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큰 꾸지람을 들은 후 상상 속에서나마 '가출'을 잠시 꿈꾼 적이 있습니다. 아마 대학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히 '가출'을 꿈꿀 수 있었던 건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었던 돈 만원 때문이었는데요. 라면 한 그릇에 35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만원이면 사나흘 정도는 여행을 갈 수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때의 만원과 지금의 만원, 가치가 엄청 차이 나긴 하지만 어쩌면 만원 한 장으로 일주일치 장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행히 김치와 달걀이 냉장고에 있고 쌀통만 바닥나지 않았다면 말이지요. 과일이나 주전부리,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은 꿈도 못 꾸겠지만….
얼마 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어요. 한 청취자가 전화 인터뷰 중 생활비가 모자라 쪼들릴 땐 달걀과 김치로 버티면서 식비를 아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달걀 프라이와 김치볶음밥, 달걀찜과 김치찌개가 주 메뉴라구요.
다른 요리보다 만들기가 간편하다거나 유독 달걀과 김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다른 부식거리 살 돈이 없어 할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막막할 것인지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파오더군요.
'달걀 프라이를 할 때 소금이 아닌 다른 양념을 더하면 맛이 어떨까? 김치볶음밥을 할 때 쇠고기가 더 어울릴까? 돼지고기가 어울릴까?' 하는 고민은 그러고보면 참 사치스러운 것이겠지요?
날도 점점 더 추워지고 연말이 가까워지니 마음도 더 스산해지는 것 같습니다. 달걀 프라이와 김치볶음밥이 모든 사람에게 '기분좋은 흔쾌한 선택'의 메뉴로 다가가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요?
재료(2인분)배추김치 2컵(한 입 크기)
김치국물 1컵,밥 3공기,돼지고기나 쇠고기 1컵(한 입 크기),버터(식용유) 2큰술,진간장, 고춧가루 1큰술
청양고추 1개(다져서) ,생강즙 1/2 작은술(혹은 술 1큰술),달걀 2개
만드는 법
1. 김치는 송송 썰고 돼지고기라면 생강즙이나 술을 넣고 조물거려 10분 정도 미리 재워서 냄새를 제거합니다.
2. 프라이팬에 버터 1큰술을 넣고 한 입 크기로 썬 고기를 넣어 볶아요. 오징어나 해물이 있다면 (사진 위) 같이 넣어 볶아도 맛이 좋지요. 고기가 반쯤 익으면 김치를 넣어 같이 볶은 후 김치 국물을 넣고 국물이 반으로 졸아들 때까지 약불에서 끓입니다. 이렇게 하면 김치국물과 고기에 서로 맛이 배어들어 볶음밥 맛이 훨씬 구수해지지요.
3. 김치가 무르고 국물이 졸았으면 밥과 진간장, 고춧가루, 다진 청양고추를 넣은 후 팬 바닥에 약간 눌을 정도까지 바짝 볶습니다. 단, 청양고추는 아주 맵게 먹을 경우만 첨가해야 하죠.
4. 다 볶아지면 나머지 버터 1큰술을 넣고 고루 섞어 고소한 버터 향을 냅니다.
5. 또 다른 팬에 달걀 프라이를 반숙으로 익힙니다.달걀 후라이를 먼저 익힌 후 볶음밥을 만들면 달걀이 식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설거지 일손은 덜 수 있어 좋아요.
6. 접시에 김치볶음밥을 담고 달걀 프라이를 올립니다.
보너스 팁마요네즈 1큰술이나 땅콩버터 1/2큰술를 넣어 볶아도 고소해요. 취향에 따라 마지막에 버터 대신 참기름 1작은술을 넣어도 좋구요. 아이들이 먹는 김치볶음밥이라면 버터를 넣지만 어른들이 먹는 경우, 건강을 생각해 올리브유나 들기름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습니다.
더 매운 맛을 원하면 2의 과정부터 청양고추를 넣어 같이 볶고 매운 맛을 싫어하면 고춧가루나 고추를 넣지 않으면 되겠지요. 달걀 대신 피자치즈를 볶음밥 위에 골고루 뿌린 후 내열용기에 담아 전자렌지나 오븐에 넣어 익히면 치즈김치볶음밥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이효연의 '요리를 들려주는 여자' 블로그 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