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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치러진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4동 제2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치러진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4동 제2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대선 민심이 냉랭하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푸념만 가득하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분위기다. 어쨌든 날이 밝으면 투표를 해야 한다. 오후 11시쯤 되면 새 대통령이 결정될 것이다.

 

과연 누구를 찍어야 할까?

 

92년 3월, 14대 총선 때 처음 선거를 했다. 당시 육군 ‘쫄병’이었다. 여단장이 뜬금없이 막걸리 몇 통 들고 부대를 방문했다. 한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될 사람에게 힘을 더 실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92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였다.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여단장이 ‘될 사람’이라고 지칭한 것은 당시 민자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앞으로 대통령이 돼서 국가를 통치할 민자당이 좀 더 통치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을 많이 뽑아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요즘 군대는 여러분들 투표하는데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 소신껏 찍어라.”

 

그 당시 여단장의 그럴 듯한 말을 듣고 너무나 감동(?)해서 난 민자당이 아닌 야당 후보에게 아낌없이 한 표 던졌다. 될 사람에게 너무 많은 힘을 몰아주면 ‘독재’를 할 수도 있을 것 이라는 생각에서다.

 

두 번째 투표는 그 해 12월 대통령 선거였다. 매형 두 분과 함께 투표했다. 직장 생활을 하던 큰 매형은 “그래도 될 사람 밀어주자”고 강변했고 사업을 하던 둘째 매형은 “사업가 출신 정주영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난 매형들과 생각이 달랐다. 당시 가장 당선 가능성이 적었던 백기완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런 나를 매형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백기완 후보 연설이 마음에 들었다. 백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소중한 한 표를 던져도 당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당시 백 후보는 23만8648표라는 의미있는 득표를 했다. 진보정치 싹을 틔운 것이다. 23만8648표 안에 내가 던진 표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97년 대선에서도 내가 지지한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다. 이번 2007년 대선에도 출마했기에 이름을 밝히진 않겠다. 그 당시에도 의미 있는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2002년에도 마찬가지로 내가 지지한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다. 결국 지금까지 내가 지지한 후보는 단 한 번도 당선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던진 표가 의미 없는 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마음으로 던진 표보다 훨씬 더 소중한 표라고 생각한다.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실현 가능성 까지 나름대로 타진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이번 선거에도 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후보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 후보가 주장하는 것이 내 생각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미련하다고 생각할는지도!

 

투표는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기도

 

국민은 투표라는 것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다. 따라서 투표를 통해 나타나는 결과가 곧 민심이 되는 것이다.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복지정책’ 우수한 후보를 지지하면 된다. 또, 통일이 시급하다고 생각되면 통일 앞당길 수 있는 후보 지지하면 되는 것이다.

 

‘사표’라는 것이 있다. 죽은 표라는 뜻이다. 통합민주신당 유시민 국회의원은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한 후보에게 던지는 표를 사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그런가? 감히 ‘아니다’ 라고 단정한다.

 

투표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투표는 권력을 창출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정치적 의사 표현이다. 따라서 투표를 통해 나타난 결과가 곧 민심이 되는 것이다.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잡더라도 민심을 무시 할 수는 없다.

 

내가 던진 한 표가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가끔 생각한다. 난 복지와 인권, 평등을 중요시하는 후보를 지금까지 지지해 왔다. 복지 정책은 해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인권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던진 한 표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무조건 될 사람에게 던지는 한 표야 말로 ’사표‘다. 정치적 의사표현을 정확히 했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공약이나 정책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그저 대통령 될 것 같아서 던진 표를 정치인이 민심이라고 생각하면 큰일이다. 민심과 어긋나는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투표가 시작됐다. ‘사표’ 만들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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