소해주고 종이박스 주워와, 근대 얼마 나오지도 않아, 하루에 1~2천원 나오지.”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죠.”
“이것도 잠시 한눈팔면 어느새 누가 주서가버리고 그래. 묵고 살기가 힘든께 워낙 고물한 사람이 많아. 담배 값이라도 벌라고 사람들이 주서가.”

 

할머니는 얼마 전까지 1kg에 30~40원하던 종잇값이 최근에 80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신문은 1kg에 100원, 종이상자는 1kg에 80원, 고철은 1kg에 200원씩에 고물상에 팔아넘긴다.

 

“된 대로 상자도 주워 팔고, 맥주 캔도 주어다 팔고, 플라스틱도 주어다 팔아.”
“가족은 없나요?”
“이거 신문에 나면 형제간들이 뭐라고 그럴 껀디. 형제들이 많이 생각해 준께 그래도 그  힘으로 버티고 살아. 중학교 1학년인 손자는 공부도 잘 한디, 먹인 것도 부실하고 그래서 힘이 부쳐.”

 

분류작업 빈병 한 개에 40원씩 셈해서 100개를 4천원에 넘겼다. 최근 3~4일간 주워 모은 것이다
분류작업빈병 한 개에 40원씩 셈해서 100개를 4천원에 넘겼다. 최근 3~4일간 주워 모은 것이다 ⓒ 조찬현
수협연쇄점 할머니는 수협연쇄점에 들러 조금 전에 넘긴 빈병 값으로 4천원을 받아 쥐고 나온다.
수협연쇄점할머니는 수협연쇄점에 들러 조금 전에 넘긴 빈병 값으로 4천원을 받아 쥐고 나온다. ⓒ 조찬현
종이상자 종이상자를 주워 모으는 할머니
종이상자종이상자를 주워 모으는 할머니 ⓒ 조찬현

"그럼 내가 대신 다닐까?"... 목구멍까지 치미는 설움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 녀석은 공부도 썩 잘한다. 학원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어 영어학원에 1년 남짓 다니다 그만뒀다. 할머니는 손자가 학교 친구들이 공부하기 싫어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할 때마다 “그럼 내가 대신 다닐까?”라며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을 참았다고 할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돈이 없은께 학원에도 못 다녀. 아이고! 놈들한테 떨어지면 어쩌꺼나. 그래도 쉬어 보자 그라고 쉬어. 학원비가 25만원이나 한디 그걸 내가 어떠께 갈쳐.”

 

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큰길 바로 앞에 호떡가게가 보인다. 한사코 안 드신다는 만류를 뿌리치고 호떡 천원어치를 사들고 와 할머니와 함께 나눠먹었다. 이렇게 싸돌아다니다 보면 나 역시 끼니를 놓치기 일쑤. 하긴 돈벌이도 안 되는 시민기자 노릇에 때로는 이것도 감지덕지다.

 

할아버지는 3년 전 집 옥상에서 잠잔다며 올라가다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 머리를 다쳐 그 후유증으로 치매를 앓고 있다. 노동력을 상실하고 집에 드러누워만 있다. 그나마 동네 이웃들이 많이 돌봐줘 큰 힘이 된다. 이웃들은 빈 종이상자와 빈병 등을 종종 갖다주곤 한다.

 

호떡 호떡으로 허기를 면하는 할머니
호떡호떡으로 허기를 면하는 할머니 ⓒ 조찬현

"살다 보면 좋은 날 있것제"

 

"여기서(여수 봉산동) 뺑뺑 돌고 그냥 살아. 수협연쇄점이 은행이랑 똑같이 문 닫아 분께 바빠."

“평균 수입은 얼마나 되나요?”
“하루 평균 1만원 잡으면 될 꺼여. 식구들 챙겨야 된께 다른 일도 못해, 여관에서 청소하라고 한디 그런 일도 못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영감 디다 봐야 돼. 으짠가 그라고…. 식구들 챙기느라고 어디 다니도 못해. 이건 그래도 자유가 있은께 해.”

 

다른 사람들이 다녀가면 물건이 없어지곤 하는데 할머니는 양심껏 일한다며 동네 여관 등의 업소에서도 도와준다.

 

“양심껏 바르게 열심히 산께, 아무것도 손 안 된다고 도와줘”
“할머니,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살다보면 좋은날 있것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 저것이 사주가 좋다고 그란디, 뒷받침을 해줘야 되는디….”
“….”
“얘기가 어른스러워요.”

 

할머니의 말마따나 살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겨울가면 봄이 오듯이…. “하루빨리 할머니의 가족에게 따사로운 한 줌의 봄볕이 내리쪼였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12일 오후 여수의 국동에서 손수레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눈물이 자꾸만 앞을 가려 글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조그마한 소망으로 기사를 올립니다.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손수레#할머니#좋은날#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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