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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축하합니다!"

중국에 있는 한 백화점 앞에 쓰인 문구였습니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굉장히 낯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하자마자 들었던 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때면 다들 어김없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축하합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낯설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낯설었던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로 사과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중국 친구들에게 사과를 받았습니다.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정성스럽게 비닐 포장까지 한 사과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먹으라고 주었다기보다 선물로 준 느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사과를 선물로 주어야 한다?

또 다른 친구들 역시 사과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과는 좀 달랐습니다. 처음 이 친구들이 선물을 주었을 때는 안이 보이지 않는 포장지로 포장을 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풀어보려고 하자 한 친구가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맞혀 보라고 합니다.

빨리 뜯고 싶었지만 친구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만져 보았습니다.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냄새도 맡아 보았습니다. 아 정말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향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중국 대학생들입니다. 그런 대학생들이 향수를 선물로 사 주기에 무리가 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생각한 것이 바로 사과였습니다. 보통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니 만져서는 알기 힘들지만 분명 안에 들은 것도 사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과죠?"

그래서 넘겨짚는 심정으로 '사과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네. 그런데 사과는 사과인데 먹을 수 없어요."

크리스마스에 사과 뿐 아니라 이런 사과 모양을 본뜬 선물을 주기도 한다.
▲ 중국 친구가 준 사과 모양의 양초 크리스마스에 사과 뿐 아니라 이런 사과 모양을 본뜬 선물을 주기도 한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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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과를 주었던 것입니다. 어, 그런데 사과는 사과인데 먹을 수 없다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포장지를 그대로 뜯어버리고 싶었습니다. 허나 정성스레 포장한 것인데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포장지를 풀어보았습니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네 개의 사과였습니다. 참 '별 것도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양초였습니다. 사과 모양으로 만들어진 양초가 네 개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양초까지 사과 모양으로 된 것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것을 보니 정말 궁금했습니다. 대체 왜 사과를 주는 것일까요? 아무튼 일단 고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대체 왜 크리스마스에 사과를 주는 것인가요?"
"왜냐하면 발음이 같기 때문이에요. 핑안이에(크리스마스 이브)와 핑구어(사과)에서 '핑' 발음이 같기 때문에 사과를 선물하는 거예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나 크리스마스에 사과를 선물하는 거죠."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듯 했습니다. 우리도 수능 보기 전에 '찰떡 같이 붙어라!'고 찰떡 사주고, '잘 푸라'고 휴지를 사 주지 않습니까.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이해가 갔습니다.

"그러면 엄마나 아빠도 아이들에게 사과를 주고 그래요?"
"음, 보통 나이 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대부분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죠."


그러고 보니 중국은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상가나 마트 등은 다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며 사람을 들뜨게 하곤 합니다. 역시 젊어서 그런지 중국 젊은이들도 이런 분위기에 잘 들뜨는 모양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과 먹었어요

그렇기 하지만 어쨌든 쉬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처럼 놀러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공휴일이 아닌지라 크리스마스에도 학교에 가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즐길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했어요?"
"사과 먹었어요."


다소 황당하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답변이었습니다. 선물로 사과를 주거니 받거니 한 게 끝이 아니라 먹기까지 했다니, 참 신기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과를 먹다니요!

"사과를 먹었다고요?"
"예. 사과를 먹었어요. 12시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날 넘어가는 순간 기숙사 학생들하고 같이 사과를 먹었어요."


이 역시 잘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국 대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제가 사는 주변 지역 대학교 기숙사들은 오후 11시가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그 전에 다들 기숙사로 돌아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나 크리스마스에 사과를 주고 받는다고 한다.
▲ 중국 친구들이 준 사과 중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나 크리스마스에 사과를 주고 받는다고 한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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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기숙사 방에 모여서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기숙사 친구들끼리 같이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 것입니다.

참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기숙사 학생들이 12시까지 기다렸다가 12시 '땡' 하는 순간에 사과를 베어 무는 모습, 재미있지 않습니까? 물론 다들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학생도 있고,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는 학생들도 있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중국에서 보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나 크리스마스에 '사과'를 선물로 주는 중국 대학생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사과를 선물로 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과하고 싶을 때 어떤 이들은 상대방에게 '사과'를 줍니다. '내 사과를 받아줘'라는 의미로 말입니다. 다소 썰렁하긴 하지만 자신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나름대로 적절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에 사과를 선물로 주는 것은 어떨까요

같은 과일이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록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이 작은 차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거, 그리고 노력하는 모습, 이런 것들을 통해 다른 문화에 대해 존중하려는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만약 제가 중국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과를 주고 받는 것을 몰랐다면 중국 친구가 주는 사과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나한테 뭐 미안한 거 있나?"

다들 들뜬 마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 중국 친구들을 통해 중국 대학생들이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을 주고 받는지, 왜 그 선물을 주고 받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제게는 더 뜻깊은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아, 여러분, 마지막으로 하나 건의하겠습니다. 중국 대학생들처럼 크리스마스에 사과 하나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 해 동안 상대방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 주었던 것들을 사과 한다는 의미에서도 괜찮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대화는 중국어로 했지만 편의상 우리나라 말로 올렸습니다.



태그:#중국,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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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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