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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공이 시작됐다.

 

<조선>이 4일 만에 낯빛을 바꾼 채 선봉에 섰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대선이 끝난 지 하루만이다.

 

[선거 후에는] "끝내 특검법? 나라에 무슨 도움 되나"

 

20일 <조선>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사명' 제하의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상황에서 끝내 특검법을 공포하는 것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한다."

 

<조선>은 사실상 노 대통령이 특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명박 특검' 찬성 입장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이는 권력 검증이라는 언론의 본령을 포기한 것이다.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는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다.

 

<조선>은 또 "국민의 뜻에 어긋나게 특검을 강행해 새 정부의 출발을 어지럽히는 것이 이제 야당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에 과연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검이 국회에서 통과될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은 '찬성'이었다. 이런 사실조차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BBK 사건으로 이 후보를 공격했던 2·3위 후보와의 표차는 두 배, 네 배에 달했다. 대선 사상 최대의 표차다. 그렇다면 당선자에 대한 특검을 의결했던 국회의 뜻은 당선자를 과반에 육박하는 표로 당선시킨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은 그 근거를 '대선 사상 최대의 표차'로 들었다. 비겁한 짓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유권자의 목소리'를 빌린 것이다. 아니, 특검에 대한 여론조사를 대통령 선거와 등치시킨 것이다. 유권자의 뜻을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이건 여론조사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다.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PDF

 

한나라당과 <조선>의 '환상 호흡'

 

<조선>의 코치를 받아들인 것일까? 한나라당 역시 이날 <조선>과 호흡을 맞췄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0일 오전 KBS 라디오토크쇼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당선된 사람을 놓고 무슨 특검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해서 다시 후벼 파는 것은 아주 저급정치"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그만두시며 국민통합을 위해서 이런 법은 거부권을 행사해주는 게 좋지 않겠냐"며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고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박희태 의원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이제 특검의 정치적인 효용은 끝났고 국민들도 별 관심을 안 가질 것"이라며 "통과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으니 이것을 최종적으로 법안으로 성립시킬지 않을지는 청와대에서 한 번 더 검토를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명박 강연 동영상'이 공개된 뒤인 16일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었고 곧 큰 싸움도 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네거티브 선거의 절정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특검 수용 배경을 설명했다.

 

20일에도 이 당선자는 "공정하고 법대로 집행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족으로 비춰진다. 당선되자마자 핵심 참모들이 보인 태도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언론이라면 되레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에 메스를 들이대는 게 맞다. 하지만 유권자의 뜻을 왜곡하면서 정치권과 주거니받거니 하는 것은 스스로 언론임을 포기한 것이다.

 

 17일자 <조선일보> 사설.
17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PDF

 

[선거 전에는] "검찰의 자신감, 특검을 통해 밝혀질 것"

 

4일 전인 17일 <조선>의 사설로 되돌아가보자. '이명박 후보의 특검 수용과 대선 정국' 제하의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신당이 국회에 제출한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은 그 수사 대상을 BBK 의혹에서부터 검찰의 김경준씨에 대한 회유·협박 여부, 도곡동 땅 문제 등 이 후보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당선자 신분으로 한 달 이상 특검 조사를 받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어 "검찰의 BBK 수사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국민이 절반 안팎에 달하고 이 후보가 BBK 설립 사실을 밝히는 동영상이 나온 이상 특검으로 다시 한번 재수사하는 것도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강한 톤으로 특검 수사를 통해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지지했다. 

 

"사태는 특검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이날 신당이 공개한 이 후보의 강연 동영상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런 내용의 이 후보 발언이 공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것을 육성(肉聲)으로 듣는 국민에겐 느낌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 검찰은 '동영상 공개로 (BBK가 이 후보 소유가 아니라는) 검찰 수사결과는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자신감이 사실인지는 특검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조선>이 왜 이틀만에 이처럼 돌변했는지. 그리고, 참여정부의 폐쇄적 기자실에서 쫓겨난 것에 광분해 차디찬 맨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앉아 촛불을 켠 채 언론수호를 외치던 수백명의 기자들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조선>은 또 당시 사설에서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피력했다.

 

"궁금한 것은 이 후보는 왜 2000년 10월에 BBK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말했느냐는 점이다. 검찰 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김홍일 검사는 '강연 시점은 이 후보가 김경준씨와 다른 회사를 동업하며 김씨의 BBK와 연계해 인터넷 종합금융사업을 하려던 시점'이라며 '강연 나흘 전에 금감원 예비허가가 나니까 언론 인터뷰도 하고 광운대서 강연도 한 것 같다'고 했다. 쉽게 말해 이 후보가 새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관련 회사 전체를 자신의 것인 것처럼 부풀려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는 김경준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도 자신의 입으로 깨끗하게 시인한 적이 없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 대해서도 '홍보를 하려고 인터뷰를 했지만, 새 비즈니스를 잘 몰랐고 (문제된 내용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만 했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오보'라고까지 했다. 이 후보는 이날도 강연 동영상에 대해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고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고 피해갔다."

 

언론으로서의 결격사유

 

BBK 사건의 핵심을 짚은 대목이다. <조선>은 한발 더 나아갔다.

 

"대그룹 CEO 출신이 사기꾼에 당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걸 과시하고 다녔던 것이 부끄럽고 창피할 것이다. 그걸 덮으려고 끝까지 말을 이리 저리 돌리다 본질 문제가 이렇게 엉켜 버린 것이다. 전적으로 이명박 후보의 책임이다. 김경준에 속았다는 것도 대통령 후보로서 결격 사유일 수 있다."

 

특검이 핵심적인 의혹을 풀어주기를 기대했던 <조선>, 특검이 밝힐 조사 내용에 따라 대통령 후보로서의 결격 사유를 운운했던 <조선>.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 <조선>이 자기 입으로 내뱉은 말조차 서둘러 주워담으려 하는 까닭이 궁금하다. 바야흐로 '이명박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조선일보#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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