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남편의 출장준비물을 챙기느라 동네 쇼핑센터에 있는 자그마한 속옷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고 나오려다가 출장지가 우리나라 계절과 비슷한 서유럽 쪽이라 혹시 춥지 않을까 싶어서 “남성용 내복 중 얇고 착용감이 좋은 거 있나요~?” 했더니 주인아주머닌 요즘 반응이 좋은 상품이라며 얄팍한 내복 상자를 열어 보인다. 만져보니 촉감도 좋고 신축성도 뛰어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남편이 한겨울에도 내복을 입질 않는데 집 떠나 추위에 떨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움에 사려 해도 가지고 갈지 모르겠다며 망설였더니 그러면 돈은 나중에 주고 일단 가져가서 보여드리고 필요하면 그 때 계산을 하란다. 그리고 내복이 싫다고 하시면 타이즈는 어떨지 몰라서 넣었다며 5만원 상당의 내복 한 벌과 남성용 타이즈가 든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받아들고 집으로 가다가 생각을 하니 어디에 사는지도 연락처도 모르는데 그냥 이렇게 가져가도 되는 걸까~? 외상으로 물건을 준 사람보다도 내가 더 마음이 편질 않아 가던 발길을 돌려 다시 그 가게로 가 연락처를 적어 드릴 테니 메모지 좀 달라고 했다. 주인아주머닌 괜찮다며 그냥 가라고 하기에 적어 드리고 가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런다니까 그제서야 메모지와 볼펜을 내어 주었다. 동, 호수와 집 전화번호 그리고 핸드폰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내미니 어색한 듯 받아보면서 “여기 사시는 분들은 다들 약속을 잘 지키기 때문에 이런 거 받아 놓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규모도 작은 가게, 하루 매상이 얼마나 된다고 잘 알지고 못하는 내게 적지 않는 금액의 물건을 선뜻 내어주는 것일까~? 자칫 손해를 볼 수도 있을 텐데…. 아주머니의 넓고도 커다란 마음 씀씀이에서 남다른 장사수완이 엿보였다.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내복을 꺼내 보이며 혹시 추울지 몰라 샀다 했더니 예상대로 여태 입지 않던 내복을 뭘 가져 가냐고 했다. 그래도 유비무환이라고 부피도 적으니 챙겨 넣으라고 하니 더 이상 마다하질 않는다. 다음날 내복 값을 계산하러 갔다가 아주머니의 감동서비스에 꼭 필요치도 않은 저렴한 가격의 민소매옷 두 벌을 샀다. 그리고 그 이후론 작은 것 하나라도 팔아드리기 위해 일부러 그 가게를 찾곤 하는데 갈 때마다 친절을 덤으로 얹어주시는 아주머니 덕에 가게를 나설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고새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강남의 아파트처럼 투자가치는 별로 없지만 대부분이 실수요자인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이란 소박한 의미와 사는데 불편이 없다는 것 외엔 사실 특별한 애착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남편 속옷을 사기 위해 우연히 들렀던 상점에서 주인아주머니의 친절과 주민들에 대한 평을 듣고 나니 우리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아파트하면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주거 공간이란 선입견은 필자 역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항상 예외는 존재하는 법, 그 틀을 깨고 인심 좋고 거짓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값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서로 믿고 사는 살기 좋은 곳'이 바로 우리 동네였다. 더욱이 전국 각지에서 등산객들이 찾아드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인 도봉산이 인접해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것처럼 나 또한 한 몫을 해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이 배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제부터라도 솔선수범하는 주민이 되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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