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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최장집 교수와 함께 <어떤 민주주의인가>라는 책을 펴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스타일과 레토릭만으로 이명박 정부를 '신'세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최장집 교수와 함께 <어떤 민주주의인가>라는 책을 펴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스타일과 레토릭만으로 이명박 정부를 '신'세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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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를 과연 '신보수파 정부'의 등장으로 볼 수 있을까?

정당체제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에 천착해 온 '최장집 사단'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명박 정부는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기초한 보수정부"라며 "'신'보수정부라고 할 만큼 (올드라이트에 비해) 새로운 내용을 구체화한 게 없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지난해 최장집 교수와 함께 <어떤 민주주인가?>라는 책을 펴냈던 박 대표는 "스타일과 레토릭만으로 '신'세력이라 말하기는 어렵다"며 "이명박 정부가 (다른 보수파 정부와) 좀 다르다면 기득권 집단에 젊은 선진 엘리트를 결합하고 있는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명박의 실용주의는 그 모호함으로 책임추궁의 압박도 커질 것"

박상훈 대표는 지난 12월 27일 2시간여에 걸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보수정부가 안정적으로 체제를 관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민주화 혁명과 신자유주의세계화의 충격을 경험한 20~40대 유권자들이 매우 강한 변화지향성을 갖고 있는데다 보수정부의 기반세력들이 무능력하고 이념적으로 개방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이념적 내용이라곤 '오로지 경제'라는 것 정도"라며 "경제가 모든 체제의 운영원리를 압도할 때 그것은 일종의 경제전체주의로 퇴락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대표는 "자기 유권자들이 안정적 기반을 보여준 게 아니라는 점에서 보수파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려워해야 한다"며 "보수진영은 20년 전의 민주화와 10년 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거시적 충격을 관리할 만한 유연성과 실력이 없어 한국의 유권자들은 곧 이명박 당선자를 거칠게 다룰 준비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명박 당선자측에서 내세운 실용은 무얼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당장은 부정적 이미지가 중첩되지 않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모호함 때문에 책임추궁의 압박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박 대표는 진보개혁진영을 향해 "패배한 이유를 반성적으로 살펴야지 유권자가 보수화됐다며 유권자와 한국정치를 개탄해서는 안된다"며 "특히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두려움을 동원하려는 심리구조를 갖고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려 하거나 이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것은 곤란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개혁적 정조(情調])를 동원하면서 실제 사회경제적 정책의 영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가 될 수 있도록 정당화해준 정부였다"고 비판한 뒤 "신자유주의 개혁파와 다른, 노동의 이해와 열정에 기초를 둔 진보파의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것이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과제"라며 "노무현 정부의 경험과 이번 대선은 이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민주노동당의 위기와 관련 "표의 크기로만 보면 이번 대선 결과는 지지자가 민노당의 해산을 평결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런데도 책임을 져야 할 지도부와 정파가 책임을 안 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지) 대중의 요구는 민노당의 세대교체였는데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서 정파가 자신의 이해관계로 선거결과를 왜곡시켰다"며 "현재 민노당은 변화나 혁신을 할 수 없도록 구조화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의 (정파)구조를 깰 만한 강한 리더가 등장해야 한다"며 "지역구에서 당선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리더가 향후 민노당을 관장할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당내 정치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민주적 에너지가 민노당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이 만들어질 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

다음은 박상훈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

"이명박 정부는 기득권 이익에 기초한 보수정부"

- 이명박 당선자의 리더십을 어떻게 예상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정치지도자로서 이 당선자의 개성적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다. 다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하고,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등 선거과정에서 사회적 요구에 반응하는 태도나, 젊은 신진 엘리트들을 선거에서 앞세우는 것을 보면서 지도자로서 기본은 돼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테스트를 받지 못했다. 이들의 리더십이나 실력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이명박 체제가 안정화될 수 있는가 하는 더 큰 문제에 대해 말하라면 여전히 난 회의적이다."

