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이 끝났다. 도덕적으로 큰 흠결이 있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유효투표의 과반에 가까운 득표를 함으로써 대선은 예상보다 훨씬 싱겁게 승부가 났다. 그러자 압승을 이유로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특검법’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우선 당선자가 20일 직접 나서서 “특검에서 무혐의로 나타나면 이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 책임져야 하다”고 발언했다. 당선자의 무게에 비춰볼 때 작은 압력이 아니다. 협박으로도 들릴 수 있다. 그러자 안상수 원내총무도 비슷한 발언을 하고, 강재섭 대표도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듭 요청했다. 가히 총공세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대한변협도 뜬금없이 ‘이명박 특검법’의 위헌여부를 논의한다며 가세해 기회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검법은 지난 12월 5일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의혹 등을 수사한 검찰의 발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12월 16일 한 동영상의 공개로 증폭되자 이명박 후보 스스로 한밤중에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법안을 수용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사안이다. 2000년 광운대에서 행한 강연을 녹화한 그 동영상에서 이명박 후보는 스스로 BBK를 설립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동영상의 공개로 그동안 “직접이든 간접이든 BBK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던 이명박 후보의 거짓말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검찰의 부실 편파수사에 대한 여론의 비난도 빗발치게 되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도 법무장관에게 검찰에 대한 재수사지휘권 발동여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바 있으며, 이는 국민의 60% 가량이 BBK 수사에 대한 검찰발표에 의혹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당연히 취했어야 할 조치였다. 어쨌든 이명박 후보는 한밤중에 특검법 수용을 밝힘으로써 다음날 거의 모든 조간신문이 짠 듯이 헤드라인을 “이명박 후보 특검법 수용”이라고 장식케 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신문과 거기에 동조한 다수의 신문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본질인 “BBK를 (내가) 설립했다”는 거짓말은 어디가고 특검법 수용이 마치 위대한 결단이나 되는 것처럼, 분위기는 이상하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이명박 당선자는 이회창 후보의 말을 빌자면 “미꾸라지처럼” 다시 빠져나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즉,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찜찜함을 갖고 있던 중, 그 스스로 BBK를 설립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결정적인 동영상이 공개되자 많은 국민이 분노하여 지지를 철회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의 전격적인 특검법 수용은 지지율의 하락을 막은 응급조치였던 것이다. 다수 지지 받았다고 의혹까지 덮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어쨌든 특검법 수용은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대선에서 표를 적게 받으면 수용하고, 많이 받으면 철회하고 하는 그런 조건부 약속이 아니었다. 국민들도 지지를 막 철회하려다가 ‘거리낄 것 없다’며 특검법을 수용하겠다는 발표를 보고 그럼 일단 그대로 가자는 생각을 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니 다수의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당선이 되었다는 것이 의혹까지 덮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착각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그러면 왜 특검을 통해 수사를 다시 해야 하나? 그것은 검찰수사가 너무나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60% 정도가 검찰수사를 곧이곧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를 입증하고 있다. 의혹이란 무언가 찜찜함이 남겨져있다는 것이다. 수사가 완벽하다면 의혹이 남겨질 수 없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그 수사는 제대로 된 수사다. 의혹이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이고, 어떤 새로운 사실에 대한 단서일 수 있다. 단서 하나로 많은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의혹, 즉 단서를 그대로 놔두고 수사를 마무리 할 수 있는가. 검찰이 국민을 우습게 알지 않는다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더 이상 대선압승을 이유로 이미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폐기시키려는 오만을 중단해야 한다. 무언가 켕기는 데가 있다는 의심을 살만한 일이다. 떳떳하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특검을 받아 의혹을 정리하고 가는 편이 한나라당으로서도 훨씬 유리한 일이다. 계속 특검법 폐기를 주장한다면 특검법 수용이 대선에서 일단 이기고 보자는 얄팍한 대국민 기만책이었음을 스스로 밝히는 것일 뿐이다. 통합신당 측에서도 이미 기세등등하게 통과시켜 놓은 법안을 선거에서 참패했다고 꼬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통과시킨 법안이다. 일부에서 사시안적으로 바라보듯 정략적으로 총선까지 가져가기 위해서 그랬는가. 좌고우면하지말고, 유불리를 계산하지 말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가를 두고 따져야 한다. 한나라당에서 얘기하는 “새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다” 류의 기만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통령이라도 잘못 있으면 조사받는다는 새 역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자체로 우리의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행여 오해 살 일을 해선 안 된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특검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가뜩이나 항간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이미 수용을 밝힌 것을 뒤집는 것은 큰 오점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현 대통령이든 후임 대통령이든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것도 대국민 약속이다. 그 약속을 안 지켜도 국민 모두가 수긍할만한 일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는 사람들이 약속을 할 이유도, 지켜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한국은 대통령도 거짓말하는 거짓말 공화국이라며, 국가신용도는 아마 서너단계 내려가지 않을까. 설마 그런 이유로 당장 신인도를 내리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 창피한 나라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특검법을 수용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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