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되네.’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실시하는 워크숍에 참석하여야 하였다. 그런데 거기까지 갈 일이 걱정이었다. 승용차를 이용한 경험이 있어서 그것은 감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지난번 서울에 다녀오면서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나 방법은 딱 하나 뿐이었다. 버스를 이용하는 일이었다.
서울의 도로 사정이 그렇게 어려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었다. 주말도 아닌 금요일임에도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대교 눈높이 교육상을 수상하기 위하여 갔었다. 교통 사정을 감안하여 일찍 출발하였음에도 제 시간에 도착하기가 어려웠다. 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욱 더 고통스러웠다. 도로는 하나의 거대한 주차장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고 멈춰버린 자동차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기다림의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교통지옥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방의 교통 사정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서울의 교통 사정은 최악이었다.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좌석이 넉넉하여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앉는 자리의 안락함이 몸을 가볍게 하고 따라서 마음까지도 즐거워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바빴는지, 어깨를 펼 틈도 없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는 나를 돌아다보면서 느긋함을 즐길 수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버스표를 끊으니 3 번 좌석이었다. 맨 앞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훤히 트인 버스의 앞 유리를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마음까지 싱그럽게 해주고 있었다. 일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리는 기분은 최고였다. 거기에다 버스 기사님이 운전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은 조금도 할 이유가 없었다. 비가 내리고 있는 겨울을 감상하면서 버스 여행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날개를 달고 하늘로 비상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왜 그렇게 고통을 받았을까? 버스 여행의 안락함과 즐거움을 재발견하게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즐거움을 잊고 살았는지 후회가 앞선다. 온고이지신이라고 하였던가? 새 것만을 추구하다가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모두 잊고 살아간다. 버스의 편안함을 왜 잊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것도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다. 10년 전까지만 하여도 버스를 타고 모든 것을 해결하였었다. 그런데 승용차를 가지게 됨으로써 그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게 되면 우울증이 온다고 한다. 그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공통적인 것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이니, 지난날들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인생이란 살아가면 갈수록 더욱 더 모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기존의 지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이 자꾸만 생기게 되니, 힘들어지고 고통이 증가되는 것이다. 평생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 학창시절에 배운 지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식은 폭발하고 있다. 행복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가지는 노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필요는 커지고 있지만 몸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한계를 느끼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던 감정을 발견하고 그것에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버스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잊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묵은 것이라고 하여 모두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함으로 인해 당하게 되는 낭패감이다.
달리는 버스 위에 앉아 풍광을 즐기면서 하는 여행의 맛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왜 진즉 몰랐는지 후회의 마음이 앞설 정도다. 버스를 통해 서울에 도착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워크숍에 참석하고 다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여행의 피곤함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버스 여행의 낭만에 푹 젖었다.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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