- 이명박 정부를 ‘이념을 넘어선 실용정권’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한가?
"적절하지 않다. (이명박 측에서 내세운) 실용은 무얼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실용은 노무현 정부나 한나라당 구세력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안 하겠다는 기준에 의해 정의되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노무현 정부는 말이 앞선다, 이념적이다, 보수파정부는 완고하다 등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걸 안 하겠다는 정도이다.

당장은 부정적 이미지가 중첩되지 않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모호함 때문에 책임 추궁의 압박도 커질 것이다. 기본적으로 실용을 얘기하려면 굉장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쪽과 저쪽을 다 만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좁은 경로에서 줄타기를 해야 할 텐데, 그 줄타기는 언제든지 실족할 수 있다. 그 순간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1일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2008년도 시무식에 입장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1일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2008년도 시무식에 입장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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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나?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기초한 보수정부다. '신'보수정부도 아니다. '신'자를 붙일 만큼 (올드에 비해) 새로운 내용을 구체화한 게 없다. 그러니 '신보수'라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스타일과 레토릭만으로 '신'세력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중심세력은 우리 사회의 상층, 기득권집단이다. 좀 달라졌다면 거기에 젊은 신진 엘리트를 결합하고 있다는 정도다. 그런데 인수위 구성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인 것 같다. 세대교체도 아니다.

사실 새롭다고 이야기되는 측면도 잘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6년 선거에서 신한국당은 세대교체, 인물교체를 많이 했다. 언론인, 법률가, 국책연구기관 등의 전문가 등을 꾸준히 영입했다. 해외유학파도 많이 들어갔다. 이렇게 충원을 계속 했다. 2004년에도 교체를 많이 했다. 그런 정도의 변화는 이미 있어왔다."

-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개헌이 가능한 과반 의석 수를 얻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그 예상이 현실화된다면 한나라당 독재, 이명박 독재시대가 열린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 가능성은 제로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어느 누구도 독점이 안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87년체제를 설명할 때 하는 얘기인데, 보수세력이 기업·학교·대학·언론·관료 등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 반대편도 그에 저항할 수 있는 에너지와 조건은 갖고 있다. 1990년 3당 합당이 이루어지자 곧바로 이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조직되었다. 5월정국, 분신정국은 이때의 양상을 가리키는 용어들이다. 3당 합당으로 집권당이 70% 이상을 독점했지만 사회적 저항을 거치면서 1992년 선거에서는 다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일당우위체제의 가능성은 한국정치의 기본 구조가 변화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기에 다당체제와 양당체제의 순환적 반복 과정에서 일당우위체제의 시도는 늘 좌절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도 나올 수 있었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대선에 뛰어들어 정치를 유동적으로 만들었다.

사실 지금 구도에서도 한나라당이 의석을 독점하게 된다 하다라도 한나라당의 안정적 관리나 유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등장이 보여준 확실한 지표는 보수가 분당이 되어도 독자생존이 가능한 사회적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세력이든 누구든 그 지표를 확실히 기억할 것이다. 한국 정당체제의 좌-우 어느 측면을 보아도 안정적 일당우위체제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명박 정부가 안정화될 수 없는 이유

