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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이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권영길’이라는 현수막을 전부 교체했다.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라는 문구로 바꾼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왜 현수막을 교체했을까?

 

후보의 지지율과 당에 대한 지지율 사이의 격차가 크니 당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 호소를 통해 후보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해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를 뽑는 선거의 특성상 민주노동당의 이번 선택은 일견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권영길 후보와 민주노동당의 등식이 깨어진 현실에서 맞는 선택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 선거는 어차피 후보 중심의 선택이기 때문에 현수막 교체는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다.

 

문제는 권영길 후보가 비호감은 아니더라도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를 제외하고는 열광적인 지지층이 없다는 점이다. 당에 대한 탄탄한 지지층조차 후보에게는 고개를 돌린다. 그렇다면 문제는 권영길 후보의 공약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을 살펴보자. 바로 이 공약이 진보정치연구소 조승수 소장의 공개 비판, 한겨레신문의 보도, 최규엽 공동선대본부장 등의 한겨레 항의방문과 "너 몇 살 먹었냐?"는 폭언 사고까지 낳은 일련의 사태의 원인이었다.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은 이미 인쇄된 선거벽보를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 사고뭉치 공약이기도 했다.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비판할 때마다 경제대안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도 꼭 끼워 넣는 단골메뉴였다.

 

그런데 TV초청대담 프로그램에서도 권영길 후보가 코리아연방공화국을 패널로부터 방어하면서 어느새 권영길 후보는 코리아연방공화국 후보가 되어버렸다.

 

현수막 교체는 이제 권영길 후보보다 민주노동당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후보 중심 선거임을 감안한다면, 막판에 후보를 눌러 앉히고 당을 앞세우는 선거운동을 펼친다는 것은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권영길 후보를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후보의 주요 공약과 이미지에 대한 선택이지 당에 대한 지지와는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대통령 선거는 문국현 후보의 갑작스런 부상처럼 철저히 인물 중심으로 치러지고 있다.

 

현수막 교체는 이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연방공화국에 갸우뚱하던 유권자는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라는 문구 때문에 권영길 후보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현수막 교체는 민주노동당을 예전에 지지했거나 지지하려는 사람들에게 민주노동당이니까 지지하라는 ‘묻지마 지지’에 호소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교체된 문구인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가 혹시 그동안 ‘금기깨기’로 만든 민주노동당의 새로운 이미지까지 무(無)로 돌려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쉽게 간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독신가구가 얼마나 많은가. 결혼을 선택하더라도 자녀의 출산을 꺼리는 가구가 얼마나 많은가.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현수막이 결과적으로는 엄마가 없는, 엄마가 되기를 주저하는 국민들을 배제시키고 있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문구를 보고 여자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부가장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권영길 후보를 찍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가족행복시대’ 같은 슬로건에 식상한 유권자라면.

 

그리고 그동안 민주노동당 특정 정파가 반미투쟁에서 ‘우리의 누이’,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조국’이라는 수사를 종종 사용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신물이 난 유권자 가운데 그래도 차선은 권영길 후보밖에는 없지 않냐고 생각하던 사람이 이 문구를 보고 기겁을 해 마음을 바꿔먹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거 전략에 일관성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지지자로서 이 점이 몹시 아쉽다. 막판에 문국현 후보와의 차별화를 위해 끄집어 낸 KT 사례도 본질적인 정책 대결과는 거리가 먼 트집 잡기로 밖에 보이지 않아 안타까움이 더한다. 그렇게 몸부림을 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민주노동당이 과거에 단단히 묶여 있다는 느낌은 기우이고 나만의 느낌일까.

덧붙이는 글 | 이번 선거 꼭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사표심리 때문에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찍을 것이 아니라 정책을 보고 올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태그:#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선거, #정책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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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몇푼을 위해 내 글 쪼가리를 파는 것보다, 혼자 쓰고, 혼자 읽고, 아는 이 몇몇에게 돌려 읽히느니 보다, 보다 폭넓게 나의 글이 읽히게 하고 싶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에는 나의 포지티브만 싣겠다. 나의 희망만 실어나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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