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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표지.
ⓒ 인터넷 교보문고
얼마 전 한 인터넷 서점에서 200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100권을 공개했습니다. 그 맨 앞자리에 선 책이 <시크릿>이라는 자기계발서입니다. 책 표지에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홍보 문구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잘 팔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은 "가는 곳마다 1등 조직으로 만든 명 사령관의 전략노트"라는 홍보문구를 달고 있는 <이기는 습관>입니다. 세 번째 역시 자기계발서인 <에너지 버스>이고, 네 번째는 제목만으로도 내용이 파악되는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입니다. 베스트셀러 순위 10위 이내에 무려 7권이 자기계발서 아니면 경제 관련 서적입니다.

돈 버는 방법이나 성공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스스로도 성공을 거두는군요. 베스트셀러 목록에 세상을 비추어 본다면 2007년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성공'에 쏠려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1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끝났습니다. 방송사 출구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합니다. 이명박 후보의 핵심 구호가 "국민 성공 시대"였다는 걸 기억하는지요. 국민들은 올 한 해 성공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이명박 후보는 국민들을 성공시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에 맞선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구호는 "가족이 행복한 나라"였습니다. 성공을 바라는 국민에게 '가족 행복'을 이야기 했으니 귀 담아 듣는 이 적었을 겁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을 이야기 했지만 "코리아 연방공화국"이 먼저 기억에 떠오르고,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사람이 희망이다"와 이회창 후보의 "대한민국을 살리겠습니다"는 성공에 비해 손에 잡히는 게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딱 맞는 인물이 선택되는 겁니다. 성공을 바라는 국민과 성공을 약속하는 대통령 후보, 이 보다 더 적합한 선택이 어디 있을까요. 결과를 보고 하는 이야기라 우습긴 하지만,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구호가 정해진 그 순간 정해진 것 같습니다.

출구조사 직후 이명박 후보측은 홈페이지에 'TV3사 출구조사 "이명박 압승"'이라는 화면을 게시했다.
 출구조사 직후 이명박 후보측은 홈페이지에 'TV3사 출구조사 "이명박 압승"'이라는 화면을 게시했다.
ⓒ 이명박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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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의심받는 그의 도덕성과 매일 같이 터져나왔던 갖가지 의혹들조차 그가 약속하는 성공신화 앞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습니다. 2007년 국민들은 성공을 선택한 겁니다.

성공, 많은 이들이 바라는 바일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또한 그가 말하는 성공이 참 성공인지 아닌지에 대한 검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성공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재앙일 수 있는데, 과연 그의 약속대로 국민 모두가 성공할 수 있을는지요. 성공을 위해 도덕성을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해야 할까요.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2007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 상위 100권 안에는 인문 서적은 단 한 권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성공만 좇다 보니까 소홀히 해선 안 되는 다른 부분이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겁니다.

인문 서적에 대한 무관심 보다 더 걱정스러운 게 있습니다. 어른들의 성공에 대한 집착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서들이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을 휩쓸자, 같은 제목에 '어린이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시크릿>, <어린이를 위한 이기는 습관>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린이, 재테크에 미쳐라> 같은 책이 나오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국민 성공시대'를 이야기하는 이명박 정권의 걱정스러운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할 우리 아이들조차 어른들을 좇아 성공신화에 매몰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도덕성을 짓밟고 선 성공신화가 통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결과에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름 기대도 걸곤 합니다. 이제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 결과를 앞에 두고는 그 어떤 기대도 선뜻 하기가 힘듭니다.

자기 계발서에 밀려 인문 서적이 고사당하는 출판계의 현실이 향후 5년간 성공신화에 밀려 고사당하고 말 우리 삶의 또 다른 가치들을 미리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위한'다는 자기 계발서들의 출현은 어린이들마저 치열한 경쟁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걸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모든 이들이 그런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요.


태그:#이명박, #대통령,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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