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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드라마에는 <태왕사신기>의 화천회 대장로, <이산>의 정순왕후, 화완옹주, <쩐의 전쟁>의 마동포 등 개성 있는 악역들이 많이 출연했습니다. 그 까닭인지 2007년이 끝나가는 무렵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악역에 관한 기사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의 삶을 드라마나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있어서 악역은 누구였는지 말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잔소리를 하는 직장 상사였습니까? 아니면 <미녀는 괴로워> 한나의 경쟁자 아미처럼 남의 재능을 교묘하게 빼앗아 자기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그런 얌체 동료였습니까?

 

아, 생각하기도 전부터 짜증이 나신다고요? 그러면 질문을 살짝 바꾸어 보겠습니다.

 

2007년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한 '서태웅'은 누구였습니까?

 

“2007년,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한 경쟁자는 누구였습니까?”

 

‘무조건 밉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닌 ‘지고 싶지 않다’, ‘그를 능가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경쟁자 말입니다.  다소 막연한가요?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이 있었습니다.

 

이 만화책의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에 뛰어난 소질을 지녔지만 실력이 형편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같은 농구팀 선수 서태웅 이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서태웅은 강백호가 경쟁상대로 삼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본받아야 할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강백호는 그를 경쟁자로 생각합니다. 실력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지만 강백호는 서태웅을 넘어서고 싶어 합니다. 허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강백호는 서태웅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 만화를 보던 독자들이 강백호가 서태웅에게 졌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서태웅보다 훨씬 늦게 농구를 시작했지만 만화가 완결을 맺는 때에 이르러서는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그가 갖고 있던 타고난 점프력이나 농구 감각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의 곁에 늘 산처럼 버티고 서 있는 서태웅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때로 넋을 잃고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싫어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애정이 가고 때로는 가슴을 뛰게 하는 이런 경쟁자를 현실에서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지난 26일 ‘그’를 다시 만날 때까지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제가 ‘그’를 본 순간 찾아온 것은 ‘떨리는 가슴’이 아니라 ‘뜨겁게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다시 만난 '그'는 변해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를 다시 만난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것만 같았습니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그 기분에 어떻게 해야 할 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88만원 세대가 봐야 할 영화’, 한 포털 사이트 블로거가 쓴 이 글을 보러 들어가는 순간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글 때문이라기보다 ‘그’가 쓴 글이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그 블로거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2년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대학생 기자는 물론 인턴 기자로도 같이 활동했던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쓴 글을 보고 그 옆에 올라와 있는 얼굴을 보니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열등감에 깔려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지난 25일 크리스마스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 영화에서 정신과 여의사가 잠시 인기를 누리다 반짝 가수가 되어버려 정신병원에 입원한 가수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공부를 1등을 못해도, 운동을 1등을 못해도 그러려니 하고 편하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분한 마음이 든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열등감에 깔려 죽은 사람이 있다’라는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26일 포털사이트 블로그를 통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그’가 쓴 글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분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분하다기보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년 전 오마이뉴스에서 대학교 마지막 방학기간 동안 인턴을 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인턴 기간이 끝나고 가졌던 뒤풀이 자리에서 ‘그’가 모 영화전문잡지기자로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부러운 것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인턴이 끝나고 제가 중국으로 오면서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6일 우연히도 그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발걸음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그는 영화전문잡지기자에서 남성패션전문잡지기자로 화려한 변신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가 옮긴 바로 그 잡지사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즐겨 읽던 바로 그 잡지였습니다. 그 잡지사 기자들 글이 ‘맛깔난다’고 생각해 정기구독도 생각했던 잡지였습니다. 설날 한국에 잠시 다녀올 때 ‘한 권 쯤은 꼭 사와야지’ 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잡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잡지 속에서 이제는 한때 같이 인턴으로 일했던 ‘그’의 이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 두 눈으로 그 잡지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면 기쁘다기보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질 것만 같았습니다.

 

“야, 그거 기삿거리 안 된다니까!”

 

같이 인턴을 하던 시절 그가 제게 했던 말들이 생생합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도 ‘그거 기사로 적절하지 않아’라고 충고해줄 만큼 저보다 몇 걸음 정도 앞서 있었습니다. 분명 그 때는 ‘그’가 몇 걸음 앞서 걷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따라잡기 힘들 만큼 멀어졌다고 느낄 만큼 ‘그’는 뛰어가 버렸습니다. 그 멀게 느껴지는 거리만큼 제 마음에 때 아닌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스스로 쓴 글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들이 정식 기사로 채택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습니다. 과연 내 글에 발전이 있는 것일까? 예전과 비슷하게 썼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 다른 시민기자들은 저 멀리 앞선 감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글을 쓰는 실력이 진보하기는 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바로 ‘그’ 때문에, 아니 덕분에 제 자신에 대해 냉정히 재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그’가 쓴 글을 보고 왜 가슴이 답답해졌는지 명확해 진 것입니다. ‘그’는 저 멀리 앞서 가 있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정체해 있는 저를 보면서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전히 2년 전 그 모습 그대로인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 원망, 서운함 등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2년 전 오마이뉴스에서 인턴을 할 때 오연호 대표가 제게 그랬습니다.

 

“자네는 골 포착 능력은 뛰어난데 골결정력이 없어.”

 

그 때는 기쁜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골결정력’이라는 말보다 ‘골 포착 능력’에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골결정력은 향상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생나무 클리닉에서 생나무 닥터가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항상 재치가 번뜩이는 양중모 기자님’

 

이 말을 보는 순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치’는 번뜩일 지 모르지만 여전히 난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를 만나 슬펐던 감정은 이제 ‘뛰는 가슴’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MBC 의학 드라마 <뉴하트>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공자님 말씀에 무식한 것을 알면 곧 유식하다고 했는데.”

 

무식하면서도 무식한 것조차 모르는 이가 참 많은 세상이니, 무식하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저 역시 한동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 부족한 점을 모르는 그 무리에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실력이 이토록 부족한데 그것을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걸려 이제야 깨달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되었습니다. 분명 더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할 것이고, 더 많이 배우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열등감에 깔려 죽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기는 정말 싫으니까요!

 

그리고 제게는 <슬램덩크> 강백호의 경쟁자 서태웅처럼 제 가슴을 뛰게 해주는 바로 ‘그’가 있으니까요. 2007년 끝자락에 만난 제 가슴을 뛰게 해주는 경쟁자, 여러분에게 2007년 한해 동안 가슴을 뛰게 해주었던 그런 경쟁자를 만나셨습니까?

 

덧붙이는 글 | 그가 쓴 글을 읽고 있으면 늘 더 배우고 더 많이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태그:#경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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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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