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라 불리는 판소리 역사를 정확히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약 300여년 조선 후기에 신재효가 이론적 정리를 했고, 그것을 모티브로 태어난 산조는 100여년 남짓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양한 형태로 민족의 소리는 흘러왔다.
소중한 민족적 자산, 세계에 내놓을 만한 문화적 업적. 그러나 자칫 ‘기록’된다는 것은 정형화 혹은 고착화 된다는 것의 동음이의어가 될 수 있다. 판소리와 산조의 근간은 민중 사이에서 뿌리내리고 열매 맺었던 운율, 과연 현재의 국악은 우리 민족 어디쯤에 서있을까.
300년 전이 아닌, 지금부터의 300년 후를 생각하며 젊은 국악인들이 모였다. '2007 판소리 축제' 현장. 부제는 ‘우리소리 찾기’다. 굳이 전통적 의미의 판소리가 아닌 다양한 시도와 접목이 어울림이 풀어져 나온 현장이다.
판소리에 꼭 치마저고리를 입어야 할까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펼쳐지는 축제. 이번이 4회 째를 맞는다. <오마이뉴스>에 다양한 문화소식을 전해주는 뉴스게릴라의 일원인 김기씨가 예술감독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300년 후의 판소리를 떠올려 본다고 했다. "여러 장르가 관계 맺는 컨템퍼러리를 통해 미래 판소리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이 훗날을 위한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첫째 날, 연습현장. 젊고 또 젊은이들이 화음을 맞춰보고 있다. 가야금과 첼로가 어울려 은은하게 반짝이는 화음. 어둠 속, 각자의 연주가 아닌 서로를 위한 보조가 낮지만 또렷이 전해온다.
이어진 본 무대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 그런데 대목을 준비한 소리꾼 조정희씨의 복장이 이채롭다. 쪽진 머리에 저고리가 아닌 평범한 외출복인 것. 판소리에는 꼭 한복을 맞춰 입는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상한가요? 어색하더라도 복장보다는 소리에 집중해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웃음)잠시 갸우뚱 했지만, 연주가 끝난 후 힘차게 터져 나오는 청중들의 박수. 복장을 넘어선 소리 자체에 대한 감탄이었다.
300년 후의 판소리는 어떤 모습일까이날의 가장 큰 어우러짐은 마지막 무대에 있었다. 가야금과 판소리, 첼로와 타악이 함께 하는 무대가 열린 것. 춘향이 옥중에서 이 도령을 그리워하는 내용인 ‘쑥대머리’를 변형한 곡이 퍼져나간다.
그리움이 서러움이 되고 옥중탄식은 낮은 절규로 흘러나온다. 양악기인 첼로가 끊어내는 파열음이 때론 비감을 상승시키는 촉매제로, 전체적으로는 곡의 풍부한 음량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전체적인 무대는 과도한 빛의 사용을 자제하고 연주자에 포커스를 맞춘다. 어둠은 음악을 삼키지 않고 고운 소리로 관객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문화라는 것이 계획되어지지 않는 강한 고집과 개성을 가진 존재다. 이 땅에 판소리라는 형태가 정립된 지 300년. 이번에 준비하는 판소리 컨템퍼러리가 꼭 같은 만큼의 세월 후 전혀 기억되지 않는 작은 점이 될지라도 염원과 의지는 남을 것이다."(예술감독 김기)크로스 오버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 '우리의 것'이라 입 아프게 외쳐대는 판소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까. 혹은 어떤 형태로 우리 곁에서 기록될 것인가, 구전 될 것인가. 중요한 건 다양한 시도는 계속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인 15일 오후 5시부터는 12현 가야금 여섯 대의 합주가 열린다. 이중 세 대의 가야금은 미리 촬영 된 영상 속 악기로, 실제 무대 위의 라이브 연주자들과 오버랩 되어 나타나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