- 10년 만에 보수파로 정권이 교체됐는데,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민주주의의 첫 번째 단계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형태는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야당이 집권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등장으로 첫 번째 단계는 형성됐다. 권위주의 대체세력이 집권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두 번째 단계는 구권위주의세력이 민주적 방법으로 권력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번 결과는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전환적 모멘트였다. 영국이나 미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들에서 이 과정은 파시즘을 동반하면서 폭력적으로 진행되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좋은 조건 아래에서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두 번의 거시적 충격 위에 서 있다. 하나는 20년 전의 민주화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격이다. 지금 20~40대의 유권자는 이런 거시 변화가 만들어낸 유권자들이다. 이들은 매우 강한 변화지향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로 시작되게 될 향후 보수정부는 안정적으로 체제를 관리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유권자의 조건도 그렇지만, 그들은 무능력하고, 이념적으로 개방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보수정부의 기반이 될 두 세력 즉, 국가 안 경제관료들과 국가 밖 재벌 등 기득집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은 많은 사람들이 유능하다고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무능력을 그 기본 특징으로 한다. 그들은 정치변화로부터 자율적인 경제관리 능력을 보여준 바가 없다. 70년대 말 한국을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끌었고, IMF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을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던 존재들이다. 그들은 군부권위주의에 기생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스스로의 직업정신을 조직하려 하기보다 재벌과 외국자본, 거대 로펌의 이익을 실현해주면서 자기이익을 챙겼다.

국가 밖 보수세력들도 마찬가지다. 재벌 역시 무능력하다. 최근 삼성의 사례가 보여주듯 그들은 공정한 시장경쟁에서 성공했다기보다 불법로비와 부정한 방법으로 일관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합리화의 전망조차 세울 수 없다. 거대 사학집단이나 거대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는 힘의 원천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인 억지들이다. 유능함과 무능함의 기준은 외부 영향력의 개입없이 공정한 게임에서 스스로의 에너지만으로 성공하는 것일텐데 한국의 보수세력에겐 그런 실력이 없다.

이들에게 실력이 있다면 이념적으로 개방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안 되니 사회를 폭넓게 통할할 수 있는 의식적 계기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안팎의 빠른 사회변화에 대응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이념적 개방성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들의 언어에는 새로운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한국 유권자의 보수화와 정당체제의 보수안정화를 말하는 예측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정치는 보수정부 아래에서도 여전히 불안정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기회는 많다고 본다.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요구를 어떻게 재조직하느냐에 따라 한국정치의 변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유권자는 충분히 준비돼 있다. 정치세력이 거기에 반응할 만한 조직이 안돼 있어 문제다."

- 이명박 정부의 안정화에 부정적인데 그 반대의견도 있다. 즉,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것이라는 의견이다. 
"지도자와 정치세력이 유능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조건이나 정치세력의 차원에서 볼 때 한국정치를 그들의 생각대로 재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념적으로 개방적일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이념적 내용이라곤 '오로지 경제'라는 것 정도다. 경제가 모든 체제의 운영원리를 압도할 때, 그것은 일종의 경제제국주의이고 경제전체주의로 퇴락하기 쉽다. 당연히 다양한 사회갈등은 표출되기 어렵다. 갈등이 표출되고 드러나고 경쟁하는 조건 위에서만 안정적 사회통합은 가능하다.

이것은 민주주의에서의 일종의 물리학적 법칙과 같은 것이다. 사회구성원의 열망을 경제바로세우기라는 하나의 목표로 응집해낼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를 거부하지 않는 한 현실적이지 않다. 다시 말하건대, 이념적으로 개방적이지 못하면 자율적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그러면 어떤 체제도 안정화될 수 없다. 지금 한국사회 보수세력 어디를 둘러봐도 그럴 실력을 느낄 수 없다."

 박상훈 대표는 지난해 스승인 최장집 교수, 박찬표 교수(목포대) 등과 함께 <어떤 민주주주인가>라는 책을 펴내 호평을 받았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지난해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바 있다.
 박상훈 대표는 지난해 스승인 최장집 교수, 박찬표 교수(목포대) 등과 함께 <어떤 민주주주인가>라는 책을 펴내 호평을 받았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지난해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바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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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파도 이번 선거결과를 두려워해야"

- 보수진영은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계기로 '5년 이상의 집권'을 도모하려는 것 같다.
"그러려면 행위자들(players)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수많은 로드맵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바람만으로 미래를 설계한다고 실현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비현실에 기초를 두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역사를 움직이는 건, 잘 디자인되지 않는 사회구성원들의 갈등적 에너지다.

