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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의 <마돈나>
오쿠다 히데오의 <마돈나> ⓒ 북스토리
요즘 소설을 통 읽지 못했다. 아니 책을 읽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모두 사는 게 바빠서다. 진부해도 사실이다. 어쨌든 재미있으면서 가슴 뭉클한 소설을 읽고 싶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이럴때 책은 내게 안식처가 된다. 이때 만난 책이 오쿠다 히데오의 <마돈나>다. 어디 오쿠다 히데오의 내공을 한 번 빌려보기로 하자.

 

우리에게 <공중그네>로 잘 알려진 오쿠다 히데오. 그의 <마돈나>는 처음부터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그간 풀지못했던 책의 갈증을 한꺼번에 보상받기라도 하듯 책장은 그야말로 무섭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면서는 더러 이런 의문도 들었다. ‘이거 너무 술술 넘어가는 거 아냐? 좀 생각할 여지도 남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일단 빠르게 읽히는 책의 흐름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이 책에는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마돈나’ ‘댄스’ ‘총무는 마누라’ ‘보스’ ‘파티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술술 읽힌다해서 이 작품들이 막판대역전이 있다거나 스릴넘치고 흥미진진한 작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너무 무난한 내용들이다. 많이 보아왔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같기도 하고 닳고닳게 들어왔던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탕삼탕 듣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과 가까이 맞닿아있다는 얘기다. 너무 가까워서 흥미진진하기는커녕 익숙하다.

 

다섯 작품을 관통하는 대략의 주제는 현실이냐 이상이냐, 타협이냐 소신이냐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샐러리맨들의 비애다. 거대한 조직안에서 ‘나’를 잃어버린 직장인들의 비애와 애환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그러나 이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산뜻하면서도 유머스럽다. 한 신입여사원을 두고 연적의 관계에 놓이게 된 상사와 부하(‘마돈나’)는 톡톡튀고 상큼한 애피타이저처럼 이 소설의 도입부를 연다.

 

회사 조직에 쉽사리 머리를 숙이지 않는 동료와 현실에 매우 잘 적응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삶인지 고민하는 ‘나’(‘댄스’)와 새로 발령받은 한 부서의 잘못된 뇌물관행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이를 개혁할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맞춰 나갈 것인가 갈등하는 ‘나’(‘총무는 마누라’), 하루아침에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상사의 부임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나’(‘보스’)는 대개 40~50대 샐러리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직장소설의 연작이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의 면면은 우리 사회의 그들과 매우 닮아있다.

 

‘파티오’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얼핏 보면 노인문제를 다룬 것 같긴 하지만 조금더 생각해 보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외로움’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소설들과는 약간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전통적인 ‘효사상’에 관련해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늘도 꿈을 꾸련다, 비록 불가능할 지라도


직장인들의 비애를 다룬 작품. 직장인들을 위한 소설이라는 데 아마 큰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 소설들을 단순히 ‘맞아, 어느 사회에나 조직생활은 다 그렇지 뭐’라며 단순히 긍정만 하고 넘어가기엔 조금 아쉽다.

 

각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자세히 바라보면 참 흥미롭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탈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편과는 별도로 자원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아내, 직장 안에서는 완벽하지만 직장을 벗어나면 야구팬인 여상사, 가슴 속에 30년 이상 한 가수를 흠모해왔던 아내, 주말이면 휠체어 타는 장애인들과 하이킹을 가는 동료. 소설 속의 ‘나’는 그들에게 그들만의 탈출구가 있었음을 깨닫고 적잖이 놀란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 모두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모두 다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직장에서는 완벽하고 성실한 재원이면서 직장 밖에서는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아마 그것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샐러리맨을 비롯한 모든 직업인들을 지탱케해주는 원천일지도 모른다. 마치 신입여직원을 혼자서 연모하고 꿈꾸면서 즐거워하는 <마돈나>의 ‘나’처럼 말이다. 설령 그것이 현실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혹자는 내게 일본소설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 일본소설은 너무 가볍지 않느냐고도 묻는다. 맞다. 가볍긴 하다. 우리나라 소설에 비해서 그렇다. 어느 한편으로 보면 일본소설은 참 철딱서니 없는 사춘기 소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점 때문에 나는 일본소설을 읽는다.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는 ‘아~인생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같은 문제를 두고 사고하는 방식이 우리와 참 다르다. 그들의 사고가 전부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건이나 사물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그 시점은 내 삶에 가끔 위로가 된다.

 

‘네가 죽자 살자 매달렸던 그 문제가 사실은 별거 아닐 수도 있다’고 그들은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의 전환은 가끔 획일화되고 관습화된 내 사고방식에 이따금 찬물을 부어주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마돈나>도 내게 확실한 탈출구가 되어준 셈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삶의 ‘로망’은 무엇인가.


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북스토리(2015)


#오쿠다 히데오#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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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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