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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식문집이 45년동안 있었다니요 ?
▲ 한옥 한채 없는 해운대 아파트 숲속에 전통 한식문집이 45년동안 있었다니요 ?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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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는 천년의 동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한옥 한채 보이지 않습니다. 군부대가 철수하고 신시가지가 된 해운대. 동해남부선의 기찻길 주변에 있던 낡은 판자촌도 다 뜯기고, 우람한 고층 아파트 동네가 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기찻길이 있어서 옛풍경 속으로 걸어가듯이, 종종 기차변 따라 산책을 합니다.

산책을 하다보면 이제껏 보지 못한 오래된 가게와 골목, 잊혀진 풍경을 만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기찻길의 건널목을 헤일 수 없이 많이 지나다녔는데, 오늘에사 눈에 들어오는 전통 한식문짝 집을 만났습니다. 이래서 사람의 눈을 믿을 수 없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위를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고 스쳐 지나면, 그냥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장님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그래서 대단한 발견이라도 하듯 반쯤 열린 '영일 전통 한식문' 가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한창 문짝 만드는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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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짝의 장인
▲ 오십년의 세월, 오직 한길 전통문짝의 장인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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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가게 구경 좀 해도 되나요?"하고 큰 소리로 여쭈니 일하시던 연로해 보이는 주인장은 얼마든지 마음껏 구경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내친 김이라 물었습니다.

"그럼 저 사진도 찍어도 되나요?"하고 다시 여쭈니, 주인장은 시원하고 큰 목소리로 얼마든지 사진을 찍어가라고 했습니다. 그 고마운 말씀에 일손이 바쁜 주인장에게 "어머… 이 가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나요?"하고 바보처럼 물었습니다. "한 45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그걸 묻는 것을 보니 댁은 해운대 동네 사람이 아니죠?"하고 되물으셨습니다. "어머, 전 해운대에서만 20년 가까이 살았어요."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장은 컬컬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그럼… 해운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난생 처음 보는 나무톱들입니다.
▲ 문짝에 쓰이는 여러종류의 톱들 난생 처음 보는 나무톱들입니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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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의 무늬에서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 우리 전통 한옥의 멋 문짝의 무늬에서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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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일 전통 한식문' 가게를 운영하시는 김영일 주인장을 '할아버지'라고 존칭하기 망설여질만큼 너무 정정하시고 젊어 보이셨습니다. 마침 가게 안에는 가까운 '해원정사'의 J 스님의 글씨를 인각한 현판이 있었습니다.

'J 스님'의 글씨는 이미 알려져 있지만, 이 훌륭한 글씨를 인각해 놓으신 솜씨는 정말 예사롭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있게 가게 안을 살피니, '정자살무늬' 문짝에 '빗살무늬'를 넣어 마지막 공정을 하시는 주인장은 "내가 작업이라 바쁘니, 마음껏 구경하고 문짝에 관심이 있으면 항상 놀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좁은 문속으로...
▲ 오직 한길로 걸어온 그 좁은 문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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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장인의 인각 솜씨
▲ 문짝 솜씨 못지 않은 김영일 장인의 인각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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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나무기계톱 소리조차 정겹게 들리는, 5~6평쯤 되는 작업실 벽에 잘 정돈되어 걸린 나무톱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유년시절이 새록새록 기억 났습니다.

우리 본가는 전통 ㄷ자형 한옥이었지요. 안방, 건넌방, 행랑채의 문짝은 '귀갑무늬 문짝'과 '곱살무늬 문짝'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해가 바뀌는 세모에는 늘 도배를 하셨고, 잘 말린 국화꽃잎과 나뭇잎을 붙여서 하얀 창호지를 바르셨지요.

그러나 개구장이 동생과 나는 창호지마다 손가락 구멍을 내서 종아리를 숱하게 얻어 맞곤 했습니다. 이제는 주변 어디에도 창호지를 마른 한옥의 문짝은 구경할 수도 없고, 아파트 창들은, 마치 단단한 방탄벽과 같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서 이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옥 문짝집을 발견한 것이 무슨 보물을 발견한 듯 가슴이 설렜지만, 수요가 없는 힘든 가업을 하루 이틀도 아닌 45년 동안 이어가는 주인장의 어려움은 굳이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됐습니다. 그 어려운 힘든 외길을 여기까지 걸어오신 무명(無命)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태그:#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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