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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은 대학 선배인 A형이 불의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1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며칠 후 있을 10주기 추모식을 위해 모아온 'ㄱ'형의 자료를 최근에서야 들춰보았습니다.

그중 눈에 띄는 하나가 18년 전(1989년 10월) 군사법원의 판결문입니다. 얼마 전 육군고등검찰부에서 떼온 것입니다.

 

판결문 첫 페이지에 '피고인을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에 처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미 A형이 당시 군 복무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교도소 신세를 진 사실을 알고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20여 쪽의 판결문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A형의 행위라는 게 북한 관련 책을 서점에서 구입해 읽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책 7권을 구입해 부대 내로 반입, 캐비넷 속에 보관하며 수시로 탐독했다는 혐의였습니다. A형에게는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소지, 취득'(국가보안법 7조 5항) 혐의가 적용, 인정됐습니다.

 

"사전검열 얻어 반입... 그래도 이적표현물 소지, 취득혐의 인정" 

 

불온서적이라는 것도 국내 출판사에서 출간된 역사서인 <조선전사> 및 <북한의 사상>, 북한 소설 등입니다.

 

A형의 누나는 "당시 군 부대에서 사전검열을 거친 후 허가를 얻어 반입된 책이었다"며 "뒤늦게 이를 문제삼아 남동생을 구속한 것을 보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A형은 또 검찰 조사 및 재판과정에서 "주한미군이 전쟁억제 효과보다는 긴장 유발의 원인이 될 수 있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철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힙니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은 "이는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의 선전활동에 동조해 그들을 이롭게 한 행위'라며 반국가단체단체 찬양, 고무죄(국가보안법 7조 1항)를 적용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북한이나 사회현상을 보는 개인적 의견을 묻고 북한 측 주장과 견해가 흡사하다는 이유로 찬양, 고무죄로 처벌한 것입니다. 머릿속 생각이 처벌대상이 된 것입니다.

 

다행히 군 검찰도 스스로 황당한 처벌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이 북한 주장과 닮았네... 반국가단체단체 찬양, 고무죄"

 

A형의 누나에 따르면 "판결 직후 담당검사가 직접 전화를 해와 '정말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과했다"고 합니다.    

 

18년이 지난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지난 해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 전체에 평화의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은 해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통계에 의하면 지난 해에만 149명이 양심수가 구속됐고 이중 17명에게 국가보안법이 적용됐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5년동안 1160명의 양심수가 양산됐고 이중 국가보안법 적용자만 157명(13.5%)에 달합니다.

 

A형이 판결을 받은 이후인 90년 이후 현재까지 4317명(김영삼 정부 1989명, 김대중 정부1058명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습니다.
 

보안법 구속자, 참여정부 157명, 19년동안 4317명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의사표현에 자의적 잣대를 강요하고 있다는 근거도 차고 넘칩니다.

 

강순정, 정수평씨 경우 국가기밀을 빼돌렸다며 간첩 사건으로 구속됐다 지난 해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강씨의 경우 중국 한나라 사신이 고향이 그리워 쓴 '소무목양'이라는 한시를 글에 인용한 것까지 '이적표현물' 혐의를 받았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이 생전에 좋아했던 시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넷 카페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대해서까지 작성자의 의도나 목적에 상관없이 '이적표현물'로 단정, 처벌하고 있는 것도 최근의 이야기입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천명하고 있는 헌법 위에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군림하고 있는 셈입니다.

 

올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남북 분단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보안법보다 헌법정신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조선일보>의 초심 "국가보안법 단호히 반대" 

 

돌이켜보면 <조선일보>도 국가보안법 제정당시 이 법안에 반대입장을 밝혔습니다.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이 제정 공포되자 <조선>은 "방금 국회에 상정된 국가보안법은 광범하게 정치범 내지 사상범을 만들어 낼 성질의 법안인 점에서 우리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늦었지만 <조선>이 60년 전 초심을 소중히 돌이켜 보는 한 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한나라당을 비롯 정치권 모두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표현을 침해하는 법 손질에 적극 나서기를 희망합니다.


태그:#국가보안법, #60주년 , #찬양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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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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