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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가 동지(冬至)다. 1년 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 날은 태양이 부활하고, 생명력과 광명이 다시 솟아나는 날로 절기 중 가장 큰 명절이다. 동지를 지내야 한 살 더 먹는다하여 ‘작은 설’이라고도 부른다.

 

동지 날에는 찹쌀로 옹시래미 새알심을 빚어 팥죽을 쑤어 먹어야 역신(疫神)이 얼씬거리질 못하고 집안이 편안하다 전해오고 있다. 오늘도 앞 골 앞 골 아줌마가 팥죽을 쑨다기에 집을 나섰다.

 

 물에 씻어 놓은 붉은 팥
물에 씻어 놓은 붉은 팥 ⓒ 윤희경

 

“팥죽 쑤기가 꽤 힘들다던데요?”
“옛날부터 팥죽을 잘 쑤려면 물과 불을 잘 다스려야 혀.”

 

우선 작은 솥단지에 불린 팥과 물을 넉넉히 붓고 중간 불에 팥을 팔팔 끓여낸다. 불이 세면 팥이 타버리기 때문에 끓이다가 물을 한 사발쯤 다시 붓고 약한 불로 끓여야 팥알이 툭툭 터지며 푹 삶아진단다.

 

삶아낸 팥알을 체에다 붓고 물기를 뺀 다음 나무주걱으로 으깨어 앙금을 받아낸다. 팥죽의 생명은 앙금에 있다 한다. 앙금은 헌혈할 때 뽑아낸 피처럼 붉으죽죽하다. 다음엔 불린 쌀에다 팥 삶은 물을 붓고 센 불에 쌀알이 흐물하게 퍼지도록 끓여낸다. 이때 약한 불, 중간 불, 센 불의 경지를 잘 감지해야 팥죽 쑤기에 성공을 할 수 있다.

 

 옹시래미
옹시래미 ⓒ 윤희경

 

그러나 불의 세기를 감지해 내기란 초보자에겐 쉬운 일은 아니어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앙금에다 새알심과 쌀알을 넣고 약한 불에 한소끔 더 끓여내니 팥죽이 완성되었다.

 

옛날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가 죽어 외로이 하늘을 떠돌다 동지 날 땅으로 내려와 기둥에 달라붙으면 천연두가 여문다 했다. 이 망나니가 평상시에 붉은 색을 무서워해 동지 날이면 팥죽을 쑤어 대문이나 기둥에다 바르면 천연두가 사라진다고 믿었다. 새알심은 귀신의 나쁜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간다 하고, 뱀 사(巳)자를 써서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집안을 넘보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동지 팥죽
동지 팥죽 ⓒ 윤희경

 

옛날에 동지 날은 ‘어머니 날’이었다. 요즘엔 카네이션 몇 송이로 끝내버리지만, 동지 날에는 딸과 며느리는 버선을 지어 바치고 아들들은 아무리 늙고 나이가 먹었어도 때때옷을 입고 노모를 즐겁게 하기 위에 춤을 추었던 것이다.

 

‘엄마, 나 예뻐’하고 재롱을 떨면 어느 어머니가 웃음을 참았을까 싶다. 동지날에 어머니를 깍듯이 대접한 것은 동지 날부터 해가 길어 수명이 길어지길 축원했던 것이다. 재롱을 떨지 않더라도 오늘 동지가 다하기 전에 어머니께 전화나 한통 해 볼일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질 것이다. 실학자 이익(李瀷)은 ‘길어지는 해 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했다. 내일부터 해맑은 겨울 햇살을 밟으며 새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무병장수나 빌어야 할까보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북한강 이야기'를 클릭하시면 고향과 시골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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