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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폐교의 봄
우리 폐교의 봄 ⓒ 오창경

그렇게 공개 입찰을 통해 낙찰을 받게 되면 열흘 내에 낙찰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우리는 설마 그 노인네가 계약금을 내고 정말로 우리 폐교를 인수해서 사업장으로 활용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금을 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계약금을 내러 왔다가 들렀습니다. 한 달 이내에 잔금 치르고 나면 곧 수리를 들어갈테니 얼른 이사짐을 빼주세요. 이사짐을 다 안 빼면 잔금을 안 치르고 계약금 도로 찾아갈 겁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없는 거 아시죠?”

노인네는 우리 폐교를 찾아와 우리에게 점잖은 척, 법적으로 정통한 척 으름장을 놓고 갔다. 눈에 보이는 사기였지만 그들이 정말로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는 입증할 물증이 없었다.

대책도 없이 피 말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땅 속에서 물이 흥건하게 배어나와 차가 빠지는 운동장을 손봐서 자갈을 깔고, 둘째 아이를 등에 업고 교실 한 칸을 살림집으로 개조하며 전원에서의 꿈을 키웠던 날들이 폐교 살이 2년 만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삿짐보다 장을 담아 놓은 항아리들이 문제였다.

우리가 도저히 이사를 못할 조건이라는 것을 파악한 사기꾼 몇 명이 작당을 한 농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해야 하는 현실에 나는 분통이 터져서 홧병이 날 지경이었지만 남편은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 다녔다. 교육청 측에서도 다른 폐교가 있으니 우선 거기로 이사를 한 다음에 뒷일을 수습하라며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우리는 일단, 그들이 사기꾼임을 안 이상 폐교를 비워주고 그들이 정말로 입주를 할 것인지 지켜보기로 했다.

겨울 추위가 극성을 부리던 1월 중순 어느 날, 동네 농기계 창고 3군데에 이삿짐을 나눠서 넣어 두고 간단한 살림살이 몇 가지만 꾸려서 읍내의 아파트를 얻어 나왔다. 변호사에게 자문을 했더니 그런 경우 운동장의 항아리들까지는 치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는 지인의 말만 믿고 장항아리들만 남겨둔 채 동네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고 우리는 그렇게 폐교를 떠났다.

과연, 그 사기꾼 노인네는 우리가 운동장에 그대로 두고 온 항아리들을 치우지 않았다는 핑계로 잔금을 치르지 않은 채 교육청에 와서 난동을 부렸다. 실제로 우리 폐교가 맘에 들어서 살 사람이면 그런 식으로 해결을 할 것이 아니라 전 입주자인 우리와 협상을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 노인네는 우리에게는 항아리들을 치워달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사흘이 멀다하고 교육청에 찾아가서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행패를 부려댔다. 그 노인네의 목적은 우리 폐교가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계약금을 돌려받는 데 있음을 확인했고 그의 입으로도 그것을 시인했다.

결국은 그 계약금을 우리가 물어 주는 조건으로 협상을 한 끝에 우리가 다시 폐교로 들어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사기꾼들은 우리에게 얻은 것이 없었지만 우리는 생돈 천오백만원이 그냥 날아간 셈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아직도 건드리면 아프고 부끄러운 상처이기에 양가 부모님들은 물론 친한 지인들에게도 당시의 속내를 지금까지 한 마디도 털어 놓지 않았었다.  

공개 입찰의 허점을 이용해 우리를 곤란에 빠트리고 경제적 손실을 입힌 그 일당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저주하고 있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법망이 얼마나 허술하고 구멍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법 없이도 살 사람’ 이라는 칭송에 결코 자족해서는 안 되며, 내면적으로는 법률적인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우리처럼 눈뜨고도 코 베이는 일을 당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음을 자각해야 한다.

앞으로 폐교를 매각해 사업을 하거나 문화시설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그런 사기꾼 일당들에게 걸리지 않도록 관계 기관과 긴밀한 협조를 할 것이며 그 사기꾼들보다 법률적인 지식으로 우위에 있도록 많은 정보를 수집해 둘 것을 당부한다.


#폐교 #폐교 사기#폐교 매각#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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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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