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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70주년 금강혼식 앞둔 유진정·이삼수 부부
결혼 70주년 금강혼식 앞둔 유진정·이삼수 부부 ⓒ 백승태

"다 늙었는데 무슨 소원이 있겠나. 큰 병 없이 살다가 자는 잠에 가는 것이 소원이지. 단지 욕심이 있다면 할멈과 같은 날 죽는 게 바람인데 어디 그게 맘대로 되나."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回婚禮)를 치른 후 또 10년. 결혼생활 70주년을 맞이해 금강혼식(음력 10월 27일)을 앞둔 노부부가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거제시 둔덕면 하둔리 유진정(95) 할아버지와 이삼수(89) 할머니 부부. 거제시 최고의 '장수 커플'이다.

이혼이 결혼만큼이나 흔해진 요즘 세상, 70년이란 긴 인생길을 동행해 온 비결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 사고방식, 절제된 생활이 원동력이다.

장수 비결은 묻는 말에 유 할아버지는 "나도 모른다. 몸에 좋다는 것 먹어본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다. 지금까지 살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다만,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을 즐긴다"고 말했다.

게다가 병적일 정도로 좋아하는 음악이 취미요, 매일이다시피 소주 1병을 거뜬히 해치울 정도로 주당인 것이 특기다.(기자가 취재차 유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서니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고, 취재 도중 복분자 술을 내놓고 의무적으로 비워야 한다며 석 잔을 거푸 권했다.) 그래서 당연히 보물 1호는 카세트테이프며 2호는 소주다.

할아버지 부부는 들판과 산이 흔히 내다보이는 거실에서 심청전 등 고전음악이나 트로트음악을 감상하며 소주를 즐기는 것이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다. 할머니는 옆에 앉아 빙그레 미소만 짓는다. 음악소리 때문에 전화벨을 못 듣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별 상관없다.

할머니는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샐 줄 모른다더니 60살이 넘어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매일 소주 1병 가량을 마신다"며 "건강이 걱정되지만 이제는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는 것이 건강에 더 이롭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1938년 10월 27일(양력으로 12월 5일) 혼례를 올릴 당시 유 할아버지의 나이는 24세, 이 할머니는 18세였다. 당시 풍습이 그랬듯이 양가 어른들의 명령에 따라 얼굴 한번 보고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유 할아버지는 "지금은 할망구가 됐지만 그때는 그런 대로 팽팽하고 괜찮았지. 다시 태어나도 부부가 될 것 같다"며 무뚝뚝하지만 정이 듬뿍 담긴 속내를 드러냈다.

이어 "할망구가 둘째 아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총기가 떨어졌다"며 "오늘도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지 않고 냄비다 해 말다툼을 벌였지만 이렇게 같이 살다가 누구 하나 먼저 죽게 되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지 눈앞이 깜깜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 딸 손자들이 자주 찾아와 줘 고맙고, 공무원인 사위 둘 다 국장으로 승진해 기쁘다"며 "할망구와 같이 노래 듣고 소주 마시면서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내는 걸 보고 큰 병 없이 지내다 죽기만을 기다린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작은 귤 3개를 들려주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대문 밖까지 나와 배웅하며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넉넉한 시골 인심을 보여줬다.

덧붙이는 글 | 거제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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