지식인들이나 엘리트들이 마치 역사발전이나 변화를 전망하는 데 선지자적 능력이 있는 듯 사회를 공학적으로 디자인하려 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특히 심했다. 로드맵 정치, 보고서 정치라고 부를 만한 정치양상을 보였다. 정치에서의 계획은 사회적 에너지와 병행할 때만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 역시 장기 집권 비전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실력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보수파들은 이번 선거결과를 두려워해야 한다. 자기 유권자들이 안정적 기반을 보여준 게 아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지금부터 심각한 시련에 처할 것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이명박 당선자를 심하게 다룰 것이다. 보수진영은 20년 전의 민주화와 10년 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시적 충격을 관리할 만한 유연성과 실력이 없다. 유권자들은 곧 이 당선자를 거칠 게 다룰 준비를 할 것이다.

민주파들이 여러 측면에서 타락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지만, 중요한 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의미의 '민주주의 진지전'을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은 됐다. 국가와 시민사회 등 여러 곳에서 이명박 정부는 (자기)세력을 복원하려 할 것이다. 이에 대응해 여러 차원과 영역에서 항의를 조직할 수 있는 상황은 되었다.

국가를 운영해 보는 경험을 하기 전에 국가를 유능하게 통제하기는 어렵다. 민주파들에게 지난 10년간의 국가경영은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조건은 10년 전보다 훨씬 좋다. 국가, 정치사회, 시민사회 등에서 진지전을 통해 세력을 재구축하는 것이 민주파에게 남겨진 과제다.

한국의 유권자는 결과를 빨리 얻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형성에서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의 충격을 겪은 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거의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기대는 굉장히 조급하고 적극적이다. 이들의 기대에 제때 부응하지 못하면 유권자는 언제든지 이명박 정부에 곧바로 반응하게 되어 있다."

"민노당 경선을 지배한 것은 특정 정파의 힘"

- 지난 2004년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출했던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에서 참패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민주노동당도 지난 2004년 4월 총선 이후에 기대한 만큼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원내 정당이 되면서 체제 밖 정당의 이점이 사라진 것이다. 이때부터 유권자는 기존 정당체제에 대한 불만 때문에 관용하지 않는다. 철저히 그 성과와 업적에 따라 냉정하게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다.

민주노동당 역시 유권자의 요구에 반응하지 못했다. 결국 민주노동당 지지자 역시 표를 통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택했다. 2006년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조차 하지 않은 게 민주노동당이다. 유권자들의 문제제기에 응답하거나 반응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당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지도부와 당내에서 실제 영향력을 가진 세력(정파)이 책임져야 하는데 책임을 안 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정파는 가시화되지 않는 권력으로 작용했다. 이번 선거는 당내 민주주의의 약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경선을 지배한 것은 당원 대중들의 의사가 아니라, (특정)정파였다. 정파의 영향력에 편승한 권영길 후보 개인의 욕구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경선 결과를 보이지 않게 주도한 것은 보이지 않는 정파의 힘이었다. 이런 경선 결과를 가지고 잘 되길 바라는 건 이상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일부러 투표하지 않았다고 본다. 표를 몰아주면 책임을 어물쩡 넘기려고 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표를 던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원내 정당이 되었는데도 25만표나 지지가 줄어든다는 것은 설명이 안 된다.

표의 크기로만 보면, (이번 대선결과는) 지지자가 민주노동당의 해산을 평결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유권자가 (민주노동당을) 버린 것이다. 원내정당 이전보다 표를 못 받았다는 것은 정당이 필요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집권파가 이 정도의 책임의식을 안 갖는다면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 세대교체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 아닌가?
"그것(세대교체)이 대중의 요구인데 정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로 선거결과를 왜곡시켰다.  노베르토 보비오(Noberto Bobbio)는 현대 대의제민주주의에서 큰 위협은 보이지 않는 권력(invisible power)이라고 했다. 권력은 드러나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당은 공적 권력이다. 당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실제로는 가시화되어 책임을 지지 않고, 경선 결과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낸다면 민주주의를 할 필요가 없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당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은 걸 철저하게 문제 삼았다고 본다.”

