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참으로 다양한 퓨전국악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 전통사회의 규범이 그대로 지켜지는 것 같던 국악계에 금기로 여겨지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국악이 발전하는 모습인지 아니면 단지 얄팍한 상업적 편승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젊은이들의 꿈을 향한 열정의 출구는 이제 다양하게 열려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뿐이다. 금기가 사라진 국악계에서 어쩌면 더욱 조심스러운 것이 아마도 새로운 도전일지도 모른다. 대선 하루 앞둔 18일, 홍대 클럽거리는 서울 속 신세계처럼 정치 격변의 분위기는 읽히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국악사에 의미심장한 작은 반란이 준비되고 있었다. 받아드리는 이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직도 국악계를 지배하는 어떤 엄숙주의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는 이에게는 유쾌한 일탈로 기억될 것이다. 담배 연기 자욱한 홍대 앞 한 지하 클럽 '타'에서는 평소처럼 락밴드의 굉음이 아니라 단아한 가야금소리가 띠링띠링 들려온다. 작은 무대를 향해 촘촘히 배열된 의자에 앉은 관객들의 손마다 맥주 한 잔 혹은 칵테일 잔이 들려져 있다. 누군가는 서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일반 음악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불과 일이 미터 떨어진 무대 위 세 명의 연주자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국악이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야금연주도 생소하겠는데, 이들이 연주하는 곡들은 소위 현대음악으로 분류해야 하니 이 또한 홍대 클럽 분위기에는 낯선 것이 분명하다. 특히 1부에 연주한 ‘조선라운지(박재록 작곡)’, ‘가야금 지구대작전(김희정 작곡)’, ‘시간이 없다(박한규 작곡)’은 산만한 클럽무대에서 연주하기에는 무거운 곡들이다.
가야금 앙상블 아우라는 아마도 청중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을지 모를 일이다. 홍대 앞 분위기가 어쨌든 ‘자유’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곳이라서가 아니다. 아우라를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이라 할지라도 곡에 따라서는 좋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듣고 싶은 사람 듣고, 아닌 사람은 잠시 딴 짓을 해도 눈에 띄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의 연주는 그런 넉넉한 배려와 또한 자신감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산만함 속에서도 대부분의 청중들은 진지함을 보였다. 일반 음악회장과는 달리 소음도 있고, 주의를 뺏어가는 움직임도 있지만 손에 잡힐 듯한 거리의 연주자들에게 집중하는 모습들이었다. 그 속에는 국악을 전공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일렉트릭 기타를 든 모습도 있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국악음악회라면 오지 않을 사람들도 그곳에 존재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도발이었다. 가야금 앙상블 아우라가 굳이 홍대까지 가서 소위 폼 나지 않는 연주를 한 이유에는 다른 음악을 하는 동년배들에게 가야금을 전달해주고자 한 것이다. 근래 퓨전국악의 물결에 단연 해금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가야금은 국악기의 꽃이다. 게다가 가야금 앙상블 아우라는 적어도 실력만은 누구나 인정하는 그룹이기에 그들이 홍대 클럽에 진출한 것은 두 가지를 노리고 있었다. 국악이 연주되는 공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순수예술의 소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우리 현실에서 청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그런 시도는 순차적으로 특별한 공연환경에 맞는 음악을 만들게 된다.
이날 아우라가 연주해서 가장 큰 반향을 얻은 ‘아우라-테크(최영준 작곡)’같은 곡은 이번 연주를 위해 새로 만든 곡으로 딱히 기존 클럽음악과 비슷하진 않아도 클럽분위기를 노렸다는 점에서 기존 아우라의 음악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대단히 명상적인 느낌의 ‘가야금 정원(박재록 작곡)’은 의외로 청중들의 깊은 관심을 끌어냈다. 아우라가 이날 연주한 6곡 중 4곡이 초연된 곡인데 그 중 적어도 두 곡은 클럽에 순응하거나 혹은 반대의 발상으로 만들어졌다. 아우라로서는 일반 극장에서 할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신경을 쏟았던 흔적이 보인다. 그냥 한번 해보겠다는 치기가 아니라 절실한 의도와 투자를 통해 클럽 연주를 준비한 것이 역력했다. 가야금 앙상블 아우라는 민혜인, 박경소, 박설현 등 3인의 가야금 연주자들로 구성된 팀이다.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를 함께 마치면서 뜻을 모아 팀을 결성했다. 비슷한 또래들이 대부분 퓨전국악의 경향으로 러시를 이룰 때였다. 그러나 아우라만은 거의 유일하게 아카데믹한 음악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들이 창단 후 지금까지 발표해온 곡들은 모두 현대음악의 색채가 짙은 곡들이다. 그런 탓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아우라는 열광 대신 진지하고 심지 깊은 팬들을 늘려가고 있다. 작곡가들이 흔쾌히 곡을 주는 팀이 되었고, 어떤 연주라도 맡기면 염려를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좀 더딜지라도 아주 먼 날 이들이 팀이 아니라 솔로이스토 활동할 때까지도 배경이 되어줄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창단 이듬해부터 북경현대음악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페스티벌 등 국제 음악제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아우라는 국악을 통한 현대음악 접근으로 세계 음악가들과 교우를 넓혀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우라가 벌인 클럽 음악회는 깜짝 이벤트가 아닌 그들만의 의도와 실험이 담긴 참신한 발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국악연주가 클럽에서 열린 것은 아우라가 최초는 아니다. 3년 전 제1회 국악축전에 홍대 클럽에서 밤새워 연주를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대부분 소위 홍대분위기의 연주에다가 국악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온전한 국악공연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엄밀히 따진다면 아우라가 클럽공연의 효시가 될 것이다. 물론 누가 처음이냐가 중요해지기 위해서는 향후 클럽문화 속에 국악이 어떻게 자리잡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그것은 아우라는 물론 더 많은 젊은 국악연주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지어질 것이다. 언젠가 홍대 문화 속에 젊은 국악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 하나로 자리 잡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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