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집 지붕 없는 집이다 해와 구름과 별과 달이 하늘을 가다가 지치면 잠시 쉬었다 가는 집이다 따스한 봄이면 동그란 알이 몇 개 햇볕에 익어가는 집이다 가끔씩 소나기가 내려 갓 태어난 어린것들의 목마름을 적셔주는 집이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집은 보이지 않고 빽빽한 나뭇잎 사이에서 소리만 흘러나오는 집이다 오늘은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그리운 편지가 온다고 이른 아침부터 식구들의 잠을 깨우는 집이다 기다리던 손님과 편지 대신 사납고 심술궂은 태풍이 몰려와 가로수들 여럿 넘어뜨렸어도 끄떡없이 버티는 집이다 퍼붓는 장맛비에도 넘치지 않고 지붕까지 차오른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짙푸른 가을 하늘에 남겨놓은 까치밥처럼 나무 꼭대기 우듬지 근처에 끝까지 매달려 있는 집이다 가랑잎들도 다 떨어진 초겨울 겨울잠 잘 자라고 자장가를 불러주다가 먼저 잠이 들어 고요해진 집이다 잠이 든 사이에 대륙을 건너가던 북서계절풍이 잠시 머물기도 하고 한밤중에 내려 쌓인 눈이 모처럼 환한 겨울 햇살에 속아 봄까지 기다리지 못한 채 뛰어내리기도 하는 집이다 그렇게 모두 떠나고 이제는 아무도 없는 빈 집이다 그 밑에서 서성거리며 가끔씩 고개 들어 위를 올려다보던 사내가 시린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떠나간 모든 이들을 대신해서 깊이 잠들어 있는 집이다 머지 않아 사내의 오랜 잠 속에 떠나간 꿈들을 다시 불러들여 함께 깨어날 집이다 이별 없는 집이다 <시작 노트> 기다리던 소식은 끝내 오지 않고 애꿎은 까치집만 들락날락거리는 세밑의 오후, 까치 대신 검은지빠귀 한 마리가 마당에 내려 앉아서 제 그림자를 쪼고 있다. 쪼아낸 그 자리에 싹이 돋아 꽃 피어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