"민노당, 지금의 정파구조를 깰 만한 지도부가 등장해야"

-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앞세운 신당 창당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냉정하게 얘기하면 민주노동당은 변화나 혁신을 할 수 없도록 구조화돼 있다. 이것이 문제지 이념을 사회민주주의로 하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신당론이 나오고 있는 배경 역시 당내 혁신이 어려운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당내 (의사)결정구조가 변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에 누구를 앉히든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오면 정파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보타지할 것이다. 지금 구조에서는 방법이 별로 없다.

지금의 구조를 깰 만한 지도부가 등장해야 한다. 현대 정당론의 마지막 이론을 만든 사람이라고 불리는 안젤로 파네비앙코(Angelo Panebianco)는 정당과 정당체제의 변화를 분석하면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내 결정구조를 제 아무리 잘 제도화한다 해도 유능한 리더가 등장할 수 있어야 하고 그가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은 강한 리더가 필요하다. 강한 리더는 당 안팎에서 강한 대중적 기반을 가져야 의사결정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지금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를 돌파하는 후보여야 한다. 비례대표 의원은 당을 압도할 힘이 없다. 지역구에서 당선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리더가 향후 민주노동당을 관장할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요컨대 민주노동당은 당내 정치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민주적 에너지가 민주노동당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이 만들어질 때 변화가 가능하다. 지금 이야기되는 비대위 체제는 현행 지도부와 집권 정파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제안한 것이라 본다. 책임을 지려면 일단 왜 패배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조직해야 하고 그에 기초해 책임의 방법이 논의되는 순서를 가져야 했다. 아무도 발언하지 않고 있다가, 사퇴와 비대위 위임을 던져놓고 뒤로 빠지는 것은 잘못이다. 민주노동당의 혼란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민노당, 고학력 도시 화이트칼라 중심 정당에 머물러선 안돼"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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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장집 교수와 함께 쓴 저서 <어떤 민주주인가?>에서 '새로운 정당이 나와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분화를 전제로 한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아직 (한국)정당체제의 특징을 규정하는 정당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없이도 한국정치를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주노동당은 한국정치를 설명하는 독자적 변수가 아직 아니라는 얘기다. 대통합민주신당도 정당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음악)밴드처럼 선거용 프로젝트 정당이다. 당연히 지금처럼 유지될 수도, 되어서도 안된다고 본다.

(정당체제를 규정하는 하나의 정당이 되려면) 사회적 기반, 그것을 조직할 수 있는 이념, 그리고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조직화된 (정치)엘리트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당은 지금의 정당체제에 충격을 부과하면서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또 한번의 전환의 계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의 핵심 내용은 새로운 유형의 정당의 출현이다. 지금처럼 제도권 내 세력들의 재편만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사회적 에너지와 결합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결국 '하층동원에 의한 정당체제 재편'의 내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이나 경로는 잘 판단하기 어렵다. 앞으로 정당체제는 계속해서 분화할 것인 바 그 과정에서 현실적인 경로가 드러나길 바랄 뿐이다."

- 뉴라이트진영에서는 진보진영에서 '뉴레프트'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레프트가 성립하려면 (먼저) 레프트의 형성이 있어야 한다. 뉴라이트에서 얘기하는 뉴레프트는 지금의 진보세력을 구좌파라며 공격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데올로기 문제 제기 이상이 아니고 현실과는 다르다고 본다. 아무튼 지금의 민주노동당이 고학력, 도시 화이트칼라 중심의 정당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다수의 가난한 서민대중에 기초를 둘 수 있을 때까지 뉴레프트라는 용어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박상훈#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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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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