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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가롭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회색빛으로 갈아입은 겨울 산사의 모습은 그렇게 정갈할 수가 없다. 군더더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개운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완벽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차분해진다.

 

연인 다정한
연인다정한 ⓒ 정기상

‘구족한 세상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로구나.’
이론적으로 구족한 세상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기는 처음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었으니, 구족한 세상이란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다. 고뇌의 바다를 어떻게 구족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겨울 산사의 모습은 구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양사. 겨울 산사는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다. 찾아오는 이를 모두 가슴에 안으면서 넉넉한 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우주를 포용하고 있었다. 산사에 발을 들여놓으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불국토여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350여년이 된 굴참나무의 모습이 그렇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란 나무를 바라보면서 구족한 얼굴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 질기고 힘들다고 생각하였었는데, 나무를 바라보니,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년륜 굴참 나무
년륜굴참 나무 ⓒ 정기상

아치형 나무다리 너머로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이 보인다. 색깔 없는 겨울 세상에 칼라로 빛나는 모습이었다.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이야 말로 세상이 얼마나 완벽한 것인지를 실감나게 해준다. 세상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놓고 모두에게 열어놓고 있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점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징검다리가 앙증맞다. 돌다리는 이어주고 있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요,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다리다. 닫고 있는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하게 해주는 다리다. 연결되어지는 과정에서 행복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다리는 행복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도구인 셈이다. 실제로 다리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돌다리 사이로 보이는 연못 속이 세상이 경이롭다. 그 곳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나무들이 춤을 추는 세상이요 쌍계루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 밖의 세상도 아름답지만 물속의 세상은 더욱 더 아름다웠다. 물 안의 세상의 멋진 모습에 취하다 보니,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또 다른 세상
또 다른세상 ⓒ 정기상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의 초록 앞에서 자연의 신비를 실감하게 된다. 산사의 모습은 무채색이다. 겨울이란 점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화룡점정이라고 하였던가? 무채색의 세상에 초록의 비자나무는 우뚝한 존재였다. 가라앉는 산사의 풍광을 되살려내는 마법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무엇인고?’, 화두 탑에 적혀 있는 화두다. 시심마. 세상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이기도 하고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느냐고 묻는 말일 수도 있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부정확함을 찾아가는 화두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화두 탑을 바라보면서 길을 찾아본다. 탑에 뿌리는 내린 식물의 모습이 그 답을 말해줄 것도 같다.

 

‘悲增普化示威靈(지혜를 더하여 널리 교화코자 위엄 있고 신령스러움을 보이셔서)’

산사를 찾게 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문구들이 있다. 건물의 기둥에 걸려 있는 글자들이다. 그러나 그 글자를 제대로 알 수가 없어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백양사에는 친절하게 해설을 해놓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확 뚫어주는 방편이 되었다. 궁금증을 해소하게 되니, 시방 삼세가 뚫리는 것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

 

초록 비자나무
초록비자나무 ⓒ 정기상

고향이 두 마리가 담장 위에서 졸고 있었다. 구족한 세상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욕심을 버리고 지금 이곳에서 깨어 있으면 그것이 바로 가장 현명한 삶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욕심이 넘치게 되면 물속의 세상처럼 허망하고 욕심을 비워내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설명 뚫리는 기분
설명뚫리는 기분 ⓒ 정기상

겨울 산사는 구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질없는 욕심으로 탐진치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물속의 세상처럼 허망함을 보여주고, 마음을 비우고 지혜로서 나누는 삶을 살게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겨울 산사의 구족한 얼굴은 바로 내 안에 있었다. 우주는 바로 내 안에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시잔은 전남 장선군 백샹사에서


#산사#구족#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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