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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이브에 불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신년 이브에 불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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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더 빠르게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세월이 마치 화장실 휴지와 같아서 끝으로 가면 갈수록 더 빨리 돌아가는 것 때문이라고 하던데….

어느새 2007년 한 해가 다 지고 신년이 밝았다. 이상하게 나이가 먹을수록 어린 시절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워지는 것 같다. 새 친구보다 옛 친구가 자꾸 생각나고 음식도 낯선 산해진미보다는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시던 집밥이 더 그립다.

현재 외국에 살고 있어서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우리 가족 나름대로 명절을 쇠던 방법도 때가 되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월남하셔서 우리 가족에게는 명절이라도 돌아갈 고향이 없었지만 아버지 고향인 평안도 음식을 해먹으며 단촐하지만 즐거운 신년을 보냈다.

이때 심심풀이로 토정비결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따로 토정비결책을 샀던 것은 아니고 엄마가 구입한 새 가계부 뒤에 토정비결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토정비결에 나와 있는 운세를 심각하게 믿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으면 어김없이 손이 가곤 했었다. 틀린 미래라도 미래를 한 번 예측해보고 싶은 것은 나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틀어 모든 인간의 공통된 호기심인 것 같다.

결혼 앞둔 여성에게 해당하는 사우나점·돼지점·거울점

미래를 점치는 스베트라나.
 미래를 점치는 스베트라나.
ⓒ 카를 브률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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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도 예로부터 신년과 관련된 여러 미신이 있었다.

"신년 첫날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그해 풍년을 예고한다."
"신년 첫날 첫 손님이 남자면 좋은 해가 될 것이고 여자 손님이면 불운한 해가 될 것이다."
"신년 첫날에 늦잠을 자면 1년 내내 잠만 자게 될 것이고 신년에 일찍 일어나면 1년 내내 빨리 일어나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신년 첫날에 아이들이 야단을 안 맞으면 1년 내내 야단맞을 짓을 안 한다." 

이밖에도 핀란드에는 '사우나점', '돼지점', '거울점', '말편자점' 등 다양한 신년 운세 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우나점, 돼지점, 거울점의 공통점은 모두 결혼을 앞둔 여성들에게 해당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사우나점은 새해 첫날 사우나를 하고 나서 사우나에서 몸을 마사지하는 데 사용한 자작나무 가지로 만든 다발(핀란드어로 vihta)을 사우나 천정에 던져 떨어진 모양으로 결혼운을 점친다. 만약 그 다발 손잡이 부분이 집 밖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떨어지면 그 해 결혼을 하게 된다고 믿었다.

돼지점은 새해 첫날 돼지에게 가서 처녀가 "올해는 결혼할 것 같습니까"라고 정중하게 물을 때, 돼지가 딱 한번만 "꿀"이란 소리를 내야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아무 대답이 없거나 두 번 이상 '꿀꿀'이란 소리로 답하면 그해 결혼 운이 없다고 해석된다.

사우나점과 돼지점이 좀 생경한 데 비해 거울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동네 친구가 나에게 밤 12시 시계 괘종이 울릴 때 소복을 입고 식칼을 물고 화장실 거울을 보면 미래의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며 한번 해보라고 권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호기심이 발동해서 너무나 해보고 싶었지만, 식칼과 화장실 거울은 있는데 소복이 없어서 아쉽게도 시도를 못 했었다. 핀란드의 거울점은 내가 어릴 적 시도하려던 방법과 아주 비슷하다. 세밑 자정에 곱게 차려입고 촛불만 켜진 어두운 방안에서 거울을 응시하고 있으면 미래의 신랑 모습이 거울에 나타난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소개한 결혼 관련 운세점은 과거 결혼에 목숨을 걸었던 핀란드 처녀들에게는 어느 정도 '먹혔는지' 모르지만 현대의 독립적인 핀란드 여성들에게는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구시대 점이 되었다. 

핀란드에서 가장 보편적인 말편자점, 이렇게 치세요

주석으로 만들어진 말편자.
 주석으로 만들어진 말편자.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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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말편자점'은 남녀노소 누구나 상관없이 즐길 수 있어 핀란드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신년운세 점이다. 주석으로 만들어진 말편자(말편자는 서양에서 행운을 상징)를 국자에 녹여 그 녹은 모양을 분석해서 그 해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는 그 기원이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후 중부 유럽을 거쳐,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로까지 전파되었다. 점의 소재는 지역에 맞게 바뀌기도 했는데 주석 대신 밀랍 혹은 계란 흰자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핀란드에서 소수 상류층만이 행하던 이 점이 1800년대 이후에는 전체 국민에게 퍼져 현재까지 대중적인 신년맞이 의식으로 내려오고 있다.

