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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100명 미만 학교를 통폐합하는 정부 정책으로 폐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폐교 활용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활용 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는 지역도 적지 않고, 교육부의 폐교 매각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폐교가 살아야 마을도 살아난다'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국 폐교 활용 사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웃다리 문화촌 희망솟대
 웃다리 문화촌 희망솟대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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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굉음이 요란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태극기. 그 다음, 깃대 끝에 전폭기 A-10이 걸려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교실에서 들었을 마른 천둥이자,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 바라봤을 살풍경이다.

여기는 경기 평택시 서탄면에 있는 서탄 초등학교 금각분교장 옛 교사동 앞. 여타 폐교보다 더욱 고독한 위치다.

학교 북동쪽에는 K-55 미군 기지, 남쪽에는 평택 주둔 미군들이 사용하던 알파 탄약고가 각각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올해 여름, 국방부가 미군기지 추가 확장지역으로 지정한 황구지리가 있다. 동쪽에는 많은 미군 병사 가족들이 생활하게 될 국제평화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온통 '미군'이란 키워드가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도시형 폐교'에 40개 프로그램 '접목'

웃다리 문화촌
 웃다리 문화촌
ⓒ wootdal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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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여기 '미군 삼각지대'에 새로운 검색어가 추가됐다. 문화다. 웃다리 풍물 소리가 힘차고 도자기를 굽는 가마불이 뜨겁다. 색깔있는 돌가루로 생활 액세서리에 멋을 내고 내가 쓸 가구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고구마를 캐거나 옥수수를 따는 등 농촌 체험도 빠지지 않는다. 도시인 뿐 아니라 군인, 그리고 미군 등 외국인들도 방문하고 있다.

복합 문화예술 체험공간, 웃다리 문화촌이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다. 폐교가 다시 살아나면서 태극기도 더 이상 고독하게 나부끼지 않는다. 바로 옆에는 풍년을 비는 마음으로 또는 마을 경계 상징으로 세우는 솟대가 우뚝 서있다. 학교 부지로 땅 1000평을 희사한 '아버지'의 아들이,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아들이 '희망의 경계'로 세운 솟대다.

폐교가 살아나고 불과 16개월만에 이 경계를 오간 이들이 "연인원 2만5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박성복 웃다리 문화촌(아래 '문화촌') 사무국장은 "외지인이 25%, 주한미군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외국인이 5%, 나머지 방문객은 평택 지역주민들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평택 시민들이 문화촌을 많이 찾는 첫 번째 이유는 '도시형 폐교'라는 특징 때문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송탄역에서 택시로 10분이면 도착한다. 인근 송탄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다. 주말을 이용한 당일치기 체험에 부담 없는 거리다.

푸짐한 잔치상도 폐교를 문화촌으로 살아나게 만든 주요 원인. 정기강좌가 12개, 일일 체험 프로그램은 40여 개에 이른다. 양도 양이지만, 질에 있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도자기 가마나 목공예 공구 등 체험 시설 투자에 소홀하지 않았고, 프로그램 참여 인원 역시 1회 20명 제한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체험 심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다.

페인트 냄새 안 나는 목공예실... 군인들에게 그림 가르치는 서양화가

교사동 입구 양 편에는 태극기와 솟대가 자리잡고 있다
 교사동 입구 양 편에는 태극기와 솟대가 자리잡고 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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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작가들은 공개 모집과 심층 면접 방식으로 엄선했다. 작가들은 강좌를 진행하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한다. 정기적으로 새로운 강좌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사무국에 제출해야 한다. "작품 활동과 강의를 병행하다보니 너무 바빠 집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 아쉽지만, 작가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생활도예 강좌를 맡고 있는 채미경(44·여)씨는 "작가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협조하고 또 한편으로는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작업할 수 있어 좋다"며 "수강료가 저렴하고 시설이 괜찮아 수강생들이 많이 찾고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목공예 체험을 진행하는 박상복(45·남)씨 역시 "공구쓰는 법을 배워 자신의 힘으로 가구를 만들고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귀향'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평택이 고향인 박 씨는 D.I.Y(스스로 만드는) 가구 목공방을 천안에서 운영하다, 아예 작업장을 문화촌으로 '귀향'한 사례다.

그는 "서민들일수록 좋은 자재로 만든 가구를 써야 하는데, 가격 문제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기서는 친환경 자재나 천연 페인트만 쓴다, 재료비와 수강료를 합쳐도 시중 가격의 절반 정도 금액으로 자신이 쓸 가구를 만들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일반인 뿐 아니라 군인들에게도 서양화를 가르치고 있는 심혜경(51·여)씨는 "작업실로 쓸 수 있고 후배들도 양성할 수 있는 데다, 저렴한 비용으로 부담 없이 서양화를 접할 수 있어 수강생들이 많이 온다"며 "특히 군인들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회 아니냐, 아주 신나서 배우러 온다"면서 제자들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들, 회사를 만들다

그러나 폐교 살리기 성공 1원칙은 역시 '소통과 연대'다. 문화촌 역시 이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 "상업적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며 "초기 때만 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주민들"과 기획 단계부터 자주 만났고, 모두 40여 차례 협의를 거쳤다고 한다.

