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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은 원래 충무공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
▲ 진남관 진남관은 원래 충무공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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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루 누각을 지나 가파른 언덕이 이어진다. 망해루에 오르면 전망이 좋겠다 싶어 오르려 했는데 계단에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다. 진남관의 전문인 망해루는 일제시대 때 철거된 것을 1991년 4월 중건한 2층 누각이다. 계단을 오르면 진남관이다. 오른편에 진남관유물전시관이 있다. 유물전시관 바람벽을 감고 도는 담쟁이덩굴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거슬러왔을까. 그 굵기가 팔뚝만하다.

망해루를 지나면 통제문을 만난다. 통제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자 삼도수군통제사의 집무실인 동헌 자리에 위치해 있다는 역사성이 그 까닭이다. 진남관은 무료입장이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하절기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 무료개관이다.

유물전시관 바람벽을 감고 도는 담쟁이덩굴
▲ 담쟁이 덩굴 유물전시관 바람벽을 감고 도는 담쟁이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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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총통, 포환류, 비격진천뢰
▲ 임란시 사용한 무기류 승자총통, 포환류, 비격진천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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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의 유물을 한눈에

진남관유물전시관에는 여수의 문화유적이 소개되어 있다. 거북선의 내부구조물에는 선상의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다. 여수 선소에서 건조된 거북선이 참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린 임란시의 해전을 상징적으로 연출했다. 천자포와 황자포, 승자총통, 화살, 화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창안한 무기로 이것을 던져 적선을 잡아끄는 역할을 한 사조구와 포환류, 비격진천뢰, 조총, 마름쇠와 철검, 철모, 깃발(홍소령기, 남소령기, 독전기) 등의 무기류와 깃발, 명나라 황제인 신종이 이순신 장군에게 선물했다는 긴 칼 ‘참도’가 눈길을 끈다.

이충무공이 임진란(1592~1598) 7년 동안 싸움터에서 손수 쓰신 진중일기인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이 친척들에게 보낸 사신을 수집하여 만든 책 서간첩은 세로 33cm, 가로44cm로 한문 초서로 쓰여 있다.

두정갑은 갑옷이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갑옷은 남아 있지 않다. 두정갑은 이순신 장군의 5대손으로 수군절도사를 역임한 바 있는 이봉상(1676~1728) 장군이 입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원수용 갑옷을 재현한 것이다. 진품은 현재 육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두정갑은 이순신 장군의 5대손으로 수군절도사를 역임한바 있는 이봉상(1676~1728)장군이 입었다.
▲ 두정갑 갑옷 두정갑은 이순신 장군의 5대손으로 수군절도사를 역임한바 있는 이봉상(1676~1728)장군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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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전라좌수영 본영

진남관은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선조 32년(1599),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진해루터에 세운 75칸의 대규모 객사이다.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鎭南館)이라고 이름 지었다. 진남관은 원래 충무공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 숙종 42년(1716)에 소실된 것을 1718년 전라 좌수사 이제면이 재건하였고 그 후에 여러 번 중수를 하였으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진남관은 돌을 다듬어 단정하게 쌓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우고 벽체 없이 팔작지붕을 얹었다. 또한 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의 공간에는 화반을 받쳤다. 이러한 건축은 주심포집이나 익공집 계통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며 공포 하나하나의 구조는 다포집 계통의 수법에 의하여 2출목으로 짜 올려져 외목도리를 받쳤다.

외부의 삼미첨자는 쇠서와 함께 연꽃모양의 화문을 조각하여 하나의 장식판처럼 변형되었고 건물의 전 후면에서 안쪽으로 제 2주열에 놓은 기둥들을 배열하여 그 위에 대들보를 가구하면서도 내부 곳곳에 내고주를 세워 중간을 받치게 하였다.

특히, 기둥의 배열에서 건물 양쪽 끝 세 번째 측면 기둥만은 열을 흐트러 놓아 내부가 복도처럼 보이지 않게 한 특징을 보인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모든 부재들이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지붕마루와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였고 네 추녀 끝을 활주로 지탱하고 있다.

내부의 우물마루 바닥
▲ 진남관 내부의 바닥 내부의 우물마루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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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대들보에 있는  용의 형상
▲ 용의 형상 천장 대들보에 있는 용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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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은 정면 15칸(54.5m), 측면 5칸(14.0m), 면적240평의 대형 건물이다.
▲ 진남관 측면 진남관은 정면 15칸(54.5m), 측면 5칸(14.0m), 면적240평의 대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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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면을 처마까지 경사지게 이은 팔작지붕
▲ 팔작지붕 지붕면을 처마까지 경사지게 이은 팔작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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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좌수영 내에는 600여 칸으로 구성된 78동의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진남관은 정면 15칸(54.5m), 측면 5칸(14.0m), 면적240평의 대형 건물로 합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과 몇 안 되는 우리나라 대표적 목조 건축물이다.

직사각형 땅에 2줄로 반듯하게 기단을 쌓고 가장자리는 직사각형 다듬돌로 돌렸으며, 막돌(자연석) 덤벙 초석 위에 민흘림의 원형 기둥 68개를 세웠는데, 막돌 초석에 맞게 기둥뿌리의 밑둥 다듬어 기둥을 단단하게 유지시키려는 고급 기술 그랭이 수법을 사용하였다.

진남관의 규모가 장대하여 지붕 쪽에서 내려오는 힘이 너무 크므로 이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하여 기둥과 기둥을 가로짓는 창방으로 연결하였고,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한 주심포 양식으로 처리하였다. 또한 기둥 위 주심도리를 중심에서 공포 바깥쪽으로 2개의 가락(외 2출목)을 낸 점, 내부에 다시 2줄로 큰 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받치도록 한 점, 건물 앞뒤 양쪽 끝 칸에 퇴보를 둔 점은 모두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고자 한 것이다.

장대한 건물의 지붕 측면을 박공모양으로 처리한 후 그 밑을 잇고 지붕면을 처마까지 경사지게 이은 팔작지붕은 이 건물의 격을 한층 높이고 있다. 또한 대들보는 용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색이 바래기는 했지만 정성스럽게 단청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충무공 휘하 수군들이 야간 조련시 화대를 설치했던 석주화대
▲ 석주화대 이충무공 휘하 수군들이 야간 조련시 화대를 설치했던 석주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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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 뒤쪽에 있는 우물
▲ 우물 진남관 뒤쪽에 있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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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5년(1911) 여수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교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53년 진남관 보수 공사 도중 1718년 이제면 수사가 쓴 현판이 발견되었다.

1959년 5월 30일 보물 제 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국보 제 304호로 지정되었다.

진남관을 한 바퀴 돌아보면 그 웅장한 규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남관 내부 주변에는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인 여수 석인상과 이충무공 휘하 수군들이 야간 조련시 화대를 설치했던 석주화대 뒤쪽에는 우물이 있다. 진남관 툇마루에 앉으면 돌산대교의 멋진 풍경이 다가온다.


태그:#진남관, #이충무공,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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