말편자 점을 치기 위한 준비가 완료된 모습.
 말편자 점을 치기 위한 준비가 완료된 모습.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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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1. 주석으로 만들어진 말편자를 국자에 녹인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 말편자를 국자에 녹이고 있는 기자의 아들.
 아빠의 도움을 받아 말편자를 국자에 녹이고 있는 기자의 아들.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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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녹인 말편자를 차가운 물에 넣어 식힌 후 꺼낸다.

녹아 모양이 변한 말편자를 보여주는 기자의 딸.
 녹아 모양이 변한 말편자를 보여주는 기자의 딸.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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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양이 변한 주석 덩어리를 벽에 비쳐서 그림자를 만든다.

병든 닭 같은 그림자 모양을 한 기자 남편의 올해 운세.
 병든 닭 같은 그림자 모양을 한 기자 남편의 올해 운세.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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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림자 모양으로 신년 운수를 점친다.

말편자 점에서 주석을 녹여서 만들어진 결과물로 그림자를 만들어서 한 해 운세를 점친다.
 말편자 점에서 주석을 녹여서 만들어진 결과물로 그림자를 만들어서 한 해 운세를 점친다.
ⓒ http://charnel-doz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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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그림자를 해석하는 몇 가지 예이다.

- 배 모양이면 여행을 많이 함
- 열쇠 모양이면 좋은 직장을 얻음
- 말 모양이면 새 차를 얻음
- 말 외의 다른 동물 모양일 경우는 친구가 배신함
- 여성의 머리 모양이면 이웃과 싸움이 일어남
- 동전 모양은 부를 상징
- 주석이 한 덩어리로 뭉쳐지지 않고 잘게 떨어져 나가는 것은 불운을 상징
- 끈 모양은 질병을 의미
- 심장 모양은 사랑을 의미
- 바늘 모양은 불운을 상징
- 아기 모양은 임신을 상징
- 닻 모양은 뭔가에 헌신하게 되는 것을 의미(사랑, 아이, 친구, 직장 등)
- 사람 모양은 배우자를 얻음을 의미


말편자점을 한 번도 쳐본 적 없었던 나는 좀 더 생생한 기사를 쓰고자 올해 처음으로 점을 쳐보기로 했다. 온 가족을 불러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사온 말편자와 국자로 실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남편이 녹인 아메바처럼 퍼진 말편자를 벽에 비쳐 그림자를 만들었는데 '귀에 걸면 귀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라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 해석이란 것이 주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을 그림자 속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는 성경 구절처럼, 바라던 꿈이 이렇게 믿음으로 바뀌게 되면 현실까지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종류의 폭죽을 파는 가게.
 여러 종류의 폭죽을 파는 가게.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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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폭죽에 애완동물용 진정제까지

핀란드 사람들은 보통 신년 이브에 말편자점을 친 후 밖으로 나가서 불꽃놀이를 즐긴다. 신년 불꽃놀이는 고대 중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불꽃놀이를 하며 커다란 소리와 요란한 불꽃으로 그해 사람들을 괴롭힌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많은 나라가 안전상의 이유로 개인이 마음대로 폭죽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비해, 핀란드에서는 일정 나이 이상이면 누구나 폭죽을 구입하고 쏠 수 있다. 멋진 폭죽일수록 비싼데 이날 하룻밤을 위해 몇 백 유로까지 투자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이 있다.

폭죽을 쏘아 올리며 신년을 맞는 사람들.
 폭죽을 쏘아 올리며 신년을 맞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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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폭죽놀이에 놀라서 도망가는 것은 못된 귀신만이 아니다. 숲 속에서 조용히 지내던 야생동물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에게 이날은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리는 폭죽 소리에 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폭죽과 함께 애완동물용 진정제도 판다. D-day 며칠 전부터 투여하면 '그날'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고 한다.

폭죽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 또한 많다. 불량 폭죽 때문에 혹은 부주의하게 폭죽을 쏘다가 상처(특히 눈에)를 입고 응급실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매년 수십 명에 이른다. 때문에 12월 31일과 1월 1일은 핀란드 안과 전문의에게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영국의 유명 수필가 찰스 램은 '새해 첫날은 모든 사람의 생일'이라고 얘기했다. 여기서 생일이란 의미는 즐거운 축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시 태어나 새롭게 된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 '새해'라는 생일을 맞은 나에게, 그리고 모든 이에게 이런 의미에서 색다른 덕담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새해를 맞아 다시 태어난 것처럼 모두 새로워지시기를~.'

애완동물용 진정제 광고.
 애완동물용 진정제 광고.
ⓒ www.ideapark.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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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토정비결, #새해, #말편자점, #핀란드, #사우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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