문화촌 인근 마을 초등학생들에게 무료 체험 교육을 실시하는 등 프로그램 운영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이제는 "명절에 온 손자·손녀들에게 학교를 구경시키는 마을 어르신들이 많아졌을 정도"라고 한다.

과천 한마당 축제에서 희망솟대 '직원'들. 가운데가 이경태 사장
 과천 한마당 축제에서 희망솟대 '직원'들. 가운데가 이경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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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자, 손녀에게 보여줄 자랑거리는 또 있다. 문화촌은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짚풀 공예, 솟대 만들기 등을 가르치는 실버문화학교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어 실습을 거쳐 강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어르신들은 "손자들이 탐낼만한 작품을 만드는" 실력을 갖추게 됐다.

많지는 않지만 수익도 뒤따랐다. 판매 소득과 강사료, 외지에서 어르신들을 강사로 초빙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래서 탄생한 회사가 희망솟대.

이경태(72·남) 사장은 "내가 누굴 가르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새로운 일자리도 생기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에 보람이 크다"며 "심심하면 유리창 깨지고, 또 방학 때는 청소년들이 담배 피고 술 먹는 곳이었지만, 문화촌이 들어오고 주민들이 자주 만나 행사도 같이 하다보니 마을에 생기가 넘치게 됐다"고 말했다.

웃다리 문화촌이 '희망솟대'인 이유

부친이 학교 부지로 땅 천 평을 희사했다는 이 사장은 "어떻게든 이 학교만은 지키고 싶었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공공 건물이 하나라도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폐교는 '공공 건물'로 완전히 다시 살아났다.

그것도 한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비록 A-10 전폭기가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미군 기지가 포위하고 있는 땅에 있지만, 경계선을 그을 수 없는 '문화'의 힘으로 폐교가 살아났다. 마을이 살아나고 있다. 웃다리 문화촌의 또 다른 이름을 '희망솟대'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미군 등 다문화가족 방문 필수코스로 만들 것"
[인터뷰] 박성복 웃다리문화촌 사무국장

웃다리문화촌 박성복 사무국장
 웃다리문화촌 박성복 사무국장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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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스스로 '수능 대박 솟대'를 기획하는 등 마케팅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으며, '솟대를 갖다 놓으면 1계급 특진될 것'이라는 농담으로 유머를 좋아하는 미군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비단 솟대를 만드는 것 뿐 아니라, '희망을 담는 안테나'라는 의미 또한 잘 전달하고 계신다."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서 태어난 박성복 웃다리문화촌 사무국장(43·평택문화원 상임이사)은 이제까지 줄곧 고향을 지키고 있는 언론인이자 향토사학자 연구가다.

중학교 시절 4-H운동을 하면서 일찍부터 농촌 활동에 눈을 떴다. 이후 평택신문사-평택유선방송-한빛기남방송을 거치며 줄곧 지역에 뿌리박은 언론인으로 살아왔다. 평택시사(史), 사진 속 평택의 자화상 등 향토사를 발간했으며, 2003년에는 농촌 문화 진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 4-H지도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력을 갖고 있는 박 사무국장이었던 만큼, "평택 주민들이 내세울 수 있는 문화공간 확보"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폐교로 버려져 있던 옛 서탄초등학교 금각분교를 유력한 '후보'로 점찍은 평택문화원이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상임대'였다고 한다. 교육청과 시를 함께 설득해야 하는 문제였다.

"평택에서 체험학습 대상을 5세부터 고등학생까지라고 보면 8만명 정도다. 한 사람이 3만원씩만 써도 24억원이란 돈을 에버랜드나 민속촌 등 외부에서 쓴다는 계산이 나오는 만큼, 이들 중 20%만이라도 유치하면 지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유치 방법 또한 평택문화원이 고심한 문제다. 당초에 많이 거론된 모델은 문화예술 창작촌이었다고 한다. 박 사무국장은 "문화예술 창작촌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경제적 부분이 해결되지 않아 행정기관에 손을 벌리게 되고, 갈수록 지원 근거가 희박해지는 사례를 많이 접했다"면서 "일반 시민과 어우러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복합 문화예술 체험공간'. 평택문화원은 도시형 폐교가 갖고 있는 이점을 극대화한 사업안으로 2006년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소외지역 주민 대상 생활친화적 문화공간 조성사업'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다. 사업비 9천만원 지원이 결정됐고, 이는 "시와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 도화선이 됐다"고 한다.

끝으로 박 사무국장은 "웃다리 풍물 자체가 충청·경기 지역을 포괄하는데, 웃다리문화촌을 수도권 문화체험 학습장을 대표하는 명소로 만들고 싶다"면서 "이제 미군기지 이전으로 바로 옆에 국제평화도시가 들어서는 만큼, 우리 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주한미군 등 다문화가족들이 꼭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로도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태그:#폐교, #웃다리, #평택,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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